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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마르틴 루터 킹)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 김삼웅 선생은 <안중근 평전> 등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평전을 써왔습니다. 지금은 '삼균사상가 조소앙 평전'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고요. '소름끼치는 침묵'을 더 이상 간과하지 못하는 그는 '악의 축 안두희 평전'을 통해 김구의 애국심과 안두희를 사주한 이승만의 정권욕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김삼웅의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책보세 펴냄)는 2013년 11월 18일부터 2014년 2월 7일까지 '악의 축 안두희 평전'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보완해 엮은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내가 바로 그 '소름 끼치는 침묵'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희대의 사기극...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추종자 안두희 단독 김구 암살"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표지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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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근현대사의 억울한 죽음들과 그 죽음을 정당화하며 가증한 사기극을 연출했던 이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며 속으로는 독재의 비수를 숨기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막강한 독재권력, 우리 정치사는 아프게도 독재자들이 판을 치는 무대였습니다.

이승만 독재가 그렇고, 박정희 군부독재가 그렇고,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신군부 독재가 그렇습니다. 이들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 연장을 획책하는 가운데 무수한 국민과 정치지도자, 애국지사들이 주검으로 변해야 했죠.

그 권력에 빌붙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사람 죽이기를 파리 목숨 죽이듯 한 '정치 야바위꾼'들의 죄는 또 어떡하고요. 걸핏하면 '공산주의자' 혹은 '간첩'으로 모는 것은 다반사였죠.

그런 부류의 독재자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죠. 그러나 여전히 일부 극보수 인사들은 '국부'라며 이승만을 추앙하고, '경제발전의 기수'라며 박정희를 추켜세우니 답답할 뿐입니다.

책을 읽으며, 특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 정권욕에 눈먼 전두환 등의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라고 조작해 김대중 등 민주인사들 20여 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죠. 재심을 통해 2004년에야 무죄가 확정되긴 했지만, 희대의 사기극임에 틀림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건은 무수한 고초를 겪긴 했지만, 그래도 마무리가 잘 돼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두희의 김구 살해 사건은 지금도 이승만 정권의 사기 소설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자는 온갖 자료들과 책들을 섭렵하며 안두희를 추적합니다. 저자는 "안두희는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일 뿐이었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안두희가 법정에서 했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발언이 있습니다.

"나는 김구 선생을 반역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의 살해행동은 애국적 행동이다."

이 발언은 이승만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이승만은 살해사건이 터지자 "백범의 추종자가 그 의견 차이의 논쟁을 결말짓고자 취한 격렬한 수단은 결국 비극을 초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동지의 의견차, 단독범행'이라는 소설이 쓰여진 순간입니다.

안두희의 김구 살해 배경

마카오 신사복 차림으로 맘껏 멋을 낸 중년의 안두희 모습이다.
▲ 안두희 마카오 신사복 차림으로 맘껏 멋을 낸 중년의 안두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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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는 1917년 3월 24일, 평북 용천에서 태어납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만 불우불량하고 허랑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기도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재산을 모으기도 합니다.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단(아래 '서청')에 가입해 이 조직의 핵심 간부로 활동합니다. 서청은 월남 친일분자들의 폭력반공단체였습니다.

'서청 하면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조병옥·장택상 등 미군정 실세와 결탁하면서 기세등등해 친일 재력가들을 겁박해 돈을 뜯어내는가 하면, 미군정의 수뇌들과 경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기치는 반소·반공이었습니다. 때마침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외치자 통일정부수립론자들을 박멸 대상으로 삼습니다.

안두희는 서청의 종로지부 총무과장으로 '빨갱이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한국판 메카시즘(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로, 1950년대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국무부의 진보적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한 데서 유래- 기자 주)의 실천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좌우합작세력, 미군철수주의자, 남북협상파 등을 적대시했습니다.

'김구 암살관련 배경자료'(실리 보고서, 1949년 6월 29일 작성한 당시 뉴욕1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운영과장 실리 소령이 작성)에 따르면 안두희는 미국의 CIC(방첩부대)의 정보요원이었으며, 우익테러조직인 백의사의 자살특공대원이었습니다.

안두희가 CIA의 한 인사와 만나 "김구는 국론통일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다, 김구 밑에서 빨갱이들이 연막을 치고 활동하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김구를 죽여야 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만의 분단정부수립을 지원해 남북분단을 주도했던 미국의 역할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서거 소식을 듣고 경교장 앞뜰에 몰려와 애도하는 시민들, 암살범의 총알이 유리창을 뚫고 나간 흔적이 선연하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서거 소식을 듣고 경교장 앞뜰에 몰려와 애도하는 시민들, 암살범의 총알이 유리창을 뚫고 나간 흔적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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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는 육사 8기생으로 김종필·김형옥 등 5·16 구테타의 주역들과 동기입니다. 서청과 육사에 몸담으면서 그는 이승만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좌우합작세력이나 남북협상세력을 적대시하게 됩니다. 그는 이런 배경 때문에 '이승만=반공, 김구=용공'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되는 거죠.

김구는 해방된 조국이 통일된 정부이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달랐습니다. 투철한 민족주의자인 김구보다는 반소 전진기지를 만들어 줄 이승만을 택했습니다. 김구는 단일정부를 거부했으나 이승만은 미국의 지시대로 남한단독정부를 택한 거죠.

안두희의 김구 암살, 그 이후

포병 소위 안두희는 권총을 차고 1949년 6월 26일, 김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네 발의 총성, 그렇게 애국지사 백범 김구는 쓰러집니다. 안두희는 도망치지 않았고, 군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청년들이 들이닥쳐 암살자 안두희를 데리고 나갑니다. 서대문경찰서 경비주임이 달려갔지만 "군인 신분인 안두희를 경찰이 수사할 수 없다"라는 헌병대 말에 아무 조처도 취하지 못합니다.

테러범 안두희는 헌병대의 비호 아래 조사를 받았고, '단독범행' '한독당 내분' '김구의 측근' '군과 무관' 등의 수사 결과가 나옵니다. 이승만의 말과 군의 말이 일치합니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한 정권차원의 범죄인 거죠. 당시 국방장관이던 신성모는 이승만 측근세력의 비밀조직인 8·8구락부 리더인 장은산 포병사령관에게 김구 제거의 필요성을 암시했고, 사건 이후 안두희를 감형·석방시켜 군에 복귀시킵니다.

안두희는 철저히 이승만 정권의 지휘쳬계를 따라 계획적으로 김구를 암살한 것이다.
▲ 김구 암살 배후 지위체계도 안두희는 철저히 이승만 정권의 지휘쳬계를 따라 계획적으로 김구를 암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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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모 국방장관은 몸져 누워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아침 일찍부터 낚시하러 나갔고, 국무총리는 때 아닌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암살과는 무관한 한가로운 사람들로 비치려는 설정이 아니냐"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승만이 안두희의 수형 도중 사람을 시켜 "안심하고 있으라"는 친필사인 메모를 전했다고 합니다. 안두희는 초호화판으로 감옥생활을 했고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아직 정부와 함께 서울을 사수하고 있다"고 사기를 치고 자신만 피난을 갑니다. 한강다리를 폭파한 채 말입니다. 이때 안두희도 군수뇌부와 함께 피난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안두희는 다시 군에 들어가 대북공작기관인 KLO에서 활동하며 대령에 준하는 특별대우를 받기까지 합니다.

옥중에서 안두희는 <시역의 고민>이라는 책을 써 이승만을 보호하고 본인이 우국충정에 자발적으로, 단독으로 김구를 살해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후 1996년 6월호 <뉴스포럼>은 이 책이 변조됐다고 폭로합니다. 4·19 혁명 이후 김구 암살은 진상조사를 하게 되고, 이승만의 지령으로 임병직·신성모가 주도한 사건이란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안두희는 세상에서 잘도 살죠. 안두희 수난사는 분격한 개인들에 의해 계속됩니다. 광복군 출신 김용희는 추격에 나선 지 8개월 만에 안두희를 붙잡아 검찰에 넘깁니다. 풀려난 안두희를 다시 곽태영이 1965년 겨울 잭나이프로 목을 찌르고 머리를 쳐 응징합니다. 곽태영은 친일전력자 박정희 친필 현판이 걸린 삼일문 현판을 철거한 사람입니다.

김구 암살 25년만인 1974년 5월, 암살조 행동대원이었던 홍종만이 양심선언을 해 진실을 폭로합니다. 권중희는 75세의 노령의 암살자 안두희를 심문해 암살의 배후가 이승만이었다는 걸 <동아일보>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1996년 추적자 박기서 씨가 '정의봉'이란 몽둥이로 안두희를 처단함으로 김구 암살 47년 만에 안두희의 삶은 끝납니다.

다시는 또 다른 안두희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김삼웅은 누구?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의 저자 김삼웅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의 저자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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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삼웅(金三雄)은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 <민주전선> 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나><단재 신채호 평전><백범 김구 평전><'독부' 이승만 평전><이회영 평전><노무현 평전>등 30여 권이 있다.
저자 김삼웅이 서문에서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구 암살자 안두희는 여느 암살사건의 하수인과 다른 확신범이었다.

그는 단순한 총잡이가 아니라 해방정국의 극렬한 테러집단이었던 서북청년단의 핵심간부이면서, 이승만 정권의 실세이던 8·8구락부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적임자로 선발된 테러리스트인 한편 미 정보기관 소속의 에이전트였다."(본문 6쪽)

안두희라는 암살범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가 과거의 한 사건, 한 사람, 한 정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친일의 업보를 벗을 수 없는 박정희의 후예에 의해 대한민국이 다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친일친미 보수세력들에 의해 민족주의·통일주의는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빨갱이', '친북', '종북'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박정희의 치적을 강조합니다. 이승만 숭배도 모자라 영화도 만든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가 되어 또 다른 안두희와 이승만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조지 산타야나)

덧붙이는 글 |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김삼웅 지음 | 책보세 펴냄 | 2014년 6월 초판 | 값 13000원 | 263쪽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 한 세기를 망쳐버린 백범 암살의 하수인

김삼웅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4)


태그:#안두희, #김삼웅, #김구,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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