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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만 하던 제가 요즘 법제처, 법률구조공단, 건축법 등을 찾아다니고 정보검색하고 있어요.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면 소송 말곤 방법이 없대요. 근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응급실에 누워있는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의 설움은 그칠 줄 모른다.

"얼마 전에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다들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말리더라고요. 사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너무 억울해서요. 이렇게 해서라도 남편 억울한 거 알리고 싶어서요. 경찰도 외면한 일이니 이렇게라도 해야죠."

6월 11일 오전 10시 10분경 전주시의 한 신축빌라 2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던 중 발코니 난간이 뽑히면서 작업하던 설치기사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실외기를 안고 추락한 이아무개씨(40)는 우측 측두엽과 전두엽 등 두개골 여러 곳과 광대뼈, 손목 등에 골절상을 입었으며 안구 손상, 척추손상으로 거동이 힘든 상태였다. 사건 당시 3일 동안 응급실에 있다가 응급병실로 옮겨졌으며 현재 증상이 호전되고 있기는 하나 시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함께 추락한 유아무개씨(39)도 갈비뼈 3개가 골절됐고 골절된 뼈로 폐가 손상되면서 치료하고 있다.

뽑힌 발코니 난간이 사건 당일의 참상을 짐작케 한다
 뽑힌 발코니 난간이 사건 당일의 참상을 짐작케 한다
ⓒ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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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씨는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일부 기사에 제가 발코니 난간 밖으로 나가 실외기 받침대를 밟고 있었다고 나왔더라고요. 그게 아니고 발코니 안쪽(거실)에서 2명이 실외기 양쪽을 들고 베란다 난간에 설치된 지지대로 옮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간이 힘없이 뽑혀버린 겁니다."

이사 예정인 세입자가 실외기를 설치하고자 설비기사를 부른 것이 11일, 거실을 확장한 형태라 발코니 난간 외에는 설치할 장소가 없어 난간 밖으로 실외기를 들어 올리다가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당일에 대해 세입자는 '내가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아찔했다'고 전했다.

피해자의 부인 오아무개씨(35)는 "남편이 살아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그렇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조사해주는 건 줄 알았는데, 경찰에서는 조사를 안 하고 있다고 해요. 저보고 부실공사를 증명해오면 그때 다시 신고하라고 하니… 집주인은 세입자가 부른 것이니 자기 잘못은 없다고 하고…"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7일 피해자 가족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 구청 건축과로 '부실공사' 민원에 대해 문의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해당 직원의 반응에 몹시 당황했다.

"담당 직원이 구청 건축과는 그런 걸 조사해 주는 곳이 아니라며 경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참을 따지듯이 쏘아붙이는데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민원 신청을 하고 싶으면 하라고 그렇지만 해줄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도 했고요.

분명 준공허가를 해 준 기관일 건데 부실공사에 대한 검증해 줄 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사실 부실공사 여부를 조사할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은 있지 않나 싶어요. 안전하다고 준공허가 내 준거잖아요.

전화하자마자 따지듯이 몰아붙이니 어이가 없어 한참 듣고 있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다가 혹시 자기한테 불똥 튈까 봐 저러나 싶기도 했고요."

고정되어있던 발코니 난간 측면이 뽑힌 모습
 고정되어있던 발코니 난간 측면이 뽑힌 모습
ⓒ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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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에어컨 실외기나 새시 등을 설치하다가 아파트 난간이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난간에서의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도 난간에 대한 관련 법규가 높이와 재료 외에는 없다. 감당해야 할 하중에 대한 기준이나 난간 설치 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자세한 규정이 없어 앞으로도 유사 사건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난간은 위험한 장소에 설치되어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다. 그렇기때문에 더욱 명확하고 실제적인 법규가 필요함에도 관련 법규는 너무나 소극적인 실정이다. 또한 구체적인 관련 법규가 없으니 사건 발생 시 처벌할 방법 찾기도 쉽지 않다.

발코니 난간을 지지하고 있던 5~6cm정도의 못이 난간이 뽑히면서 드러난 모습.
 발코니 난간을 지지하고 있던 5~6cm정도의 못이 난간이 뽑히면서 드러난 모습.
ⓒ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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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경우, 빌라 발코니를 지지하고 있던 난간은 측면과 하단에 각각 6cm 정도의 짧은 못 2개로 고정되어 있었다. 못의 고정 위치 또한 빌라 외벽의 벽돌에 위태롭게 박혀있었으며 난간이 뽑혀나간 곳에는 벽돌도 함께 떨어져 나가 있었다.

건축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발코니 난간이 건축 초기부터 설계되면 난간 봉이 양쪽 외벽에 삽입된 후 시멘트처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건축 후 난간이 설치될 때는 앙카로 고정하기도 한다"고 한다.

피해자는 있으나 그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법안이 없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부터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피해자 이씨는 말했다.

"돈 없고 뒷배 없으면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얼마 전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눈물짓던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사실 매년 크고 작은 사건은 계속 일어났고요. 지금 이 순간도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분들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네요. 결국, 저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도 법은 저의 손을 들어주진 않을 거니까요."

이어 이씨는 다시금 제 2, 제 3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발코니 난간에 대한 안전규정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발코니 난간을 고정하던 측면 못이 벽돌과 함께 떨어져 나간 뒤 시멘트로 붙여놓은 상태. 난간을 고정한 위치가 하중을 지탱하기엔 다소 위험해 보인다.
 발코니 난간을 고정하던 측면 못이 벽돌과 함께 떨어져 나간 뒤 시멘트로 붙여놓은 상태. 난간을 고정한 위치가 하중을 지탱하기엔 다소 위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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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사 사건으로 2008년 새시를 설치하다 난간 붕괴로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옥외에 설치하는 난간의 재료는 철근콘크리트 등 강도 및 내구성이 있는 재료를 사용해 난간이 안전한 구조로 설치돼야 한다. 그러나 난간이 견뎌야 할 하중의 정도가 명시되지 않은 점, 발코니 난간은 안전 난간대로서 거주자 등의 추락을 방지하는데 설치 목적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건설사가 추락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난간 안전규정에 대한 허점이 여실이 드러나는 판결이다.

2011년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다가 분리형 난간이 젖혀지면서 추락한 사고에 대해서 법원은 "위험 경고표시를 하지 않은 아파트 시공사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는 했으나 부실공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유족들의 주장에는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새시와 실외기 설치 등 위험직종에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안전장비나 위험 상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희박하기에 억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예방 밖에는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내 쉬는 피해 가족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태그:#전주 송천동, #부실공사, #발코니 난간 붕괴, #에어컨 실외기 ,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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