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물을 내리고 올리고 옮기고 할 때 지게차는 필수였습니다.
▲ 지게차 운전 화물을 내리고 올리고 옮기고 할 때 지게차는 필수였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변 기사님, 미안하게 되었네요. 소장님하고 부장님하고 반장님이 회의를 했다는데요. 택배작업 특성상 변 기사님을 계속 일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합니다."

지난 2일 저는 일자리를 찾다가 택배 배달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근한 지 8일 만에, 업체 소장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일머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머리 없다는 말을 오십여 년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터라 마음은 담담했습니다. 그날 사건을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일머리 없다'는 이유로, 잘렸습니다

저는 지난 10일 화요일 새벽 5시경 일어나 출근을 했습니다. 8일째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대형 화물 탑차가 4대가 왔고, 다 내리니 택배 영업소 창고 안이 전국에서 온 물품으로 가득 찼습니다. 구역별로 나누고 송장 정리 후 선임(사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일 주일 지났으니까. 오늘부터 혼자 함 해보이소. 가정집 스물 다섯 장 물표를 드릴게요."

저는 송장에 나온 대로 택배물품을 트럭 가득 싣고 배달 구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때가 오전 11시경. 저는 배달 물품을 빨리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주소지를 찾는 게 여간 벅찬 일이 아니어서 골목골목까지 택배 물품을 배달하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경비실에 두랬다가 다시 전화를 해서 집 앞에다 갔다 두라는 분도 있었고, 사는 곳이 그곳이 아니니 다른 곳으로 배달해 달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돌다 보니 어느새 오후 5시가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냥 가지고 들어오이소."

선임이 송장 10여 장이 남았다 하니 일단 들어오라 했습니다. 저는 남은 품목을 트럭에 실은 채 다시 영업소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싣고 온 물품을 보자 영업소 소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아이구야. 큰일났데이. 일 주일 되었는데도 못치고 나가면 안 되는데 이를 어쩌겠노."

선임이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식품은 빨리 돌려야 합니더. 4개 남았네요. 주소 찾는 거 쉽게 알려 드릴테니 같이 나가 보입시더."

선임은 송장을 확인하더니 제가 가져간 4개의 식품 상자를 자신의 트럭에 옮겨 싣고는 차에 올랐습니다. 저도 따라 탔습니다. 그는 트럭을 몰고 다시 제 구역으로 갔습니다. 그는 송장을 보면서 주소지를 찾았습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지도를 검색하고 위치를 파악하더니 차를 몰고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저는 일처리를 잘하는 그가 우러러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4개의 택배 물품을 다 배달하고 저를 집으로 태워주고 있는 가운데 운전하는 선임의 전화로 어디선가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예, 예를 몇 차례 하더니 전화를 끊고 저에게 미안하다며 "내일부터 출근 안해도 된다"고 통보했습니다.

택배 일, 쉽지 않네요

저는 처음에 택배 일을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영업소로 배달된 물품들 주소지 찾아서 배달해 주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여겼습니다. 주소지 찾는 건 인터넷 지도찾기가 잘 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택배업을 해보니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쉽다고 하는 일마저 저에겐 쉬운 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먼저, 택배를 업으로 살아 가려면 우선 무거운 물품도 거뜬히 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 6시까지 출근하면 우선 해야 할 일이 덤프트럭보다 길고 큰 대형 트럭에 실려온 택배물품을 동별로 나누어 내리는 겁니다. 서너 시간 그렇게 작업을 하는데, 물품을 다 내리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절고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곧바로 송장이 나누어지고 구별, 동별 담당 배달원이 해당 물품을 트럭에 싣고 배달을 나갑니다. 실습 때 선임은 저에게 쌀 40kg 한 포대를 어느 빌라 5층 집까지 배달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트럭에서 어깨에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낑낑 거리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계단을 따라 5층까지 배달하고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택배업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외우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화물택배다 보니 크고 작은 기업체의 부품이나 자재가 많았습니다. 업체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업체 이름을 보고 여러 곳에 나누어 놓아야 했습니다. 어느 업체 물품은 어디 두라고 여러 차례 말했으나 저는 일 주일간 실습을 해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세 번째로 운전을 능숙하게 해야 합니다. 골목골목 다니다 보니 골목이 좁아 후진해서 큰 길로 나와야 할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많이 지나 다니는 곳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무슨 사고가 발생할지도 몰랐습니다. 다른 배달원 이야기 들어보니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당한 듯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손해 비용을 업자와 배달원 각각 50%씩 부담한다고 합니다. 몰던 트럭이 사고로 망가지면 고치는 비용도 그렇고 상대방이 다치거나 해서 병원비 등이 들 때도 각자 50%씩 물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안전운행을 해야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택배 배달원 현실은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날 온 물품은 그날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네 번째로 '일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택배 배달은 변수가 참 많았습니다. 화물과 택배를 같이 취급하다 보니 공사현장이나 공장에도 들어가야 하고, 아파트나 가정집, 상가도 가야 합니다. 대기업의 경우 공장이 크다 보니 입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주소가 다른 경우도 있었고, 연락처가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땐 둘 다 달라서 배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나는 어느 곳에 사는데 그게 왜 그곳으로 갔느냐?"며 항의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경우엔 송장에 적힌 대로 배달해 주니 "서울로 보낸 물건이 왜 도로 돌아 왔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변수가 참 많은 상황들에 대해 빨리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배달이 한정 없이 지연되어 밤 늦도록 배달해야 하는 일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다섯 번째로 동작이 빨라야 합니다. 저는 좀 느릿한 편입니다. 바쁘게 하는 것을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차분하게 천천히 일해야 일이 됩니다. 화물과 택배를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물량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상황에 놓입니다. 최대한 운전과 배달을 빨리 처리해야 퇴근시간에 맞춰 끝내게 됩니다. 저는 마지막 날 혼자 배달을 나갔는데 점심도 먹지 못하고 배달했으나 겨우 절반밖에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여섯 번째로 길을 빠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여전히 택배나 화물은 구 주소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모두 신 주소지로 다 바뀌어 있었습니다. 구 주소지와 신 주소지가 다르니 주소지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큰 건물은 그나마 찾기가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주택가 중에도 작은 골목 속에 있는 곳은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곱 번째로 트럭 운전은 물론이고 지게차도 운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트럭 운전만 조금 할 줄 알지, 지게차는 몰지 못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지게차 운전까지 잘했습니다. 화물로 온 물품들은 대부분 무겁고 큰 게 많았습니다. 택배로 온 물품들은 구역별로 나누어 놓지만, 화물로 온 물품들은 지게차로 창고로 옮겼습니다. 아침에 온 물품을 내릴 때나 오후에 보내는 물품을 처리할 때 지게차가 많이 쓰였습니다.

저는 택배업소에 취업한 지 8일 만에 깔끔하게 짤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일을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제 머리와 성격, 신체 특성상 택배 일은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택배업 하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 중 하나인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간혹 택배물이 오면 그냥 건성으로 받곤 했습니다. 이제부턴 어쩌다 택배물이 오면 택배 배달하는 분들께 고생많다며, 이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드려야겠습니다.


태그:#화물택배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