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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수막 중 하나인 '멧돼지 출현 주의'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의상봉에 멧돼지가 나타나서 사람이 다쳤어요. 구급차 오고 난리 났었잖아요. 죽지 않았나 몰라, 많이 다쳤다던데... 혼자 산에 다니시면 위험해요. 지팡이라도 가지고 다니세요. 그래야 멧돼지가 나타났을 때 휘젓기라도 하죠."

지난 6월 28일, 주말 산행을 위해 북한산에 갔다가 들른 아웃도어 매장에서 주인이 말했다. 며칠 전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날 산행 내내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등산객도 많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 주변을 둘러봤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름날, 정오 무렵에 산에 오르는 날 초심자로 짐작하고 등산용 지팡이를 팔아먹으려는 상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장 주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산행 내내 궁금했던 터라 하산하자마자 안면 있는 아읏도어 매장에 들러 물어봤다.

"멧돼지 자주 나타나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산 밑에도 나타나고 그러는데요, 뭐. 멧돼지랑 함께 걸어가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지팡이 같은 걸로 휘저으면 절대 안 돼요. 그럼 공격하는 줄 알고 덤빌 거예요. 가만히 두는 게 상책이에요. 그냥 두면 먹을 것 먹고 사라져요. 아마 배가 고파 내려왔을 거예요. 그래서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웃도어 매장 주인은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몇 번 가본 적 있는 길에서 누군가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점도 그랬고, 내가 자주 찾는 구간에는 멧돼지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그랬다. 이제까지 멧돼지는 야행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대낮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멧돼지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건 금물"

잊을만하면 도심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나온다. 산행 중에, 혹은 거리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 것이 현명할까? 이재진 북한산 인수대피소 구조팀장에게 물어봤다.

- 지난 6월 21일 오전 11시 즈음에 북한산 의상봉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데 정말인가? 야행성인 멧돼지가 낮에 나타났다는 것이 의외다.
"그렇다. 멧돼지가 나타난 것 맞다. 북한산에 수시로 나타난다. 우리도 자주 봤다. 대부분 멧돼지는 야행성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단히 잘못 알고 있다. 낮에도 잘 나타난다. 멧돼지가 밤에 먹이를 찾으러 다닌 뒤 휴식을 취한 후에 다른 활동을 하러 돌아다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 그렇다면 늦은 오후에 나타날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전날 밤에 먹이를 찾으러 다니고 다음날 오전이나 한낮에는 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늦은 오후나 해질 무렵에 나타날 확률이 높다. 때문에 일몰 무렵에는 산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원칙적으로 일몰 후에는 산행을 금지하고 있다."

- 구급차까지 출동할 정도로 많이 다쳤다는데,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했는가?
"많이 다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멧돼지가 먼저 공격해서 다친 것이 아니다. 멧돼지는 절대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멧돼지는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고 경계한다. 사람이 놀라서 먼저 소리 지르고 도망치니까 멧돼지도 위협을 느껴 본능에 따라 뛰게 되고, 그러다가 떨어져 다친 것이다. 평소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침착하게 대응해서 다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

- 지팡이를 휘저어서 쫓아내는 것은 좋은 대처 방법인가?
"잘못 알고 있다. 오히려 공격하는 줄 알고 멧돼지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 돌멩이를 던지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스틱이나 돌멩이로 주변 바위를 때려서 소리를 내는 것은 도움이 된다. 멧돼지도 주변을 경계하며 다닌다. 그래서 소리가 나면 공격받을 수 있다는 본능 때문에 도망간다."

- 가까운 거리에서 멧돼지를 만났다면?
"침착하게,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 몸을 가릴 수 있는 나무나 바위가 있으면 최대한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말고 그 뒤로 가 숨으면 된다. 위협이 느껴지지 않으면 사람을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 관련하여 등산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북한산은 다른 산에 비해 멧돼지 출현이 적은 편이다.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방심해서도 안 된다. 북한산은 물론 전국의 국립공원 산에는 안전한 산행을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이나 주의해야 할 것을 알리는 안내 게시판을 많이 설치했다.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런 안내문에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 또 안내 지침에 적극적으로 따라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