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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국가 안전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고 있는 비통한 시점에 28일 새벽 또 하나의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다. 전남 장성 효실천나눔사랑 요양병원에서 화재로 21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사망자 대부분이 자력으로 대피가 힘든 70~90대 고령의 와상 환자였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든 요양병원의 안전관리시스템 부재가 화를 키운 건 분명해 보인다.

병원에서 쓰는 침구류 등은 불이 붙기 쉽고 매우 빠르게 착화되는 발화 물질들이 많다. 또 화재시 유독가스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연기나 냄새 등 화재 징후가 나타나면 재빨리 대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와상환자 등 혼자 탈출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아 피해가 컸다는 분석이다.

정부 인증 요양병원이라 믿었는데...

  28일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별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 현장을 찾아 감식을 하고 있다.
 28일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별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 현장을 찾아 감식을 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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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변화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중풍 등을 앓아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들에 대한 돌봄을 오롯이 가족들에게만 책임 지우는 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대해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부는 지난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제정하게 된다.

2008년 불과 690개였던 요양병원이 지난 4월 말 현재 1284개로 크게 늘었다. 요양병원 병상 수를 모두 합치면 20만 개가 넘는다. 국내 총 의료기관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요양병원이 이렇게 난립할 수 있는 것은 당국의 병상관리 정책이 실패한데다, 대부분의 요양병원이 민간으로 운영되어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난립하고 있는 요양기관의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기관인증제'를 통해 질적 관리에 나섰다. 이로인해 지난 2013년 1월부터 전국의 모든 요양병원은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의료법 제 58조의 4).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요양기관의 기본 가치, 환자 진료, 행정 및 지원 성과 관리 체계 등 200여 개 조사 기준을 충족한 기관에 대해선 '환자들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증가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현재 1200개의 요양병원 중 인증을 받은 병원은 전국적으로 230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번에 화재가 난 장성 효실천나눔사랑 요양병원은 이미 지난해 인증 확인을 받은 곳이다. '민간이 의료기관의 관리감독 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요양병원 인증조사기준'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요양병원 의사 1인당 환자 수, 최대 65명?

종합병원과 상급병원 등 급성기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기관들은 환자가 2~3개월 이상 입원할 경우, 보험급여가 삭감되기 때문에 응급한 상황이 지나면 대부분 빨리 퇴원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요양병원은 환자를 최대한 오래 입원시키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요양병원 간에 서로 환자를 주고 받거나 유인·알선 등의 불법 행위를 하기도 한다.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이용하기 바쁘다 보니, 환자들이 받는 의료의 질은 매우 낮고 안전 관련 체계는 매우 미흡하다.

2012년 심평원 조사 결과, 요양병원 의사 1인당 평균 담당 환자 수는 31명~65명, 간호 인력은 1인당 11.4~47.1명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행 의료법에는 야간 당직은 환자 200명당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만 근무하면 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번 화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다수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서 이같은 근무 인력현황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빠르게 대처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화재가 난 2층 별관에는 환자 34명이 입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이들을 보호할 인력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2명이 전부였다. 자력으로 피난이 곤란한 고령의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평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까닭이다. 야간에도 충분한 의료 인력과 재난 상황에 대비한 보호 인력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이정도의 대형참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과 요양병원 화재, 얼마나 더 겪어야 하나

요양병원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미 시민사회단체들은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 응급 상황이나 화재 등에 대응할 만한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지 않은 요양병원들의 모습에 많은 우려를 나타냈었다.

이번 화재 사건은 어찌보면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돈보다 뒷전인 듯한 정부와 보건당국이 만들어 낸 참사인 것이다. 이후 부실한 요양병원들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 똑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요양병원 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법적 기준을 강화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세월호#안전#요양병원#장성요양병원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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