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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배경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 두런두런 이야기에 깊어가는 밤 어둠을 배경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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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가진 원초적인 힘이 우리를 잡아끈다
▲ 장작불 불이 가진 원초적인 힘이 우리를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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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온 보람을 게으름으로 바꿔 먹고 있자니 꽉 막힌 춘천고속국도를 뚫고 마지막 일행이 도착했다. 그때는 벌써 하늘이 어둠으로 좁아져가고 있었고 또 무언가를 먹기 위해 불 앞에 모이자 장작불이 환하게 붙타는 저녁이 돼 있었다.

'게으른 캠핑'의 극치는 이 장작불 앞에서 '불멍'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다들 배가 불러서 더 굽거나 찔 생각이 없다. 그저 타오르는 불꽃을 지긋이 내려다본다. 나무를 태우며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불부터 시작해 회색의 재가 될 때까지 장작불은 꿈뜰거리는 마력을 잃지 않고 사람을 잡아 끈다. 특히 발갛게 숯으로 되어 갈 때의 뜨거운 빨강은 잠시 사람의 정신줄을 느슨하게 잡아 당겨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멍한 상태를 만든다.

불의 흡입력으로 머릿속 잡념을 말끔히 씻은 덕분일 것이다. 저절로 입이 열리고 귀가 뚫리기 시작한다. 사회자가 대본에 맞춰 주제를 던지는 것도 아닌데 사회·정치·연애사·개인사까지 이야기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누군가는 거기에 응답을 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푸념하는 사람 하나 없고, 식상한 이야기라도 타박하는 이 하나 없다. 생산적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돈 되는 정보를 바라지 않는다. 단순하게 남의 말을 듣고 내 말을 한다. 그러다 입이 마르면 술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군다.

수 많은 이야기 중에 내 기억에 남은 건. 배따라기다.

하루 원없이 쓰고 만 원
▲ 튼실한 장작 하루 원없이 쓰고 만 원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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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한 분이 아주 멋진 고교생활을 하셨다. 해 마다 축제를 하는데 큰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따라 무엇을 할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해의 주제가 민속문화여서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에 무속인들이 추는 신춤을 배우게 됐다.

"그때 우리한테 신춤을 가려쳐 주러 온 대학생이 기억나는데 머리가 긴 여대생이었어. 그 나이에 알면 얼마나 알았겠어. 그런데도 스물 몇 살 먹은 사람의 눈빛이 형형한 게 참 오묘했다니까."

집 근처 대학으로 무작정 찾아가 물어물어 민속 관련 동아리로 가서 사람을 섭외했다는 게다. 요즘의 고교생활인들에게는 도대체 가당치가 않은 이야기라 외할머니에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신화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드는 데다가 나무와 풀에 둘러 쌓인 어두운 밤 중에 덩실거리는 신춤이라니 괜히 상상력은 풍부해서 슬쩍 오싹해졌다.

주인장이 기거하는 곳이다. 유선전화가 있다.
▲ 사무실 주인장이 기거하는 곳이다. 유선전화가 있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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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부르는 노래도 배웠었는데. 그 비슷한 게 배따라기에도 나오지 아마? 맞지?"

주변에 동의를 구해보지만 책을 구해 읽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인터넷도 터지지 않으니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옥신각신 하지는 않았다. 문명이 단절되니 일정부분 포기하게 되고 거기서 여유가 생긴다.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고 꼭 사실에 부합하는지 끝을 보려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이야기는 어떤 결론이나 목적달성보다는 불쑥불쑥 자신이 가진 지식의 전부가 조금은 어지럽게 튀어 나왔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 빠져 들었나 보다. 어느새 하늘에 별무리가 총총 빛나고 있는 줄도 몰랐다. 별이 떴으니 랜턴 불도 줄이고 우리의 목소리도 낮추어야 한다. 우리가 또 그 정도 예의는 차릴 줄 안다.

그렇게 별로 한 거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데도 반성이나 걱정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 옅은 졸음이 몰려오고 있음을 기분 좋게 즐기자니 오지에서의 밤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자꾸 깊어만 간다.

[여행정보] 경반분교 캠핑장(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 611, 031-581-8010). 전화예약을 받고 있지만 자리는 선착순으로 잡으면 된다. 편의시설은 쪼그려쏴 수세식 변기에 차가운 물만 나오는 네 칸짜리 개수대가 전부. 전기는 사용할 수 없고 샤워장은 없다. 하루 사용료는 3만 원이고 장작은 마음껏 사용하고 1만 원만 내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마티즈 차량도 경반분교 올라오는 계곡길에 세워져 있기는 했지만 되도록 차체 높은 4륜 차량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경반분교, #경잔분교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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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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