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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1825~1895)는 별명이 '다윈의 불독'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자 이를 곧장 인정하고 널리 전파하는 데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헉슬리는 특히 '적자생존'을 강조했다. 1888년에 <적자생존-하나의 프로그램>이라는 논문까지 발표했다. 이후 영국에서 적자생존은 '자연법칙의 결정적인 의미로, 하나의 종교로 깊이 각인'(본문 486쪽 중에서)되었다.

인간성을 신뢰한 어느 아나키스트 이야기

 <크로포트킨 자서전>( 표트르 크로포트킨 지음 / 김유곤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 2014.07 / 2만원 )
 <크로포트킨 자서전>( 표트르 크로포트킨 지음 / 김유곤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 2014.07 / 2만원 )
ⓒ 우물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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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러시아 아나키스트 혁명가이자 대표적인 이론가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은 달랐다. 그는 다윈의 이론이라고 알려진 적자생존이 후계자들, 예컨대 헉슬리 같은 사람을 통해 개발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렴치한 행위, 가령 백인과 소위 열등 인종, 강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한다는 데 있었다. 그는 <동물간의 상호부조>, <원시인의 상호부조>, <고대인의 상호부조> 등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해 이를 반박했다. <상호부조론>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대표작이 나오게 된 과정이다.

맹자의 방식으로 말하면 크로포트킨은 '성선론자'로 보인다. 그는 인간 본성의 따뜻함과 진정성을 믿었다.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면서도 모든 기득권을 버린 채 세계 변혁을 위해 헌신하는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전제 권력의 끈질긴 폭압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 모든 밑바탕에 '자유'와 '진보'에 대한 그의 특별한 신념이 깔려 있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한 일시적인 봉쇄를 없애는 것이 자유를 회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옛 말에 따라 행동했다. 평소에 인식하기 쉽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핵심적인 사회적 습성이 있다. 그것은 강제적으로 유지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어떠한 강제보다도 우월하다. 인류의 모든 진보는 그것에 기반하고, 인류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락하지 않는 한 어떠한 비판과 부정으로도 그 핵심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 인간과 사물에 대한 경험을 쌓으면서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본문 407쪽 중에서)

'자유'와 '진보'야말로 500쪽이 넘는 거작 <크로포트킨 자서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열쇠말로 보인다.

이 책은 '세계 5대 자서전'으로 평가받는다. 과장이 아니다. 1899년 영문으로 최초로 번역된 뒤 수십 개 언어로 번역·출간된 명저다. 이 특별한 위상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삶과 심리보다 당대의 역사적인 흐름과 시대의식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서전은 사적 일대기라는 통념과 달리 시대와 역사를 증언하는 데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살았던 19세기는 혁명의 시대였다. 자유와 진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뜨겁게 펼쳐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갖가지 사상들이 곳곳에서 개화했다. 저자는 그 모든 과정을, 날카로운 역사가이자가 휴머니즘으로 똘똘 뭉친 인문주의자의 필치로 낱낱이 그려냈다.

책은 유럽의 사상사와 지성사를 담고 있다. 러시아 민중들의 피폐한 삶이 그의 붓끝에서 생생하게 복원되어 있다. 러시아 전제 왕정의 야만적인 착취와 폭압, 이에 대항한 민중과 혁명가들의 투쟁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실감나게 그려졌다. 그의 차분한 문장들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절로 인다.

아나키즘의 의미는 굴욕으로부터의 해방

'아나키스트'는 흔히 '무정부주의자'로 번역된다. 이 번역은 일본의 번역어에 바탕을 뒀다. 문제는 말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무정부'를 지향하므로 폭력적인 반정부 투쟁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오해가 대표적이다. 진짜 의미는 뭘까.

아나키즘의 권력 부정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근원을 두고 있다. 피땀을 흘리는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았으며, 인간은 이 굴욕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사상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이다. (본문 499쪽 중에서)

크로포트킨은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다.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페테르부르크 근위학교에 입학했다. 항상 수석을 차지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은 모두가 꺼리는 시베리아 지역 부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나키스트로서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군에 대한 염증이 컸다. 당시 러시아는 사병 복무 기간이 무려 25년이나 되었다. 연병장에서 이루어지는,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야만적인 집단 체벌 장면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크로포트킨의 말을 빌리면 '군대에 간다는 것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는 것' (본문 87쪽 중에서)이었다. 특히 시베리아 근무 중 폴란드인들의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농노제도 역시 그가 아나키즘을 받아들이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귀족 자제였던 그는 농도제도의 폐해와 참상과 관련하여 '들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본문 83쪽 중에서)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농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은 유년기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술에 취해 접시를 깨뜨렸다는 죄로 백양목 회초리로 백 대를 맞는 주방 농노 '마카르'의 일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공포와 절망이 온 집안을 휩쓸었다. (중략) 나는 눈물이 북받쳐 올라왔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어두운 복도에서 마주친 마카르를 붙들고 그 손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뿌리치면서 자제하는 것인지 의심하는 것인지 모르게 말했다.

"제발 저를 내버려 두세요. 도련님도 어른이 되시면 역시 아버지처럼 되실 걸요."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본문 84~85쪽 중에서)

강제 결혼, 매매, 여성 농노에 대한 성적 착취, 폭력과 학대 등 당시 러시아 농노들의 삶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크로포트킨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보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책

이 책에는 세계의 진보와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새겨봐야 할 내용들이 아주 많다. 말과 글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를 고민하는 혁명가나 진보주의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크로포트킨은 '민중의 언어'를 쓰면서 '농민의 말'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동시에 민중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만 빌려 쓰는 지식인들을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점은 일련의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지식인이 비지식인에 비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크로포트킨은 지식인들이 농민들의 의식 밑바닥에 깔린 평등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화할 때 이야기가 자주 막힌다고 보았다. 지식인들의 섣부른 우월의식 같은 게 작용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익숙한 억압에 쉽게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의 지위와 업무가 올바른 일을 수행하는가, 자신의 직업이 진정으로 내적 열망과 재능에 부합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일에서 얻고 싶어하는 보편적인 만족을 주는가를 자문할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특히 그런 구속에 빠지기 쉽다. 일상은 매일 새로운 일을 던져주어 목표치를 끝내지 못한 채 밤 늦게 침대에 몸을 던지게 만들고 아침이 되면 다시 전날 못 다한 일을 서둘러 계속하게 한다. 세월은 흘러가도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본문 251쪽 중에서)

말로만 인류의 진보를 역설하는 진보주의자들, 농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체 하면서 실은 농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데 급급하여 궤변만 늘어놓고 있었다. (본문 254쪽 중에서)

크로포트킨은 하나의 변화는 한 사람의 가설로부터 생겨나거나 한 사람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의 변화는 대중의 건설적인 작업의 결과였다. 그는 중세 초기에 만들어진 재판과정, 촌락공동체, 길드, 중세도시, 국제법 등이 모두 대중의 손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크로포트킨은 철저한 민주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아나키스트들이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을 통해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민중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본문 409쪽 중에서)

지금 대한민국 진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한 진보 정치인들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진보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생활정치'는 말뿐이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진보'를 외쳐댄다. 기층 대중이나 현장 노동자와 괴리된 노동조합 운동의 현실은 10%에 머무르는 노조 조직률이 잘 말해 준다.

크로포트킨은 자서전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기자주-혁명을 위한 운동으로부터 얻은) 이 위대한 결과는 모든 나라, 모든 계급의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30년간 노력해 얻은 것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본문 489쪽 중에서)

진보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이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세상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크로포트킨 자서전>( 표트르 크로포트킨 지음 / 김유곤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 2014.07 / 2만원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http://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크로포트킨 자서전 - 인류의 품격있는 진보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 우물이있는집(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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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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