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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34일 유민아빠 만난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단식 34일 유민아빠 만난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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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 프란치스코.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 출신 만 77세의 노성직자. 그는 로마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았고 함께 아파하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세월호 가족들과 별도의 면담을 했으며 세월호 리본을 달고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고 퇴장하던 차에서 내려 다시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광화문 시복식 미사에서는 또 다시 차를 멈추고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위안부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을 예정이다.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정의와 평화,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이 한반도 남쪽 땅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떠날 것이라 믿는다.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그가 십수 년간 지속되어온 인권침해와 운영비리에 대한 논란과 대규모 수용으로 장애인, 노숙인 등의 자립생활과 탈시설 사회복지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기업형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아쉽다. 꽃동네의 문제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교황청에 전달했지만 방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밀양송전탑 현장, 용산 화상경마장 농성장, 스타케미컬 고공농성장 등을 방문하셨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더 싸우고 더 연대하지 못해서 처해진 이 반복되는 상황들. 이 땅의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저지르고, 모자란 시민의 힘이 해결하지 못한 사안들의 해결을 교종 프란치스코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교종 프란치스코에게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쓸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는 것 아닌가? 그가 우리의 사안에 대해 말하고 서러운 당사자들 손 한번 잡는다고 당장 달라질 것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들 이리 열광하고,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 서운 해 하는가? 이런 "어른"을, 이런 "지도자"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교종 프란치스코의 일거수 일투족을 언론과 SNS가 주목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의 진심을 확인하며 스스로 위로받고 평화를 선물받는 중이다. 난 그의 행보가 너무 고맙고, 그에게서 위로받는 민중들의 심정으로 기뻐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를 통제하는 불편을 초래했음에도 시민들이 감수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서울시민들에게 '가톨릭 행사로 인해 초래한 불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시며 양해를 구한 것도 한몫 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가 불 지펴준 일들의 마무리, 당연히 우리들 몫

세월호 유가족 만나기 위해 차 세운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중인 세월호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기 위해 차를 세우고 있다.
▲ 세월호 유가족 만나기 위해 차 세운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중인 세월호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기 위해 차를 세우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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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명동성당에서 그는 또 한 번의 파격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세월호 참사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것처럼,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유민이 아빠를 축복하고 그의 편지를 받아 고이 챙기며 위로했던 것처럼, 내일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 밀양송전선로 부지 주민들을 만나 위로 할 것으로 믿는다. 그동안 이 땅의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그가 해주고 떠날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나면, 그가 다시 불을 지펴준 일들의 마무리는 당연히 우리들 몫이다. 그가 다녀간 자리, 그가 잡았던 손, 그가 말한 "정의와 평화", "연대와 사람중심"의 정신. 우리는 어떻게 그 자리를 메우고, 누가 대신 그 손을 잡고, 어떤 마음으로 그 정신을 쫓을 것인가? 더 무거운 숙제가, 더 진지한 고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떠나고 나면 다시 우리만 남는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우리 곁에 왔던 카메라들과 세상의 관심은 멀어져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세상을, 사람들을, 우리 곁에 붙잡아둘 것인가? 모두의 힘과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싸우고 등 돌리지 말고, 함께 싸우면서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 복직,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의 평화, 용산참사 진상규명, 위안부 할머님들의 한을 푸는 일. 최소한 이 문제들만이라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어내야 교종 프란치스코의 고마운 걸음에 대해 면목이라도 서지 않겠는가?

모이자. 다시 싸움을 준비하자. 박근혜 정권 여전히 3년 반이 남았다. 질기게, 단단하게 마음먹고 준비하자.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 살아 있음을 증명해 보이자. 그리고 책임을 다하자. 길 떠나는 심정으로, 흩어지고 지친 힘들을 다시 한번 모아보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 광화문 시복식 미사 교종 프란치스코 강론 중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교종#교황#세월호#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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