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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은 인천 용유초등학교 28회 동창생들에게도 설레는 일이었다. 김정근(60)씨 등 17명은 환갑을 맞이한 기념으로 4월 15일 세월호에 올랐다. 2박 3일의 일정은 이들의 50년 우정에 또 하나의 추억을 더해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더해진 것은 악몽과 슬픔이었다.

김씨는 7월 24일 세월호 선원 공판에 나와 어떻게 친구 12명을 잃었고, 자신은 살아남았는지 설명했다. <오마이뉴스>는 그의 법정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사고 직전까지 그는 숙소(S-3번방)에 누워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무렵이라 다른 일행 13명도 방에서 쉬던 중이었고 3명은 밖에 나가 있었다. 갑자기 배가 기우뚱하며 살짝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선체는 완전히 왼쪽으로 쏠려버렸다. 김씨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다. 미끄러지다시피 해서 안내데스크 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안내데스크쪽에서 1시간 20분가량 대기했다. 옆에는 단원고 학생 6명이 있었다. 김씨는 법정에서 "(학생들이) 사고가 났다고 119와 해경에 전화를 하는데 학생들한테 (119와 해경이)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 것 같았다"며 "학생들이 위치를 어떻게 알겠냐"고 말했다. 승무원 박지영씨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무전을 치는 모습도 목격했다. 김씨는 "대답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방에선 그릇 떨어지는 소리와 조리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김씨는 어렵게 좌현 갑판으로 나가서 구조됐다. 오전 10시 20분쯤 해경 경비정에 승선한 그는 이준석 선장을 봤다. 당시엔 선장인 줄 몰랐다. 하지만 "뱃사람 같아서" 김씨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이준석 선장은 그에게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른 선원들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사이 배에서 미처 탈출 못한 친구 12명은 점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세월호에 탄 용유초교 28회 동창들 가운데 김씨와 함께 선실을 빠져나온 친구, 갑판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친구 등 5명 말고는 모두 '사망'이 확인됐다. 김씨는 "자꾸 방송에서 '안전하게 대기하고 있으라' 해서 안 나온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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