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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어려서부터 자료 사진으로 나와 있는 오래된 문화유물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예를 들면 어느 이름 모를 절터에 홀로 남아 있는 다 허물어진 석탑 무더기를 보면서는 원래의 모습은 어땠을지, 복원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이런 사진은 과연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는 했다.

그런 궁금증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았어도 그 사진들이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에 총독부에서 만든 종합 도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하여 <조선고적도보>.

총 7권 중 5권째로 궁궐이나 성곽 등에 대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 조선고적도보의 표지 총 7권 중 5권째로 궁궐이나 성곽 등에 대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 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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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서 35년 사이에 축차로 발행했다고 하니 한꺼번에 만든 것이 아니고 몇 권씩 차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총 사진수는 6633장으로 발행 당시까지 조사된 당시 조선의 고적이 대부분 실려 있다고 했다.

서문에 의하면 1909년 9월부터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세키노(關野貞)가 조선의 옛 건축물 조사를 시행한 것이 그 계기였다고 하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분명하다.

바로 조선의 문화를 시시콜콜히 조사 연구해 그들의 식민지 경영을 탄탄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더불어 곳곳에 산재한 우리의 문화유물을 약탈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어디에 어떤 유물이 있는지를 알아야 뺏어 가기도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사진을 찍고 난 후 개성 인근에 있던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해체해 일본으로 가져 가기도 했다. 또 한 눈에 보기에도 국보급이 분명한 고려청자 수십 점에는 이미 어느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밝히기까지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조선고적도보를 근거로 '조선총독부 고적 유물대장'을 발행했는데 여기에는 총 193점의 유물이 등록되었고 제1호가 원각사지 10층 석탑이었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아예 등록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운반이 가능한 것들을 위주로 조사하고 등록했던 것이며 이는 곧 반출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추측케 한다. 한반도에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은 것이 우리 민족의 경제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과 달리 제국주의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함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마울 것 하나 없는 식민지 수탈정책의 하나로 진행된 것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책 덕분에 100년 전 우리의 문화재 자료를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불국사나 석굴암 또는 경복궁 등 훼손된 문화재 복원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는 숭례문. 양쪽으로 온전히 성벽을 거느리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다.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선 황소의 모습이 정겹다.
▲ 숭례문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는 숭례문. 양쪽으로 온전히 성벽을 거느리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다.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선 황소의 모습이 정겹다.
ⓒ 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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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광개토왕비와 장군총, 태왕릉 등 만주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여기에 싣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제목이 조선고적도보이니 이는 당시의 일본 역시 압록강 너머 만주 일대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반증 아닐까?

오래전부터 꼭 사고 싶은 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감당키 어려운 책 값! 중고를 알아 보았으나 그 마저도 비싸기는 마찬가지! 침만 꼴깍 꼴깍 삼키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던 차, 새 책의 1/3 가격에 이 물건이 나왔다.

그 역시 작은 금액은 아니었으나 큰 맘 먹고 두 눈을 질끈 감은 다음 과감하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로서 꿈에 그리던 <조선고적도보>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판본은 민족문화사에서 2005년에 원래 15권이던 것을 7권으로 묶어 새롭게 편찬한 것이다.

애초에 식민지 지배세력이 책을 만든 계기는 불온한 것이었지만, 이를 통해 배우고 얻을 것이 있다면 충분히 활용해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올 여름은 요녀석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릴 것 같다.


태그:#조선고적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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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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