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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흙바닥을 제일 좋아한다. 풀벌레와 새소리에 흥겨워진 궁둥이를 보라.
▲ 시골에서 발랄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가을 가을은 흙바닥을 제일 좋아한다. 풀벌레와 새소리에 흥겨워진 궁둥이를 보라.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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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4일 일요일

긴 연휴를 맞아 가을이가 난생 처음 시골에 왔다. 조심해서 운전했는데도 멀미를 해서 휴게소에 들러야 했다. 하지만 도착하자 언제 구토 따위를 했냐는 듯 가을은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뒤도 안 돌아보고 들로 산으로 파고든다. 도심에선 어느 정도 걷다가 돌아보고 돌아오고 했는데, 이번엔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뱀을 만나면 어쩌나 개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목욕을 하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가을이가 마음껏 노는 모습에 나도 무척 행복하다. 멀미만 안 한다면 자주 오면 좋을 텐데.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여기는 서울 집. 가을이 몸을 긁어대는 모양새가 미심쩍다. 게다가 가을이의 이불에서 작은 벌레를 발견했다. 납작한 갈색에 다리는 양쪽에 세 개씩 있다. 어느 한 군데를 집중적으로 긁진 않지만 횟수가 매우 빈번해졌다. 가을이의 표정에도 곤란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병원에 데려가 상담을 했다. 의사선생님은 시골에 갈 경우 미리 외부기생충 약을 바르고 가면 예방이 된다고 알려주셨다. 전체적으로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여 등에 약을 바르고 돌아왔다. 곧 괜찮아질 거라니 기다려봐야지.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자세히 살펴보니 겨드랑이 부분에도 발적이 있었다.
▲ 털을 밀고 약을 바른 가을이의 목 자세히 살펴보니 겨드랑이 부분에도 발적이 있었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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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바르고 덜 긁는가 싶었는데 오늘 깜짝 놀랐다. 가을이의 목덜미 주변에 부스럼 딱지 같은 것이 만져지는 것이다. 털이 하도 촘촘해서 가위로 잘라낸 후에야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딱지는 노르스름하고 털에 엉기어 잘 떨어지지 않으며 피부는 거칠다. 다시 병원에 갔다. 가을이의 목 주변 털을 클리퍼로 완전히 민 후에야 세균성 피부염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원인은 지난번에 발견한 벌레일 수도 있고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세균에 감염된 것일 수도 있단다. 겨드랑이 주변에도 발적이 있다. 바르는 소독약과 먹는 약 모두를 지었다. 시골에서 놀긴 잘 놀고 돌아와 고생이구나.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미루고 미루던 스케일링을 받기로 했다. 가을이는 나이가 많아(11살 추정) 전신마취가 부담이 되어 피하고 있었지만, 오른쪽 어금니에 까만 구멍이 보인다. 요즘은 유독 딱딱한 건 안 씹으려하고 밥도 왼쪽으로만 먹는 모습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심장사상충 치료의 영향으로 혹시 심장에 이상은 없는지 면밀히 검사를 해야 했다. 심전도, 청진, 흉부 엑스레이, 피검사 등.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이 보이면 스케일링 보다 치료를 먼저 해야 한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두 시간에 목이 타들어갔다. 가을이가 얼마나 겁에 질려 있을지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다행히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이제 약 6시간 후에 수액을 충분히 맞은 가을이와 만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또 무서워 죽을 지경이다. 사상충 치료를 받을 때는 48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고작 6시간이 두려워 눈물이 앞선다. 보호자 서약서에 '1%의 사고사(死)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대목에서 손이 벌벌 떨려 싸인을 겨우 했다. 휴. 의사선생님을 믿어야지. 집에 가 청소나 하자.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가을이가 잘 회복하고 수액을 맞고 있다고. 한달음에 병원에 도착했다. 가을이가 나를 보고 종종 걸음으로 오다가 잠시 기우뚱 한다. 아직 어지러운 모양이다. 치료 과정을 사진을 통해 설명해주신다. 우려하던 오른쪽 어금니는 발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뽑아보니 뿌리가 거의 녹아있더란다. 그래도 다른 이빨들은 흔들리지 않아 그저 깨끗해졌다. 아유 하얗고 예뻐라. 입냄새도 안 난다. 단, 잇몸이 많이 부었고 출혈도 있어 먹는 약과 치료용 치약을 사와야 했다. 가을이는 그 많은 수액을 맞고도 꾹 꾹 참다가 병원 밖을 나서야 볼 일을 봤다. 이그, 딱한 것.

2014년 5월 31일 토요일

또 병원이다. 사고다. 너무 황당해서 울음은커녕 화만 난다. 밤에 산책가려 집 계단을 나서는 찰나, 어두운 곳에 있던 행인1(성인 남자)이 가을에게 갑자기 손을 뻗었다. 가을은 기절 직전으로 도망을 쳤다. 골목이 좁아 뱅그르르 돌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전다. 가을이가 워낙에 조금씩 절던 습관이 있어 근육에 경련이 났나 싶어 다리를 주물러줬다. 그런데도 발을 전혀 딛지 못하고 완전히 배 쪽으로 올려붙이고 있었다.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며 자꾸만 집 쪽으로 몸을 틀었다. 우선 집에 들어가 불을 환하게 켜고 다리부터 발까지 찬찬히 훑었다.

반대쪽과 비교해보면 휑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다.
▲ 가을의 없어진 발톱 반대쪽과 비교해보면 휑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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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발톱이 꺾여있다! 네 번째 안쪽 발톱이 심하게 뒤틀려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이 지경인데 가을인 어쩜 아프단 소리 한 번을 안 낼까! 차를 몰아 병원으로 달렸다.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내 뇌에도 이상이 생겼는지 병원 위치를 잠깐 혼동했다. 가을은 자리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이 가을을 보자마자 "히익!" 놀란다. 상황을 듣고선, "아이고 너도 참 사서 고생이다." 하신다. 맞다. 가을의 겁이 유난하긴 하다. 발톱을 뽑아야한다고 했다. 마취제를 뿌리더라도 고통스러울 거라고 한다. 지켜볼 자신이 없어 수술실 밖에 있는데도 가을의 비명이 들린다. 난 정말 보호자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발톱을 뽑아내면 혈관에서 출혈이 엄청나다. 혈관 끝을 전기로 지지기까지 했다. 가을은 몸부림치다 설사를 하고 말았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와 나는 모두 땀으로 젖었다. 내 잘못이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앉고 서는 것도 어색한지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 왼쪽 뒷다리에 붕대를 감은 가을 앉고 서는 것도 어색한지 자세가 엉거주춤하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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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를 감은 가을이를 침대에 뉘었다. 쓰러지듯 잠에 빠져든다. 몇 주 동안 소염제, 항생제, 진통제를 먹고 안정을 취해야한다. 약냄새가 너무 독해 밥을 안 먹을 게 뻔하다. '강아지 몸보신'을 검색해서 장보러 나가야겠다...

지금 가을이는 상처가 잘 아물어 보호대로 발을 감싸고 살살 산책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최악의 5월이었다. 가을은 어차피 노견이라 검진 대상이 늘어만 가는데 그 외의 이유로 병원에 가야만 했다. 피부병은 예방할 수 있었다. 발치의 경우, 칫솔질을 규칙적으로 해줬으면 좀 나았을 거다. 발톱 사건도 피할 수 있었다. 생각할 수록 부아가 치민다.

새까만 발톱이 가지런하다.
▲ 건강한 뒷발의 모습 새까만 발톱이 가지런하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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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와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자주 어려움이 따른다. 발길질을 하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 무작정 손부터 뻗는 사람... 개도 당신과 똑같다고 하면 어떨까. 처음 보는 당신에게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간다면_아무리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이라해도_낯설고 불편하며 무서울 수 있다.

모든 개가 사람만 보면 좋다고 달려드는 애교둥이는 아니다. 특히 유기된 경험이 있는 개들은 다른 생물의 존재를 위협으로 느낀다. 유기견 보호소에 한 번만 가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입양한 주인에게 마음을 여는데도 수개월이 걸린다. 친해지고 싶다면 천천히 시간과 거리를 두고 다가와주면 좋겠다. 제발 부탁이다.


태그:#가을이, #유기견, #사건사고, #동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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