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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스무 살, 대학은 나에게 '해방구'였다. 꿈이 무언지도 모른 채 뛰어든 입시경쟁이 고달팠기에, 수험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대학에 입성한 것만으로도 나는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해방은 그 다음에 있었다. 주류 질서를 깨는 상상력, 자본과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어깨 걸고 나아간 광장의 함성은 체제 순응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우리가 진실로 보아야 할 알맹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이념이기보다, 사람이었다.

그렇다. 대학생활은 나에게 사람을 온전히 보게 해주었다. 가진 돈의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 앞에 겸허해질 줄 알게 했고, 잘난 개성보다 촌스러워 보였던 우리의 대동(大同)도 즐거울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평범하기만 한 나의 생활을 뒤흔들어 놓았다. 반면 그 존엄과 대동을 가르려는 불의와 차별은 다수의 힘에 의해 대학 밖으로 밀려났다.

비단 나뿐이었으랴. 캠퍼스를 거닌 동시대인들에게 낭만이 저항이고 저항이 낭만이었던 당시 생활을, 나는 줄곧 '햇빛 넘치던 대학시절'이라고 옮기곤 했다. 그리고 그 저항의 산물로서 내가 얻은 최대의 결실은 삶의 자존감이었다.

제 머리로 생각하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알게 된 것도, 복잡한 세계에 적응하고 때로는 세계를 주도할 힘을 기른 것도 모두 그 시절이 내게 남긴 것들이다. 지금처럼 온통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고 협동보다 경쟁을 당연시하는 세상에도 내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사람' 짓밟은 대통령이 경영학 명예박사라니...

이명박 전 대통령. 지난해 2월 24일 퇴임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사저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지난해 2월 24일 퇴임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사저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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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선 저항 대신 스펙이 더 중요해졌다. 강단 밖의 배움은 허송세월이 되고, 강단 안의 학점이 청춘의 시간마저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돈이 안 되는 학과는 통합되거나 폐지되었으며, 자율을 강탈한 교육행정은 예산을 미끼로 대학을 권력서열화에 묶어두었다.

대기업의 작은 매장이 입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던 캠퍼스는 어느새 자본력의 블루오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별로 순위를 매기고 채용인원을 할당하려던 삼성그룹이 벌인 해프닝은, 이처럼 추락한 대학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물론 나는 드라마 <응답하라1994>에서 봤듯 민중가요 <바위처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하여 현재의 대학을 책망할 자격이 없다. 대학 운영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 직원이 혼돈스런 시대에 맞서 수행하는 고군분투를 나의 '햇빛 넘치던' 추억으로 비평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것은 사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람의 존엄을 가차 없이 누른 자다. 아직도 나는 용산 철거민 참사, 쌍용자동차 노동자 유혈진압을 잊을 수 없다. 살고 싶다는 사람을 몽둥이로 내리쳐 놓고도 도덕에 구애받지 않은 권력이었다.

생명보다 돈이면 다 된다는 규제완화로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이며, 언로를 장악함으로써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게 된 감시사회의 입안자였다. 다른 의견은 모두 정치적 공세로 돌린 불통 정치가 그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지난 관권부정선거 행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것도 사실이다. 토건비리와 '녹조라떼'가 창궐하는 4대강은 또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사람' 일깨워준 세월호 참사... 대학은 본분 잊었나

24일 경북대학교 북문 앞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송영우 통합진보당 대구시당 지방자치위원장
 24일 경북대학교 북문 앞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송영우 통합진보당 대구시당 지방자치위원장
ⓒ 송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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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에게 국립 경북대학교 본부에서 최고의 졸업장인 박사학위를 명예롭게 수여하겠다고 한다. 지난 12일 '안정적인 국가경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이 전 대통령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해 놓은 합리적 절차도 어겼다는 내부의 반발이 이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나 역시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반(反)지성적 인물이어서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온 사회가 자본 중심의 속도를 반성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를 북돋는 시점이다. 그 선두에 대학의 성찰적 역할이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의 좌표를 바로 세우고, 어긋나 있는 사회를 일갈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경북대는 오히려 다시 돈, 돈이라는 가치를 외치는 꼴이다. 어느 지인은 이 전 대통령이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을 만하다며 이 전 대통령의 연구 공적(?)을 말해 주었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한 공직자의 이윤추구 방안에 대한 연구."

나의 모교는 경북대다. 그리하여 몹시 부끄럽고 죄송하다. 이것은 아무리 자본의 포로가 되었어도 기초학문과 비판적 지성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학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학위 철회 1인시위를 함께 할 동문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스스로 몇 번이고 되묻고 확인한다. 이는 경북대 출신이라는 개인적 자괴감을 넘어선 문제라고 말이다. "거 봐, 대학은 죽었어"라고 확인하는 나쁜 화룡점정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살아 있네?"의 반전으로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인가. 지금 경북대는 기로에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송영우 기자는 경북대 92학번으로, 지금 통합진보당 대구시당 지방자치위원장입니다



태그:#이명박, #명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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