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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 사회적경제 관련 분야로 이직을 결심했을 때, 나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풍요롭지는 않지만 여유로운 삶'을 강조했다. 비록 연봉은 절반이 훌쩍 넘게 깎이지만 영리기업의 영업사원으로 회사를 다닐 때보다 야근도 덜 할 것이며, 주말도 보장받을 수 있기에 가족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위의 설득은 아내에게 꽤 매력적인 듯했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는 그녀의 입장으로서는 바쁜 회사 업무에 집을 무슨 하숙집 드나들 듯 하는 남편보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렵더라도 빨리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는, 심지어 아침에도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남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내는 기꺼이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세 번 하던 외식을 한 번으로 줄였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었으며, 될 수 있으면 과소비가 벌어질 수 있는 대형마트에 가지 않았다.

공연연습 전 몸풀기
 공연연습 전 몸풀기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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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배우의 호랑이 연습
 전문 배우의 호랑이 연습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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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 사람 일이 자기 마음대로만 된다던가. 예상과 달리 나의 업무는 마냥 여유롭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에는 이사를 와서 회사와 집이 가까워진 탓에 오전 8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었지만(첫째 까꿍이의 유치원 등원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저녁의 야근은 이전 회사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때는 오히려 야근이 더 잦아지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보니, 직장인 퇴근 시간에 맞추어 교육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 주말은 어떠한가. 예전 회사에서는 주말에 일을 해봤자 아주 가끔 회사 야유회가 있거나 사고가 났을 때 등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주말 행사가 다반사였다. 일반 주민들을 상대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려다 보니,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이 곧 행사에 적합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아내의 불만은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직을 할 때 했던 얘기와 너무 다른 현실에 아내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고, 또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가정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는 아내.

할 말이 없었다. 과연 이 난국을 타계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협동조합을 소개하다

예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육아를 도와줄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형국.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교육이었다. 난 아내에게 내가 집에 일찍 귀가하지 못하는 대신 우리 단체가 기획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교육을 들으라고 추천했다. 어차피 내가 스태프인 바, 일을 하면서 아이 셋을 보고 있으면 되니 아내더러 나 대신 협동조합에 관한 수업을 들으라고 한 것이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골머리를 썩느니 차라리 교육 듣는 게 낫겠다며 나의 제안을 선듯 수락했다. 오히려 도시에서 자란 나보다 지리산 밑 시골에서 자란 자기가 협동조합에 더 어울릴 것이라며 아이들을 내게 맡긴 채 열심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잠든 아이를 안고 토론 중인 아내
 잠든 아이를 안고 토론 중인 아내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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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열심히 공연 연습 중
 엄마들은 열심히 공연 연습 중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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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아내와 협동조합의 만남. 실로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었다. 결혼하기 전 작업을 하거나 뭔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보여주던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내는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그래, 결혼하자마자 아이 셋을 키우면서 얼마나 배움에 목말라 있었을까. 무엇을 들어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지금, 게다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라지 않은가.

아내는 협동조합 강의 중 특히 서울 동작구 성대골 사례에 주목했다. 유호근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초빙되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대골 협동조합의 형성과정을 나누는 강의였다. 아내는 그 수업을 들으면서 뭔가를 적어가며 감탄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끝난 뒤 아내는 내게 급한 듯 뭔가를 선언했는데, 자신의 각오를 되새기기 위한 일종의 자기암시 같은 사자후였다. 내용인즉, 협동조합과 관련된 뮤지컬을 하나 만들겠다는 것. 그래, 나의 아내는 뮤지컬 작가 아니었던가.

얼마나 큰 영감을 받았는지 그 짧은 수업 시간에 아내는 벌써 작품의 큰 뼈대를 그려 놓았었다. 유호근 국장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 용산 참사와 같은 자본의 끔찍한 참사를 딛고 협동조합을 하나둘씩 만들어 가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는, 그래서 결국 그 황폐화된 지역을 회생시키는 이야기.

이후 아내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협동조합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작품 구성에 가감을 요청했으며, 내가 이 분야에서 배운, 채 여물지 못한 지식과 사례들을 공유하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지친 육아로 짜증만 가득했을 텐데, 이제는 그 자리에 아내의 학구열과 협동조합에 대한 열망이 대신하고 있었다.

감사! 협동조합. 나는 계속해서 바람을 잡아가며 아내가 계속해서 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내의 극단 만들기

연습은 아이와 함께
 연습은 아이와 함께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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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역시 아이를 업고
 건반 역시 아이를 업고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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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 아이 셋을 돌보며 작품 쓰기가 쉬운 일이던가. 계속해서 작품을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던 아내는 협동조합 공부를 더 하더니 다른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협동조합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게 되면 그 작품을 받아 공연해야 할 극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마을에서 만들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비록 당장은 협동조합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극단을 만들어 추후 협동조합으로 돌리겠다는 아내.

아내는 연기나 공연 등을 계속 하고 싶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중간에 포기해야만 했던 지역의 인재들을 모아 극단을 꾸리겠다고 했다. 특히 그녀는 그 중에서도 자기와 같은 주부들에게 주목했다. 결혼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어 정작 자신의 능력을 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혹자들은 엄마들의 채 펴지 못한 욕망이 자식들에게 투영되어 작금의 왜곡된 사교육 열풍의 근간을 이룬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아내는 즉시 지역 주부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 카페에 '마을극단'에 대한 출사표를 올렸다. 그 게시판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입 후 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는데 아내는 너끈히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해 냈고 '마을 극단'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표출했다.

"자, '마을극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이세요."

아내가 이와 같은 글을 카페에 올리자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보듯이, 아이만 돌보던 숨어있던 인재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 둘을 낳은 뒤 그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떻게 할지 몰라 답답해 하던 보컬 출신의 엄마에서부터, 무려 석사까지 피아노를 전공했음에도 육아를 하느라 모든 것을 놓고 있던 엄마, 한국무용을 하다가 8년 만에 임신하게 된 아이 때문에 모든 걸 접었던 엄마, 둘째를 갖기 위해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위치를 포기해야 했던 엄마.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름대로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적인 제약에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이들이었다.

엄마들은 연습 중
 엄마들은 연습 중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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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그들을 모아 극단을 만들어 갔다. 다행히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는 그들을 마을의 이름으로, 혹은 사회적경제의 이름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지원금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으며, 또한 각기 흩어져 있는 자원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일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품앗이처럼 각자의 재능을 보태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로만 배워오던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내의 극단 만들기가 마냥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공동체라고 갈등이 없었겠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와중에 나갔고, 또 들어오면서 각자의 가치관을 함께 나누고 조정했다. 그 중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주부로서 갖는 한계, 육아와 살림이었는데 이는 다행히 남편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면서 풀어나갔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내가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에 기꺼운 마음이었겠지.

기대된다, 아내의 초연이

극단이 곧 공동육아
 극단이 곧 공동육아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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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읽기
 대본읽기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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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 맞추고 공연을 기획한 지 7개월.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7월 4, 5일), 아내의 마을극단이 드디어 처음으로 공연을 하게 된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해서 과연 이 극단이 잘 굴러갈 수 있을까 회의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경을 이겨낸 채 극을 올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마을극단 밥상'이라는 어엿한 이름까지 걸고.

이번 공연은 주부들이 주가 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이다. 고전 중의 고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의 <해님, 달님>인데, 옆에서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건데 적지 않은 공이 투여됐음은 물론이다. 실제 가수, 배우 출신의 엄마가 연기 지도 및 연기를 하고, 음악을 전공을 한 엄마가 작사, 작곡, 편곡을 한다. 또한 디자인을 전공한 엄마가 포스터를 만들고, 의상을 전공한 엄마가 소품들을 만들고 등등 모두가 자신의 재능을 쏟아 부으며 내가 아직 '살아있네'를 외치고 있다.

남편으로서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자랑스러운 감정이 우선이다. 어쨌든 아내가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이뤄냈다는 것이 대견스럽고, 또한 그런 열정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나의 이직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에, 아내의 이번 공연은 나의 선택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의미 부여이기도 하다. 돈 보다는 시간과 가치를 택했던 우리 가족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

이틀 뒤에 있을 아내의 초연. 많은 이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한다. 비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박한 뮤지컬이지만, 많은 공이 들어갔고, 뜨거운 열정이 투여되었다. 초연을 바탕으로 그들의 꿈이 마을에 퍼지기를,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그들이 협동조합으로 전환되어 다른 이들의 롤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꿈은 꾸는 자의 몫 아니던가.

'마을극단 밥상' 파이팅!

'해님달님'
▲ 마을극단 밥상의 초연 '해님달님'
ⓒ 마을극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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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마을극단 밥상'의 <해님, 달님>은 7/4일~5일 16시 강동구 고덕동 '함께크는북카페'에서 열립니다. 문의전화는 010-3023-0336 / 010-5493-8394, 입장료는 1000입니다. 마을극단 밥상은 찾아가는 공연도 가능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주세요



태그:#육아일기, #마을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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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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