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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소득세 신고하러 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보안프로그램 깔다 날샜다.
▲ 누구를 위한 보안프로그램? 종합소득세 신고하러 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보안프로그램 깔다 날샜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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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맹'이자 '디지털맹'이다. 컴퓨터로 하는 건 인터넷과 문서작업 뿐이다. 그래서 늘 컴퓨터를 새로 장만할 때마다 겁부터 난다. 이번엔 또 '무엇을' '어떻게' 깔아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 내게 종합소득세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사업자인 나는 다행히도 소득이 많지 않아 '간편장부대상자'에 해당한다. 이게 무얼 뜻하는 거냐 하면, 소득세 신고에 관한 기본적인 세무지식을 갖지 않아도 됨은 물론이고, 세무사를 고용해 복잡한 비용처리(이를 위해선 온갖 영수증을 다 모아야 함)를 할 필요도 없다. 또 관할 세무서의 담당공무원과 일절 접촉할 일이 없어서 좋다. 그저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 접속해 화면에 표시된 대로 '엔터' 키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온갖 보안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액티브엑스'가 이거라면 이거인가? 아무튼 로그인하기 전에 반복적으로 뜨는 팝업창과 길고 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도 윈도우컴퓨터를 사용할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맥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더 길고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다음은 맥컴퓨터를 사용 중인 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정부기관 사이트에서 액티브엑스를 깔 때마다 민원을 제기한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다. 일단 패러럴즈로 윈도우 부팅을 하고, 이런저런 액티브엑스를 깔고, 공인인증서를 옮기느라 또 액티브엑스를 깔고 겨우 종합소득세 신고를 끝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윈도우를 종료하고 맥에서 민원을 신청하려고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 접속을 했더니! OS가 맥이라고 아예 접속조차 안 되네. 대단하다, 대단해. 세금신고나 납부가 아니라 간단한 정보를 열람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니...민원제기를 하려면 다시 윈도우 부팅을 해야 하나?"

나 같은 '컴맹'은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다. 맥 사용자 여러분의 악전고투에 경의를 표한다. 

그나마 종합소득세 신고 같은 일은 일 년에 한두 번이니 괜찮다 치자.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인터넷뱅킹 등은 어떠한가? 결제버튼을 누를 때마다 뜨는, 무언가를 설치하라는 팝업창. 내가 알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깔려야만 물건을 사고, 돈을 이체할 수 있다.

온 나라의 시스템이 윈도우라는 운영체제에 맞춰 있다 보니 맥 컴퓨터의 수요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을 사용하려 한다면 '어마무시'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무언의 압박이다. 

일본 친구가 알려준 개인사업자를 위한 세금신고프로그램. 사기업의 유료프로그램이지만 맥이나 윈도우 모든 컴퓨터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컴퓨터에든 대응하는 일본의 세금신고 프로그램 일본 친구가 알려준 개인사업자를 위한 세금신고프로그램. 사기업의 유료프로그램이지만 맥이나 윈도우 모든 컴퓨터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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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로 맥 사용자인 일본인 ㅇ씨. 국내 모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그는 "학교 관련 업무는 윈도우 컴퓨터가 아니면 안되는 게 많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이참에 이웃나라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 친구들 중 반 이상이 맥 컴퓨터를 사용 중이다. 일본에는 일단 '액티브엑스'라는 놈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ㄴ씨는 맥 컴퓨터로 대본작업부터 모든 걸 다 한다. 그녀 주위의 40% 이상이 맥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한다. "바이러스 감염의 우려가 적고, 기동 속도가 빠르다"는 게 맥 컴퓨터 선호 이유다. 사용 중 '맥'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다. 세금신고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전제로 모든 시스템이 마련된 우리나라. '컴맹'인 나나 맥 사용자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처럼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나라 인터넷환경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진 '배리어프리'한 이용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특정 사용 환경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컴퓨터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단 액티브엑스를 걷어내 주길.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치인이 있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공인인증서만 옮겨주면 복잡한 세금신고도 간단히 끝난다. 스마트폰에서 되는 게 왜 인터넷 상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 액티브엑스 필요없는 스마트폰 전자신고 시스템 스마트폰으로 공인인증서만 옮겨주면 복잡한 세금신고도 간단히 끝난다. 스마트폰에서 되는 게 왜 인터넷 상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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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결국 종소세 신고는 아이폰으로 했다. 윈도우8과의 궁합이 맞지 않는지 뭘 한참 깔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컴퓨터에서 무슨 설정을 바꾸라기에 포기. 

P.S2 다 쓰고 나니 글로벌시대에 역행하는 문서프로그램 '한글'의 폐해도 쓰고 싶어지네.


태그:#종합소득세, #액티브엑스, #맥, #윈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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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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