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 진짜 재미 없다."

갑자기 옆자리에서 열심히 축구를 보시던 코린치앙스 축구팬 아저씨가 한마디 툭하고 던지셨다. 경기 시작하기 전, 유니폼을 챙겨 입으신 채, 커다란 가방을 들고 들어오신 나이가 지긋한 브라질 아저씨였다.

미소를 지으며 "한국인이니? 사진 좀 찍자, 오늘 경기 잘 하고!" 라는 친절한 응원을 던지시던 분이셨는데, 후반전 중반을 넘어가던 중 갑자기 툭 하고 던지신 말씀에 더욱 더 힘이 빠졌다. 챙겨오신 소형 라디오로 오늘 축구 중계를 들으시며, 코에 간신히 얹혀진 안경 너머로 사이사이 리플레이되는 화면을 열심히 보시던 분에게 들었던 말씀이라 그런지,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한 것도 같다.

열정적인 응원을 던지는 브라질 관중들 경기가 지지부진하자, 6만여의 관중들이 파도타기를 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경기가 지연되면 여지없이 커다란 야유로 선수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 열정적인 응원을 던지는 브라질 관중들 경기가 지지부진하자, 6만여의 관중들이 파도타기를 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경기가 지연되면 여지없이 커다란 야유로 선수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 이창희

이번 3차전은 여기 상파울루를 홈으로 두고 있는 코린치앙스의 서포터분들과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하나 둘 모여드는 유니폼을 챙겨입은 현지인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경기가 벌어지는 내내, 이들은 그들 나름의 응원으로 조금은 더 '좋은' 경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 마다 흥겨운 응원을 던지고, 경기가 늘어지게 되면 여지없이 야유를 보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와 벨기에의 경기가 그들의 눈에는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옆에서 계속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에 짜증이 섞여있었던 것을 보니 말이다. 이들은 경기가 지루해지면, 여지없이 야유를 보내며 선수들에게 경고를 보내곤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숙소로... 속상함에 잠 못드는 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한국이 치러낸 예선 세 번째 경기가 오늘(26일, 브라질 현지시각) 상파울루의 코리치안스 경기장에서 방금 전 끝이 났다. 단언컨대, 최근 20년 동안 열렸더 다섯 번의 월드컵 중, 가장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만 월드컵이 끝이 난 것이다.

지난 2차전에 비해서는 매우 활발한 운동량을 보인 것 같았으나 고질적인 골 결정력의 문제는 벨기에의 퇴장이 있고 난 후 계속된 10대 11의 상황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따라 경기장을 가득 채운 붉은색의 악마들은 (공교롭게도 벨기에 역시 원조 붉은 악마이다.) 지난 예선의 다른 경기에 비해 매우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으나, 선수들은 끝까지 골에 다가서지 못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브라질 월드컵을 끝내고 말았다.

경기가 열린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의 전경 코린치앙스 팀의 홈구장은 푸른 하늘로 열린, 매우 시원스런 경기장이었고, 오늘 총 6만여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함께 했다.

▲ 경기가 열린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의 전경 코린치앙스 팀의 홈구장은 푸른 하늘로 열린, 매우 시원스런 경기장이었고, 오늘 총 6만여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함께 했다. ⓒ 이창희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힘이 들었다. 승리의 기쁨이나, 멋진 경기에 대한 감동을 함께 안고 돌아오길 희망했던 그 길은, 어느해보다 더 멀었던 원정에서, 8년만에 느껴본 최악의 경기력에 대한 실망감으로, 그 어느해보다 더 힘이 들었던 듯 하다. 숙소에 들어온 지금도 월드컵에 대한 아쉬움과 속상함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언제쯤 대한민국의 축구를 즐기게 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혼이나 돈잔치가 아닌, 그저 즐거운 축구이지 않을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수 많은 평범한 브라질 사람들을 보고난 지금은, 더욱 더 그런 대한민국을 희망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 관중석 옆 자리에서 우리 경기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었던 그 코린치앙스 팬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적어도 이번 브라질 월드컵의 한국 세 경기를 통해 만난 브라질 축구 팬들은, 경기 자체의 즐거움이 결과보다 우선해야 함을 계속 느끼게 해 주셨으므로...

"잘 가, 꼬레아."

경기가 끝나자, 옆자리 아저씨가 던지신 마지막 인사가 계속 귓전을 울린다.

승리에 환호하는 벨기에 응원단들 경기장을 나서는 길, 벨기에 응원단의 환호에 다시 한 번 기가 죽었다.

▲ 승리에 환호하는 벨기에 응원단들 경기장을 나서는 길, 벨기에 응원단의 환호에 다시 한 번 기가 죽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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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벨기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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