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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남편을 보면, 가끔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남편을 보면, 가끔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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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지난주부터 주민센터에서 컴퓨터 배운다."
"웬일이니? 그러면 큰 일 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컴퓨터는 잘 하잖아?"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것은 못하지."

친구의 남편은 아마도 포토샵을 배우는 듯했다.

"네 남편이 주민센터로 뭘 배우러 다니다니, 해외토픽감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놀랐다. 그 친구의 남편은 3년 전 퇴직을 한 사람이다. 퇴직 후에는 친구들 모임에도 잘 안 나갔다. 어쩌다 나가도 밥만 먹고 금세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공원 산책을 나가도 채 1시간을 넘기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우리들이 "그럼 집에서 가까운 산에라도 너하고 함께 가지"라고 하면 그의 남편은 "난 산이 무서우니깐 당신이나 갔다 와"라고 대답해서 우리가 박장대소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지난 6월 모일, 친구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손자들 육아문제에 해결하니, 집에만 있는 남편들 걱정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손자들 문제가 아니라 퇴직한 남편 걱정이 태산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남편들 대부분은 퇴직한 상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 몇 명만 현직에 있을 뿐이다. 왜 남편들은 퇴직하고 나면 집에만 있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배우기 시작한 거니? 그게 제일 궁금하다."
"혼자는 결코 안 가지. 내가 함께 갈 테니깐 가자고 통 사정을 해서 등록을 했잖니. 그런데 한 번 갔다 오더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면서 안 가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또 따라갔지. 그러더니 옆에 있는 여자는 잘 가르쳐 주더래. 그래서 겨우 한시름 놨다. 아들이 와서 6시간인가 7시간동안 가르쳐주기도 했고..."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자니 별일 아닌 것 가지고 다투기도 일쑤였다고 한다.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구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남편과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으니 살 것 같더란다.

또 다른 친구도 남편과 함께 복지관에 가서 무언가 배울 것을 찾아 등록했다고 한다. 친구는 동화구연을, 남편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그런 곳에 혼자 가기가 무척 어색하고 멋쩍은 모양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우리도 내일 모레면 퇴직인데 걱정이다. 우리 남편도 밖에 잘 안 나가는 스타일이고 잔소리가 장난 아니거든."
"네 남편은 안 그럴 것 같은데 참 의외다. 쟤네처럼 너도 주민센터나 복지관에 함께 가봐."

친구는 "고집이 세서 우린 그것도 안 통할 것 같아. 아참, 네 남편은 언제 퇴직이니?"하며 내게 물었다. "다행히 아직은 일거리가 있어서 일하고 있기는 해. 우리 남편은 오히려 집에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금도 주말이면 농사짓느라 더 바빠. 하지만 또 모르지.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변할지"라고 말했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우리도 주말농장을 해볼까?"라고 한다. "얘, 주말농장도 본인이 맞아야지. 쟤 남편은 그게 잘 맞는 것 같더라"고도 한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만약 내 남편도 집에만 있으면 난 어떻게 해야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소파에 누워서 TV만 보는 남편, 짜증이 올라와

"남편이 집에만 있는 거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남편이 소파에 리모컨 들고 누워있는 거 보면 나도 모르게 뭐가 확 올라온단니깐?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만날 때가 좋았지"하며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도 있다.

그 말에는 나도 크게 공감이 갔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이었기에 며칠이고 일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소파에 누워서 TV만 볼 때가 간혹 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그럴 때는 주방에 가서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일부러 아예 늦게 집에 왔던 적도 있다.

친구가 "얘들아, 우리 남편 오늘 어디 갔는 줄 아니?"라고 물었다.

"어? 어디 또 갔어?"
"옆에 있는 여자가 수영 잘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차도 한 잔 사주라고 했어."
"어머 얘 그러다 눈 맞으면 어쩌려고?"
"바람이 나도 좋으니까 그렇게라도 가끔 나갔으면 좋겠어."

친구는 호탕하게 웃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으로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얘, 우리 나이에 남편들이 바람 나면 남편은 쪽박이고, 여자들은 대박이라고 하더라.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라고 한다.

남편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참 많은 고생을 했다. 요즘은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 공공센터에 남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제법 생겼다. 그곳을 찾는 남자들도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수영을 하러 가보면 나이가 지긋한 남자 여럿이 수영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남편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앞으로도 좀 더 많은 남편들이 아내들 못지 않게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태그:#퇴직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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