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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노회찬 정의당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역 입구에서 출근하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동작을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노회찬 정의당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역 입구에서 출근하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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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회찬 전 의원님. 저는 스물 여섯해 중 스무해를 노원에서, 그 중 노원'병'에서는 15년 동안 산 노원 뼈주민('뼛속까지 주민')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보기 드믄 젊은이라는 말로 제 소개는 마칠게요.

의원님의 호감도가 상승했던 이유

요즘 노회찬 의원님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동작을'에 출마하셨더군요. 찾아보니 동작을에서 의원님 지지율이 14% 정도더라구요. 노원병에서 57%를 지지받아 당선된 2012년의 노회찬과는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동작을은 '철새 정치인들의 집결지'라던데 철새의 이미지가 의원님께도 생기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노원병에서 (제가 생각하기엔) 납득되지 않는 일로 의원직을 상실하셔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동작을에 출마하신 것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이 노원병 지역에 애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이 그저 국회에 입성하는 수단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노원병 의원 시절, 추석 때 노원지역 농협에서 생선을 고르시던 모습,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몇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고르시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 얼마간 지역 주민인 척하다 그 뒤론 보이지도 않던 국회의원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 일을 지역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을 국회에 보내준 것은 지역 사람들입니다. 지역발전을 제 1순위로 생각하진 않더라도 지역을 위해 일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활동은 당연합니다.

의원님의 호감도가 상승한 것도 지역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길에서 뵈었던 것 빼고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활동은 '마들연구소'의 개소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시급 뜯기기는 부지기수였고 부당해고까지 당하고도 아무 말 못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집 가까이에 이런 고충에 공감해주는 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지역 여기저기 붙어있는 '마들연구소'의 홍보물을 볼 때마다 '우리 지역이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의원님이 노원병을 떠나고 나서도 '마들연구소'는 제 할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요새 보니 교양강의도 많이 개설하고 주민과의 모임도 활발하게 하고 있더군요. 몇 년 전 스쳐갔던 한 명의 지역 의원이 가져온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섭섭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동안 머물렀지만 지역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의원이 특별한 연고도 없는 지역구에 들어가 낙선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마치 예전에 사귀었던 연인이 불가피하게 헤어지고 나서 한 사람은 계속 기다리는 반면 상대는 다른 사람에게 고백한 상황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그 새로운 사랑은 당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아 안타깝고 비참한 마음입니다. 물론 잘된다면 고이 보내드려야 하겠지만요.

배신감 느끼고 질투도 나지만 미워할 수만은...

노회찬 전 의원이 노원구에 만든 마들연구소.
 노회찬 전 의원이 노원구에 만든 마들연구소.
ⓒ 마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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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님같은 분을 노원 지역의 정치에만 묶어두려는 것 아니냐고, 그건 지역주민의 이기심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국회 안에서의 정치'에만 몰두하고 '지역에서부터의 정치'를 소홀히 여기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지역에서 훌륭한 활동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지금 노원의 구청장님이나 구의원님 같은 분들도 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노회찬 의원님께 더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지역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를 연결해 지역과 정치판 모두를 바꿀 수 있는 의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노회찬 의원님이 '정치'의 판을 바꾸기 전에 작은 '세상', 즉 노원이라는 제 세상을 바꿔주길 바랐습니다. 노원은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안 오르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몇몇 친구들은 빨리 노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집값이 안 오르니 갈 곳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곳을 떠날 묘책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 떠오르질 않습니다. 노원이 '교육특구'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지역에 공동체가 들어설 공간은 없습니다. 그런 노원이 노회찬 의원을 선택했었죠. 변화를 바란 겁니다. 나만 성공해서 이 지역을 벗어나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길 좀 바꿔보자고 말입니다.

얼마 못 가 의원님은 떠나셨지만 전 노원병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찬 의원님이 가져온 지역의 변화가 오래동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지역주민이 아니시니 저처럼 노원병을 향한 특별한 애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변화를 바랐고, 그 변화에 응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동작을에 가서 '노회찬은 동작을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역구 유권자로서 배신감을 느낍니다. 연고를 쌓은 지역과의 '으리'를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제 섭섭함만 토로했나요? 의원님께 아쉬움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제 생애 첫 선거가 노회찬 의원님과 홍정욱 의원님이 붙은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였습니다. 또 스무살 때 처음 겪은 촛불집회 때 의원님의 '진보신당 컬러TV' 활동을 지켜보기도 했죠. 저에게 '내 지역 내 의원'이라 느끼게 해주셨던 노회찬 의원님이 갑자기 동작을에 사랑고백을 하니 배신감도 느껴지고 질투도 났습니다. 하지만 막상 뉴스에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낙마하기엔 아주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은 여전해서 미워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노회찬 의원님. 만약 동작을에서 낙마하시면 다시 노원병으로 돌아오실 건가요? 배신감은 느끼겠지만 사과와 함께 돌아오시면, 저는 다시 받아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노원병 주민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만약 동작을로 가시더라도 마들연구소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강의를 듣거나 만날 수 있는 일이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더운 여름 바쁜 선거 일정 건강히 소화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원 뼈주민 정민경 올림.

덧붙이는 글 | 정민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노회찬, #노원병, #동작을, #지역구, #재보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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