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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청년유니온 사무실 근처 고시원에서 3개월 가량을 지냈다. 부족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고민 하다가 고시원 바로 앞 빵집에서 주말 오전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빵집 직원이 되었다.

내가 맡은 주된 업무는 반죽 상태인 도너츠나 고로케 따위를 식용유에 튀기는 일이었다. 150도로 끓는 기름솥 앞에서 제빵 기사가 건네주는 반죽을 쉴 새 없이 뒤집다보면 반나절이 훌쩍 흐른다. 너무 높은 곳에서 반죽 덩어리를 떨어뜨리면 팔뚝에 기름이 튀니 적당한 높이에서 투하해야 한다. 문제는 적당한 높이를 유지하며 정성스럽게 빵을 튀기기에는 일감이 너무 많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데 있다.

150도로 끓는 기름솥 앞에서 제빵 기사가 건네주는 반죽을 쉴새없이 뒤집다보면 반나절이 훌쩍 흐른다.
 150도로 끓는 기름솥 앞에서 제빵 기사가 건네주는 반죽을 쉴새없이 뒤집다보면 반나절이 훌쩍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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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100개의 반죽을 튀기다 보면 90개는 적당한 위치, 9개는 높은 위치, 1개는 낮은 위치에서 떨어진다. 높은 위치는 팔뚝에 기름이 튀었음을 의미하고, 낮은 위치는 반죽과 함께 손가락을 잠시 기름에 담갔음을 의미한다. 숙련되지 않은 단기 아르바이트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넘어가기에는 펄펄 끓는 식용유가 선사하는 고통이 가볍지 않다.

빵집의 시급은 말할 것도 없이 '최저임금'에 준해 정해진다. 주말 이틀에 걸쳐 하루 5시간 일하면 한 달에 30만 원 가량이 통장에 꽂힌다. 한 달치 고시원 방세 정도 되는 금액이다. 하루 일을 마치면 기름에 벌겋게 익은 팔뚝을 부여잡고 드러누워 멍하니 고시원 천장을 바로봤다.

똑바로 누우면 반대편 벽에 발끝이 닿는 좁아터진 고시원 방세와 수 천개의 반죽을 튀긴 노동력의 대가가 엇비슷하다니. 방세가 비싼 건가, 내 월급이 쥐꼬리만한 건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 의미 없는 고민을 거듭하다 잠이 들곤 했다.

단팥빵뿐만 아니라 치즈케이크도 허하라

꿈나무 카드는...
꿈나무 카드는 서울시가 2009년 7월 1일, 생계때문에 식사를 못 하는 어린이를 위해 도입한 카드이다. 결식 어린이가 사는 지역 주민자치센터는 해당카드를 발급하는 역할을 한다.

어린이의 가정환경에 따라 하루 몇끼를 제공할 지 결정한다. 하루 한끼 지원 금액은 4000원이고, 사용횟수의 제한은 없다. 또한 사용 금액은 최대 이틀간 적립된다. - 출처: 위키백과
서울시는 2009년부터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의 식사비를 지원하기 위해 꿈나무 카드라는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 꿈나무 카드는 분식집, 빵집, 편의점 등 가맹 사업장에서 1회 4000원 한도에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빵집에서 일하는 동안 이 꿈나무 카드를 처음 봤다.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라 꿈나무 카드로 빵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꿈나무 카드는 분명 좋은 제도지만 요즘 세상에 4000원으로 빵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에는 선택지가 녹록치 않다. 손바닥만한 샌드위치가 진열된 냉장고에는 5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팥빵, 소보루빵, 슈크림빵 등을 두어개 집어서 우유와 함께 계산하곤 했다.

꿈나무 카드를 이용하는 이들 중에 유독 눈에 밟히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쯤 매장에 들어와서 항상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를 구입했다. 하루는 치즈케이크, 하루는 블루베리케이크, 또 어떤 날은 초코케이크를 골라서 가져왔다.

인간의 삶은 하루 권장량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색에 잠기고 새로운 문화와 마주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탐구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음식물 섭취와 안전한 보금자리만으로도 충분한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인류를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이이다. 인간에게는 단팥빵과 치즈케이크가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단팥빵만을 허락한다. 아니. 사실 그마저도 잘 허락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각박한 가계부... 소득의 70% 가량 생계비로 지출

지난 12일 최저임금인상을 촉구하는 12개 청년학생단체의 기자회견 모습.
 지난 12일 최저임금인상을 촉구하는 12개 청년학생단체의 기자회견 모습.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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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이 2012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100~120만 원)을 받는 청년 노동자 10여명의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식비와 주거비, 교통비 등 생계 필수비용에 전체 소득의 70% 가량을 지불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교육과 문화생활을 위한 지출은 각각 월 2~3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상당수 비정규, 파트타임, 여성, 청년 노동자들의 소득은 최저임금 선에서 결정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14.7%에 달하는 258만 명 정도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위의 분석 결과에서 나타나듯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가계부는 대단히 각박하다. 심지어 위태롭기까지 하다.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와 저축 부문의 지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상시에는 밥을 사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오는 등 기교를 발휘하며 꾸역꾸역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으나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급작스레 질병을 얻거나 해고를 당하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 가계부로는 속수무책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수백만 국민의 삶이 위축되면 공동체의 번영도 위축된다. 자기계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정체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따른 이직률이 높아지니 기업의 경쟁력도 악화된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번영을 동시에 위협하는 이 나라 경제의 악순환을 단호하게 끊어내야 한다. 가장 가깝고 정확한 해법은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미국의 2기 오바마 행정부는 현행 7.25달러 수준인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인상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이를 핵심 어젠다로 강도 높게 다루고 있다. 시간 당 임금으로는 한화 기준 약 3000원, 비율로는 약 40% 인상에 해당하는 법안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최저임금 5210원에 40% 인상률을 적용하면 무려 7300원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오바마 정부의 절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일본의 아베 정부 또한 각계 기업에 직원들의 임금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소비를 확대하고 내수를 활성화 시키는 경제전략은 돌이킬 수 없는 국제적 대세가 되었다. 곧 내년도 최저임금을 발표하게 될 한국의 최저임금위원회를 주목하게 되는 배경이다.

최저임금 정부위원들이 '저잣거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

한국의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라는 곳에서 결정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현재 막판 심의 일정을 거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오는 27일, 2015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될 것이다. 이 최저임금위원회는 9명의 정부(공익)위원, 9명의 사용자위원, 9명의 노동자(근로자)위원으로 구성된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노동자위원과 동결해야 한다는 사용자위원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진행되지만, 종국에는 정부에서 임명한 정부위원의 중재안에 따라 최저임금액이 결정된다. 최저임금위원회, 보다 정확히는 정부위원에게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소생도 가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잣거리로 나갑니다. 비단옷을 입고 활보하는 귀족들 앞에 엎드려 있는 걸인들을 봅니다. 시전에서 온갖 물건들과 먹거리들 옆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의 땟국물 흐르는 얼굴을 봅니다. 오늘도 소생 거기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 KBS 드라마 정도전 中

한 국가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확신에 찬 최선의 금액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교수직을 맡고 있는 최저임금 위원들에게 고상한(?) 빵집 아르바이트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해답은 저잣거리에 있다.

거리로 나가 무역 규모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오늘의 밥값과 내일의 삶을 걱정하는 이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시길 바란다. 최저임금은 의전용 의자가 배치된 위엄 있는 회의장이 아니라, 고로케를 튀기며 고시원에서의 생활을 연명하는 청년의 구체적인 삶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태그:#청년유니온,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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