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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 가까이 다가가도 가파른 암벽에서 풀을 뜯는 데만 열중한다. 한꺼번에 두 마리를 목격하긴 처음이다. 암수 한 쌍인 듯 했다. 힐끗 한번 나를 보고는 그만이다. 내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스스로 이 녀석들에게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거리는 한계가 있다. 녀석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버튼을 눌렀다.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멸종위기 1급 동물인 산양이야기다. 화천 평화의 댐 주변 동서녹색도로에서 DMZ 오작교 구간엔 유독 산양들이 많이 산다. 겨울철엔 하루에 수십 마리가 목격되곤 한다. 

 

이 곳엔 '포'자 이름을 가진 지역이 많다

 


지난 6월 18일, DMZ와 연계한 관광자원 발굴에 나섰다.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위치한 평화의 댐을 따라 DMZ 최전방인 오작교까지의 탐사, 지속된 가뭄에 강은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미 강바닥의 풀들이 기다랗게 자라 물이 흘렀다는 흔적도 사라졌다. 강이라기보다 넓은 보리밭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북한강 발원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안동포가 그렇고 법성포도 그렇고 강변엔 '포'자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한양까지 육로가 없던 시절, 그곳 사람들은 뗏목이나 쪽배에 장작을 가득 싣고 한양으로 떠났다. 돌아올 땐 그들의 배엔 소금이나 의류 등이 그득했다. 장작을 판 돈으로 산 물건들이다.

 

쪽배나 뗏목을 대는 곳을 포구라는 이름대신 '포(浦)'라고 불렀다. 강 주변 동네 이름이 '포'자가 많은 이유다. 그런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원인이 뭘까?

 

북한은 1992년 1월 평화의 댐 상류 36km 지점에 가물막이 공사를 끝내고 1999년 6월부터 임남댐 공사를 강행하면서 북한강 물줄기를 동해안 원산만으로 돌렸다. 부족한 전기공급을 위한 발전소 건립이 목적이라고 했다. 남한으로 향하는 강 하류의 물 공급이 차단됐다. 최근 가뭄이 지속되자 강 주변 계곡에서 흘러들어오던 물줄기도 말랐다. 강바닥이 드러난 이유다.

 

산양이 원래 암벽타기 습성을 타고 났을까

 

강물이야 말랐건 말건 산양은 암벽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서식환경이 달라서일까, 구간마다 산양들의 성격이 다르다. 평화누리길 부근에서 발견된 산양들은 인기척만 들려도 앞뒤 안돌아보고 달아나기 일쑤다. 그런데 DMZ 오작교 부근에 서식하는 산양들은 인간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왜일까, 그곳은 최전방 휴전선 철책지역이기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다. 경계근무를 위해 교대로 철책을 따라 오가는 군인들이 전부다. 그들은 산양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적막감이 감도는 환경에서 산양은 군인들의 친구이고 이웃이 되었다. 동물들이 싫어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산양들도 군인들을 경계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전이후 6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발견했던 산양도 나를 군인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거다.

 

사람들은 산양이 암벽타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 잘못된 생각이다. 산양은 노루나 고라니와 같이 빠르지도 못하다. 살쾡이처럼 성질이 포악하지도 않다. 살길을 찾다보니 천적을 피해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습성으로 고착화 된 거다.

 

최근 이들의 습성도 점차 변하고 있다. 평화의 댐에서 안동철교 구간 동서녹색도로 주변엔 암벽이 없다. 그곳에 서식하는 산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산골짜기나 능선을 오르내린다. 표범이나 늑대 등 천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경계심이 유독 발달했다. 바스락 소리에도 놀라 달아나기 일쑤이다.

 

오작교에서 남북한 산양이 만나는 상상을 했다

 


오작교란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을 연결해 만든 다리를 뜻한다. 그런데 왜 최전방 철책을 따라 놓여 진 다리이름을 오작교라고 했을까.

 

정전 후 휴전선이 강위로 형성됨에 따라 철조망을 설치할 다리 공사를 착수했다. 물밑까지 철망을 연결했다는 것이 일반 교량과 다른 점이다. 북한군 침투를 저지하기 위함이다.

 

다리 공사가 끝나자 명칭을 무엇으로 할지 병사들 간 의견교환이 있었단다. 여러 가지 '안' 중 '오작교'란 이름이 채택되었다. 남한의 총각과 북한의 처녀의 만남을 통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의미가 담겨있단다.

 

산양도 철조망 너머 세상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들은 인간들이 그물철망도 모자라 윗부분에 철조망을 얹은 흉물스런 철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화천, #산양, #오작교, #안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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