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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북TV가 제작하는 '오봉옥 시인의 책치' 2회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좌).
 온북TV가 제작하는 '오봉옥 시인의 책치' 2회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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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정치인과 고위직 공무원은 기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어쩌다 TV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이나 출퇴근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듣게 되는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언제나 어색하고 낯설다.

'우리와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느낌부터 든다는 이야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지향하며, 꿈꾸는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지, 이 모든 것에 수월하게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궁금하다. 서민 생활의 기반이 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그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그들이 가진 철학과 세계관의 기반은 무엇인지. 케이블 책방송 <온북TV>가 지난 4월 초순부터 방영하고 있는 신설 프로그램 '오봉옥 시인의 책치(冊治)'는 바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시인 오봉옥이 사회를 보고, 정치인 혹은 문화행정의 리더가 출연해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 '책치'란 그 단어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책으로 다스린다'쯤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인과 시민이 '다스림'의 주체와 대상일순 없겠지만 어쨌건.

<온북TV> 제작진은 궁금했다. 국회의원과 전·현직 장관, 문화행정의 수장들이 대체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왔는지. 책에 관련된 프로그램만으로 24시간을 이어가는 방송사이니만치 그런 궁금증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을 스튜디오로 불러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 각 부처에 출연 초청장을 돌리기 전 아래와 같은 사전질문지를 준비한 것은 <온북TV> 제작진의 이름을 빌어 국민 대부분의 궁금증을 전달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OOO 의원(장관)님
책 읽는 정치인상을 정립해 독서 활성화와 인문학적 리더십을 일깨운다는 취지로 기획된 온북TV 프로그램 '오봉옥 시인의 책치'입니다. 의원(장관)님의 편의와 원활한 녹화·제작을 위해 아래 질문을 미리 보내드립니다.

질문 1. 정치인(문화행정가)으로 활동하기 전과 후를 통틀어 의원님께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고, 그 책의 어떤 점이 의원님을 매료시켰는지요?

질문 2. 정치에 관한 관심이 정치인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듯, 책에 대한 관심은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듯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거나 신간이 나오면 가능한 챙겨 읽는 작가는 누구인지요? 그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질문 3. 당신의 철학과 인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현실 속 인물도 좋고, 책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좋습니다.

질문 4. 인터넷과 영화, TV 등 다양화된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독서인구가 부쩍 줄어든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책이 가진 긍정적인 면과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조언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질문 5. 정치와 문화행정의 일선에 있으면서, 어려움을 느낄 때 어떤 책, 혹은 책의 한 구절에서 해법을 찾아 그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으신지요. 만약 있다면 어떤 책이 도움을 줬는지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하고 평이한 질문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겐 고통 그 자체인 질문일 수도 있는 것들이다. 전체 녹화의 틀을 이렇게 잡고 초대 손님으로 나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 들려달라고 청한 이후, 이 초대에 응한 사람은 현재(2014년 6월 12일)까지 9명.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인 도종환, 최재천, 김재윤,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영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김미희,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최광식, 한국문학번역원장 김성곤, 예술의전당 사장 고학찬이 바로 그 사람들.

올해 말까지 예정된 방송에선 이들 외에도 여야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부부처의 기관장,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래는 객관성의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오봉옥 시인의 책치'에 출연한 정치인과 문화행정가들의 이야기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옮긴 것이다. 그들은 대체 무슨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어떤 사람에게서 지향할 만한 삶의 태도를 배웠는가에 관한.

'오봉옥 시인의 책치' 첫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도종환 의원은 시와 정치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에 대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봉옥 시인의 책치' 첫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도종환 의원은 시와 정치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에 대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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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자서전부터 사회학 서적, 역사서, 소설과 희곡까지 다양한 프리즘

아직은 '국회의원'이란 꼬리표를 붙여 부르는 것보다는 '시인'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한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자신의 삶을 아프게 건드린 책으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선택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스콧 니어링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다가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선택한 생태주의자.

니어링의 염결한 삶은 도종환의 맑은 시와 연결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많은 시청자들의 고개 끄덕임을 이끌어냈다. 특히 도종환은 녹화가 있은 날에 책의 한 대목을 낭송함으로써 자신을 지탱해온 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같은 당 최재천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은 도올 김용옥의 역동적인 해제로도 유명하다. 최재천은 이 책에서 '민초를 향해 있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의 밑그림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교수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최광식은 최근 출간된 역주본 <삼국유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노자의 <도덕경>을 이야기하며 장관직 수행 시 여러 여건이 어려워질 때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떠올리며 난관을 헤쳐 나갔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 노회찬 전 의원. 그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자신과 아내를 맺어준 사연을 맛깔나게 들려줬다.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 노회찬 전 의원. 그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자신과 아내를 맺어준 사연을 맛깔나게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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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전 의원이 '내 인생의 책'으로 지목한 것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는 노동운동 선배였던 한 여성에게 프러포즈를 위해 이 책을 선물한 사연을 들려주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노회찬에 따르면 결혼을 거부하던 아내와 자신을 연결시켜준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감옥 안에서도 읽고 감옥 밖에서도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노 전 의원은 아내인 김지선씨가 "내 남편이 그렇게 재밌는 사람인 줄 TV를 보며 알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하며 파안대소하기도.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의 녹화는 이어지는 울음 탓에 여러 번 중단됐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든 기억과 야학 때 만난 아이들을 떠올리며 시작된 김 의원의 눈물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의 아래 대목을 낭독할 때 절정을 이루었다.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 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사이에 파출소 순경들도 사정을 알고 그냥 통과시켜, 밤 한 시나 두 시가 지나 집에 돌아오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는데, 이것은 그 뒤 그가 죽을 때까지 3, 4년 동안 계속되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 전태일의 가팔랐던 생애를 기록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한 대목을 낭독하면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 전태일의 가팔랐던 생애를 기록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한 대목을 낭독하면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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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의원이 그토록 아프게 울었던 이유는 숨통을 틀어쥐는 가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한 연민과 동정을 지니고 살았던 전태일의 살아생전 모습을 문장의 행간 사이에서 본 탓이었을 것이다.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 '오봉옥 시인의 책치'에 6번째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그는 '추천 도서' <함양과 체찰>을 통해 퇴계를 향한 흠모와 존경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 '오봉옥 시인의 책치'에 6번째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그는 '추천 도서' <함양과 체찰>을 통해 퇴계를 향한 흠모와 존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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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청원과 김무성 등 거물급 정치인에 맞서 새누리당 당대표로 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주목받은 김영우 의원은 40대의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해 집약한 <함양과 체찰>을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앞자리에 놓았다.

녹화에서 김 의원은 퇴계의 철학을 짧은 시간에 핵심적으로 요약해 내는 역량을 보여준 동시에 메모는 물론 꼼꼼하게 밑줄까지 쳐가며 읽는 '전직 기자'다운 독서습관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 김성곤 원장은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은 유진 오닐의 희곡 작품을 '내 인생의 책'으로 지목해 정치인들의 독서 프리즘이 생각보다 넓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눈 밝은 독자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앵무새 죽이기>는 인간이 가진 편견과 맹목적인 증오가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게 보여준 수작이며, 극작가 유진 오닐은 그 삶 자체가 한 편의 연극처럼 드라마틱한 사람이었다.

사람_ 가장 큰 스승의 지금 당신 곁에 있다

'당신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준비할 때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른바 '위인'들이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외로 <온북TV>의 초청에 응한 정치인과 문화행정가들은 자신들의 부모님이 세계관 형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특히, 최재천 의원은 자신의 양부인 작은아버지를 "스스로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음에도, 조카이자 양자인 나를 위해 멀고 먼 도시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가 백과사전에서부터 동화책까지 다종다양한 책들을 두 손 가득 가져오시던 사람"이라며 그를 그리워했다. 읽을거리에 목말라 있던 '시골아이' 최재천에게 그 책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최광식 전 문광부 장관 역시 "아버지에게서는 성실함과 우직함을, 어미니에게서는 지혜를 배웠다"는 말로 부모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경향은 '오봉옥 시인의 책치' 초대 손님으로 나온 나머지 인물들도 대동소이했다. 그랬다. 가장 큰 스승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비단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듯하다.

이제 누가 책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까

<온북TV> '오봉옥 시인의 책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작고 소박한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도 많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적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조그맣고 하찮은 것이 아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이 책 이외에 무엇에서 세상을 배우겠는가. 지위의 높고 낮음, 나이의 많고 적음, 인종과 성별의 차이 따위는 책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과거를 인식해 현재를 자각케 하고, 미래를 예측하도록 해주는 가장 큰 힘은 예전에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 속에 숨어있다.

그래서 <온북TV> 제작진은 말한다.

"스스로 대한민국과 국민을 움직여 간다고 믿는 정치인이라면, 먼저 우리에게 당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말해다오."

나 역시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정부부처의 수장들을 향해 똑같은 말을 던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계간 <문학의오늘>에 실린 것을 수정·보완한 것이며, 홍성식 기자는 '오봉옥 시인의 책치' 대본을 쓰고 있습니다.



태그:#책치, #온북TV, #노회찬, #전태일 평전, #김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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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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