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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진엽으로 캐스팅 된 배우 안덕용과 박영수
▲ <들풀2> 주인공 이진엽으로 캐스팅 된 배우 안덕용과 박영수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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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3일 오전 10시 28분]

120년 전, 조정의 어리석은 대처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 말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세금을 줄여달라고 몇 차례 탄원서를 낸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돌아 온 대답은 투옥과 매질이었다. 탄원서를 제출했던 농민이 장독으로 죽게 된다. 죽은 자는 전봉준의 아버지였다. 탄원 따위로 조정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는 걸 깨달은 백성들은 힘으로 고부군수를 내쫓기로 했다. 1894년 1월 10일 새벽,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는 것으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얼마 전, 남편을 따라 뮤지컬 <들풀2> 후원회에 참석했다. 처음엔 뮤지컬 <들풀2>가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했다. 가는 길에 <들풀2>가 동학농민혁명을 그린 공연이란 걸 알게 되었다. 후원회가 열리는 공연장에서 <들풀2>의 포스터를 보았다.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선 굵은 얼굴에서 조선 시대 동학 농민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주인공이구나. 꼭 전봉준 장군 같다. 그렇다면 <둘풀2>의 줄거리는 녹두 장군의 극적인 삶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내 예상은 깨졌다.

뮤지컬 <들풀2>의 주인공은 전봉준 장군이 아닌 관군이었다. 어떻게 관군을 주인공으로 세울 생각을 했을까? 주인공인 관군 '이진엽'은 농민군의 정보를 캐고자 농민군에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서 남장을 한 기생 '군자홍'을 만난다. 기생 '군자홍'은 '이진엽'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아마도 서로는 아는 척을 하지 못했을 거 같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두 남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둘이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 둘 말고도 여러 백성이 나온다. 하지만 모두 다 내 예상을 벗어난 인물이다. 혁명을 이끈 영웅이 당연히 <들풀2>의 주인공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공연이라면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보다는 백성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것이 더 어울릴 듯싶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공연되는 뮤지컬 <들풀2>의 주인공 자리를 정봉준 장군을 제치고 꽤 찬 관군 '이진엽', 그는 우리에게 어떤 삶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후원회에서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 <들풀2> 후원회 후원회에서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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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행사에서 배우들이 보여준 노래 공연은 좋았다. 배우들이 <밥 타령>을 부를 때는 흥겨웠다. "밥 들어간다. 밥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내 곡조가 느려지면서 내 눈앞이 흐려졌다.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의 신식무기 앞에서 곡괭이와 죽창을 들고 맞서다가 죽어갔다. 결과를 알기에 노래가 더 슬펐다. 비장함과 처연함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다. 아마 공연을 직접 본다면 더 슬플 것이다.

지난해에 보았던 영화 <레미제라블>처럼 눈물을 펑펑 흘릴 거 같았다. 영화 <레미제라블> 속 혁명은 분명 실패였지만 영화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지금 우리에게도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한편 부러웠다. 영화를 같이 본 남편과 나는 우리도 동학농민혁명을 가지고 이렇게 감동을 주는 뮤지컬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내 바람대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소재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만들어진 지 올해로 25년이 되었다. 이 극단은 <블루 사이공>으로 백상예술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알고 보니 <들풀>은 20년 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연강홀에서 처음으로 공연되기도 했단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6월 5일(목)부터 15(일)까지 다시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은 연극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특성상 많은 출연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 작품 대부분은 수익성 때문에 외국 작품을 수입해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뮤지컬이 적자를 면하기 어렵기에 우리네 이야기를 소재로 뮤지컬을 공연하는 경우는 적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뮤지컬 <들풀2>가 나왔다. 고마운 일이다.

연출을 맡은 권호성씨는 창작뮤지컬을 많이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권호성씨는 80년대 대학생들이 많이 불렀던 '동학 농민가'의 작사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이 노래도 <들풀2> 뮤지컬에서 들을 수 있다.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에 설움이 받쳐
보국안민 기치가 높이 솟았다. 한울북 울리며.........."

후원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말을 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실패라고 봐서는 안 돼. 동학 농민군의 정신이 삼일운동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해. 삼일운동은 천도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고 삼일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질 수 있었고. 게다가 김구 선생도 동학접주였잖아. 임시정부가 있었으니까 독립도 이룰 수 있었던 거고. 그 혁명 정신이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 이어져 오고 있다고 봐야 할 거야. "
 
남편은 한 문장 한 문장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다. 동학 농민군의 사상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그 시대의 여러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듯 마찬가지로 동학혁명의 성과나 영향 또한 동학 교인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시대에 폭넓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그 혁명을 경험한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봉건 신분 질서에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씨앗이 우리에게 없었다면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우리의 역사이다. 선조들의 투쟁은, 근현대사 고난의 시기에 우리 백성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음을 알려주는 놀랍고도 고마운 증거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농민군의 죽음을 잊지 말고 기려야 한다. 수십만 명의 농민군 가슴에 총을 겨눈 자들이 누구였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군 파병의 근거가 된 '톈진조약'과 청군 그리고 청군을 불러들인 조정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감세를 요청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탄압을 한 조정, 그리고 백성들의 힘이 강해지자 정권의 안위만을 걱정하여 외국군에게 파병을 요청하는 어리석은 조정의 행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잊는 순간 그런 일들이 또 다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면 좋은 공연일 듯싶다. 장소는 과천예술회관이다. 표값 역시 가족과 함께 보기 부담감이 적다. 전석 3만원으로 뮤지컬 공연치고 고마운 가격이다.


태그:#들풀,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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