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었을까, 2분이었을까? 교황이 김영오씨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안간힘과 간절함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감동의 눈물이 아니라 안쓰러움의 눈물이었다. 애절함에 내 가슴이 무너진 것이었다. 이 1분을 위해 가족들은 그 긴 시간 애써왔구나. '가족들은 이렇게 넉 달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교황의 너그러움과 따뜻한 위로보다 가족들의 땀들과 눈물이 나를 울렸다.
1분을 위해 12시간을 기다렸다. 아니 며칠을 기다렸다.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아래 시복미사) 전날 밤부터 가족들 300여 명은 세종문화회관 지하 강당에서 모여서 시복미사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지하 로비의 차가운 바닥에서 쪽잠을 청해야 했다.
아니 새벽 3시 입장이라 대부분 잠을 자지 못했다. 2시 반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져갈 물품을 챙겼다. 광장에 사람이 많아 밥이나 물을 사먹을 수 없으니 김밥과 물도 가져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현수막이었다. "철저한 진상규명,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와 "Enact Special Law, For the Truth of the Sewol Ferry Tragedy"라는 한글과 영문 현수막을 나눠가졌다. 가족들은 현수막을 못 들고 가게 하는 줄 알고 가방 밑바닥에 넣기도 했다.
교황과의 만남을 위한 준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성호 엄마 정혜숙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전에 사제들을 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했다. 14일 교황이 오던 날 공항에서의 만남 외에도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에도 내려가 교황과 면담을 했다.
가족들은 교황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고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를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해달라고 부탁했다.
간절함이 묻어난 손끝 발끝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시종일관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소외받고 힘없는 자들을 살피는 그의 덕망 때문임을 안다. 교황은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며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밝혔으며 방한 내내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의 만남과 위로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던 가족들의 시간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과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 서로의 마음과 노력이 있었기에 그렇게 만나서 위로하고 위로받고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간절함이 묻어난 손끝, 발끝을 본 적이 있는가. 말이 아닌 몸짓에서 묻어나는 그 간절함 말이다. 16일 교황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손끝, 발끝에서 난 간절함을 보았다. 가족들은 새벽 3시에 입장해서 3시 반부터 배정된 광화문광장의 끝에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천막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많아 다닥다닥 붙은 자리였다. 교황이 광장에 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데다 전날 잠을 자지 못해 엎드려 자는 가족들이 있었다. 영락없이 팽목항에 있던 체육관에서의 모습이었다. 아팠다. 아직도 차가운 바닥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가족들. 어떤 이는 이 모습을 보며 교황을 맞이하는 데 예의가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내 눈에는 여전히 4월 16일을 벗어나지 못한 가족들의 모습이라 아팠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광장에 시민들이 많아지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아래 가족대책위) 임원이 사람들을 깨운다.
"시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으니 일어나세요."하나둘 그렇게 앉아서 정신을 차리고 있은 지 얼마 안 된 9시 20분, 교황의 카퍼레이드가 시작되고 하늘에는 촬영을 하는 헬기가 날아다닌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시복미사이기에 화면에 조금이라도 잡혀야 한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벌떡 일어나 노란 펼침막을 힘껏 머리 위로 펼친다. 현수막이 더 잘 보이라고 발뒤꿈치를 든 이들.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함께한 가족들
가족들 근처에 온 교황의 차는 그냥 지나갔다. 다들 서운해하거나 어리둥절해했다. 광장을 빙 돌아 다시 오는 때를 기다렸다. 시민들이 교황을 영접하기 위해 모두 일어난 상태라 노란 현수막도 잘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잠시 고민하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위원장이 "눈에 띄게 모두 앉아서 현수막을 들어요!" 하고 외친다. 일제히 앉아서 펼침막이 잘 보이도록 손을 번쩍 높이 든다. 팔에 힘줄이 보일 정도다.
그리고 34일째 단식하던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는 교황이 잘 보이도록 광장 맨 앞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단식하는 이유에 대해 영문으로 적은 작은 용지를 들고. 9시 35분 교황이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때도 가족들은 간절히 '비바 파파'를 목청껏 외쳤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고통을 들어달라는 듯이.
김영오씨는 교황이 잡아준 손에 입맞춤을 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잊지 말아주십시오, 세월호"라고 말하며 미리 준비한 편지를 건넸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영오씨는 교황을 만나고 손을 번쩍 들어 큰 웃음을 지었다. 정말 오랜만의 환한 웃음이다.
사실 교황이 김영오씨를 만나줄지 확신할 수 없어 초조했다. 다른 가족들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척에 있는 대통령도 이들을 만나주지 않는데 교황이 무시하고 지나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게다가 펜스가 있고 광장에 그 많은 인파가 있는데, 과연 세월호 가족들과 김영오씨를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이 돼 예지 엄마와 유민 아빠는 논의를 했다.
"어디에 서야 교황님 눈에 보일까?", "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가족들이 앉아 있는 게 나을까 서 있는 게 나을까?" 등 이야기를 나눴다. 예지 엄마 엄지영씨는 목에 파란 깁스를 하고 있었고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오랜 단식으로 허리가 굽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픈 몸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머리를 맞댔다.
얼마 전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하러 갔다가 앞길을 막는 경찰의 폭력으로 목을 다쳐 병원에 있어야 하는 그녀지만, 교황을 만나는 중요한 일이라 몰래 병원을 탈출했다고 했다.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그때, 성호 엄마 정혜숙씨가 와서 한마디 한다.
"대전에서 교황님께 김영오씨를 안아달라고 말씀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요.""우리 애는 순교자처럼 하늘에 있는지도 몰라"
교황이 가고 난 자리에 가족들은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멍하니 있기도 했다. 위로를 받은 그들의 얼굴은 어제보다는 편안해보이기도 했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교황님이 정부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다던 준우 아빠 이수하씨도 말이 없다. 교황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냐는 질문에 "우리 애는 하늘나라 하느님 옆에 편히 쉬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갈 수 없는 길이니까"라고 대답하던 중근 아빠는 이제야 교황의 축복에 안도하는 듯하다.
"교황님을 만나면 확 가슴이 트일 줄 알았는데, 아직 답답하네"라며 복잡한 마음에 얼굴이 굳어 있는 가족도 있고, "진짜 위로를 받은 거 같다"며 환하게 눈물 섞인 웃음을 보이는 가족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잠시 침묵이 흐렀다. 아마도 교황의 위로 뒤에 접한 현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정부여당과 대통령의 태도가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침묵이 잠시 흐르던 시간을 깨고 준우 엄마가 웃으면서 외친다. "이 손이 교황님과 악수한 손이에요. 여러분 제 손 잡고 교황님의 축복 받아가요" 하며 다른 가족들의 손을 여기저기 잡는다. 준우 엄마 장순복씨는 모두들 앉아서 현수막을 펼치기 전 재빨리 김영오씨 옆으로 가 교황님께 손을 잡아달라고 청했단다. 축복을 나눠주는 모습이 다정하면서도 천진하다. 그녀는 교황님의 손을 잡아 우리 애가 축복받은 거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던 그녀가 미사를 하기 바로 전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물었다.
"하늘에서도 축복받으며 행복하게 있으라고 기도했어요. 우리 애는 어쩌면 오늘 순교자처럼 하늘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어느새 준우 엄마의 눈시울이 빨개진다. 그녀 말대로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은 순교자인지 모른다. 자본의 탐욕과 국가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죽어간 넋들이니까. 그들의 순교로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사람 목숨보다 돈이나 정치적 이해가 앞서는 사회가 지속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가족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있고, 교황과의 만남에 작은 희망을 건 사람도 있고, 그저 함께하는 자리니까 온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린 것은 참된 위로와 그에 기반한 진실 규명이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 속에 왜 탑승자들이, 왜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들은 계속 기다린다. 밥을 굶으며 아픈 몸을 이끌며 말이다. 김영오씨는 교황이 가고 나서도 단식을 풀지 않았다. 아니 단식을 풀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단 기록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