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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의 몇 번째 큰 도시다'라는 타이틀을 가진 대도시들은 외국인이 운전을 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접근은 둘째치고 빠져나오는 것 또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것을 발렌시아를 빠져나오며 느꼈다.

공사 중인 도로와 고속도로, 자동차전용도로 등 온갖 도로가 뒤섞인 발렌시아 외곽은 혼잡했다. 그 속을 뚫고, 물론 한 두 번의 유턴은 있었지만 그냥 '성공'이라 단정하자. 그 후 남편은 장장 7시간에 걸쳐 운전을 했다. 다양한 타파스를 맛보며 유치한 놀이로 멀미를 달래던 소소한 우리의 추억, 발렌시아를 떠나 코르도바로 가는 날의 풍경이다.

발렌시아를 떠나며 우린 가장 가까운 까르푸에 갔다. 거기 조리식품 코너에서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각종 타파스를 구입했다. 이동하며 점심으로 먹을 것들이다. 스페인 까르푸의 조리식품이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음식이 거의 획일적인 것에 비해 이곳은 지역에 따라 판매되는 음식이 많이 다르다. 향토음식을 주로 판매하나 보다. 매우 바람직하다. 혹 스페인을 여행하며 지역별 음식을 다양하고 저렴하며 표준화된 맛으로 맛보길 원한다면 까르푸 조리식품코너를 적극 추천한다.

여하튼 우린 발렌시아의 남서부쯤 어딘가에서 삶은 문어와 야채 무침, 물렁뼈가 있는 돼지껍데기 볶음, 돼지고기 찜, 치즈 파스타를 구입했다. 모두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던 음식들이었다. 원하는 양만큼 담아 구입할 수 있어 참 좋았다. 가격도 싸고.

이민자의 설움... 물줄기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씨에스타를 즐기는 스페인의 한 낮 공원의 풍경은 한산해서 더 뜨겁게 느껴졌다. 우린 이동하던 중 밥을 먹기 위해 어느 소도시에 들렀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도시의 어느 공원에 들어왔다. 동양의 느낌이 담뿍 묻어나는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도시락을 먹었다. 나무 그늘이 워낙 촘촘해서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그처럼 시원한 그늘을 즐기는 건 이리저리 둘러봐도 우리뿐이었다.

아이들은 한쪽 놀이터로 간다. 단계별로 도전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기구에서 현이는 마지막 단계인 클라이밍을 포기하고 그만 내려왔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현이 아버지의 폼이, 꼭 한국에 가면 클라이밍 슈즈를 사주며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칠 것만 같다.

3시간 이동 후 밥을 먹고 쉬었으니 이제 앞만 보고 4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과연 아이들이 한 번 더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대답은 회의적이다. 그렇기에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심란하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후식을 먹고 있는데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이민자 둘이 공원에 나타났다. 그들은 씨에스타 시간을 이용해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며 식수대에서 큰 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저런 방법이 있구나!"를 깨달을 즈음, 그들이 우리를 많이 의식하는 것을 알게 됐다. 눈치가 제법 빠른 나였지만 여행 중 감이 떨어졌는지 어쩐지 난 한동안 그들을 바라보고 말았다. 하필 오늘 나의 출현으로 그들은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떳떳하지 않은 그 일을 끝내고 서둘러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 씨에스타를 즐기기에는 물은 너무나 졸졸졸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물통은 지금껏 내가 본 물통 중 가장 컸다.

대한민국 영유아를 위한 보편적 게임 '코코코'

다시 이동이다. 엄마를 꼭 닮아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둘째는 괴로워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대체로 사랑스러운 큰 딸은 잠을 청하다 실패하고 바깥을 내다본다. 스페인 내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을 압도하는 장엄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친근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높이의 산이 정겹다.

산의 여기저기 난 꼬부랑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또 한참을 내려오다 만난 올리브 농장의 풍경은 끝이 없었다. 전 유럽을 먹이고도 남을, 지금까지 본 어느 나라의 올리브 농장 풍경보다 끝내줬다. 산 능선을 따라 연이어 이어지는 올리브 나무 밭 사이로 하얀색의 안달루시아 풍의 집이 있었다.

단정하고 편안한 풍경이 쉬지 않고 펼쳐진다.
 단정하고 편안한 풍경이 쉬지 않고 펼쳐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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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두 아이 모두 깼다. 아직 100km 가 넘게 남았는데... 꿀꺽.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이 멀미를 떠올리지 않도록 신경을 분산 시켜야 한다. 조금 더 가니 우리의 목적지인 'CORDOBA(코르도바)'다. 너무 반가웠다.

"주야, 따라해 봐. 코코코코 코르도바."

주는 나를 따라 검지를 코에 대고 '코코코코 코르도바'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영유아를 위한 전설의 놀이, 바로 '코코코~ 눈' 그것을 한다. 놀이를 하는데 나는 학습에 의해 이젠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그 간단한 놀이도 처음 입문한 현과 주는 눈알을 동그랗게 뜨고, 때론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긴장하며 따라하는데 멍청해 보이면서도 귀여웠다. 푸하하.

캠핑장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음으로 나는 코코코 놀이를 한참동안 더 해야 했다. 이제 애들은 더 이상 멍청해 보이지도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다. 더 가르쳤다간 나를 이겨먹을까 싶어 우린 놀이를 멈췄다. 드디어. 야~ 보던 중 가장 황량한 도심 속 코르도바 캠핑장이다.

황량한 도심 속 코르도바 캠핑장에서의 만남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시내에서 가까울수록 캠핑장의 녹지 상태, 시설의 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껏 묵었던 곳에 비하면 바닥에 풀 한포기조차 없다. 먼지가 털레털레 난다.

맨 흙바닥이다. 유명 관광지 가까운 도심 속 캠핑장이라서 풀이 돋을 시간이 없겠다. 아쉽다.
 맨 흙바닥이다. 유명 관광지 가까운 도심 속 캠핑장이라서 풀이 돋을 시간이 없겠다. 아쉽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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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집을 완성하자 앞 쪽에 있던 분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영국인들이다. 아저씨는 스코틀랜드 출신 공립학교 교사이고 아내는 잉글랜드 출신 특수교사다. 아저씨 옆엔 오스트리아 출신 교사가 어제까지 있다가 나갔다고 한다. 이후로도 우린 스코틀랜드 출신 남자와 잉글랜드 출신 도시녀의 결합을 여러 번 보았다. 서로 끌리나 보다.

아저씨는 교사답게 관광지에 대한 실속있는 정보들을 모두 알려주셨다. 다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과연 우리가 아저씨의 기대대로 많은 관광 유적지에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 외에도 아저씨는 영국 공립학교의 수준과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미국 공립학교보다는 괜찮지만 우리나라보다도 못한 것 같다는 나만의 판단을 내렸다. 학교마다 점수를 내서 학부모들은 그 점수를 참고로 좋은 학교를 찾아가는 구조라 했다. 여러모로 어렵겠다.

다양한 여행 정보를 알려주신 영국 선생님들이다.
 다양한 여행 정보를 알려주신 영국 선생님들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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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했던 아이들은 체력을 회복하자 대각선 쪽에 있던 포르투갈에서 온 아이와 논다. 그 집 엄마가 물총을 건네주자 셋은 언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그 아이들의 한이 서린 과격한 놀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 집 캠핑카에선 놀지 않고 짬짬이 우리집에 와서 이불 위에서 뒹굴며 격렬하게 노는데 그 아이의 안경이 부러질까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이다. 힘들게 왔지만 친구도 사귀고 즐겁게 뛰어다니니 덜 미안하다.

조심해라~ 다친다~ 너네 집 가서 놀아라~
 조심해라~ 다친다~ 너네 집 가서 놀아라~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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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외동딸인가 보다. 며칠 즐겁게 놀고 아쉬워하며 이별했다.
 늦둥이 외동딸인가 보다. 며칠 즐겁게 놀고 아쉬워하며 이별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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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기, #유럽캠핑, #스페인, #코르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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