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국가대표팀 박기원 감독(가운데)과 선수들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박기원 감독(가운데)과 선수들 ⓒ 대한배구협회


한국 남자배구 '박기원호'가 다음 주부터 국제무대 사냥에 나선다. 올해 남자배구는 월드리그(5.31~7.20),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8.30~9.21), 인천 아시안게임(9.19~10.4) 등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다.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은 31일 프로축구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네델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월드리그 국제배구대회 첫 경기를 갖는다.

이번 월드리그에서 대한민국(세계랭킹 21위)은 체코(22위), 네델란드(31위), 포르투갈(38위)과 함께 E조에 편성돼 홈 앤드 어웨이로 예선라운드를 치른다. 한국이 세계랭킹에선 앞서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다. 주전 선수들 상당수가 현재 러시아·이탈리아·폴란드 등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뛰고 있다.

토스만 빠르다고 '스피드 배구'가 아니다

출항을 1주일 앞두고 있는 박기원 국가대표 감독과 지난 19일 전화로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박 감독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한국 남자배구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도 확고해 보였다.

박기원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는 '빠르고 정교한' 배구. 즉 스피드 배구다. 박 감독은 "내가 생각하는 지향점은 빠르고 정교한 배구다. 한국 배구가 살아나갈 유일한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가 높이와 파워 등 모든 면에서 유럽·남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좋아 스피드 배구지 결고 쉬운 일이 아니다. 모험도 많이 따르는 변화다. 배구를 보는 철학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통 '스피드 배구' 하면, 빠른 배구를 떠올린다. 그러나 굉장히 정교해야 되고, 체력도 받쳐줘야 하며, 집중력도 높아야 한다. 또한 6명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시스템 배구다. 세터의 역량도 중요하다. 토스만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리시브가 나쁜 볼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쏴주느냐가 중요하다. 세터와 손발을 맞추는 주전 선수들도 빠르고 센스있게 공격으로 성공시켜야 한다.

한선수 합류 '천군만마'

남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진천 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 반가운 소식도 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한선수 세터(전 대한항공)가 지난 18일 훈련에 합류했다.

한선수는 지난해까지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세터였다. 2013 월드리그 대륙간라운드에서 세터 부문 세계 1위(9.45개)에 오를 정도로 기량도 최절정기였다. 그런데 작년 11윌 초 V리그 개막을 앞두고 느닷없이 군 입대가 결정되면서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인 대한항공은 물론 배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박 감독은 "한선수가 합류해서 천만다행"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국방부·육군본부 등 관계기관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당장 경기에 나서기는 어렵다.

박 감독은 "기량이나 토스 감각을 되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문제는 체력이다"라며 "평소 자기 혼자 기본적인 웨이트는 했는데, 대표팀 훈련과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이 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드리그 초반에 이민규 세터가 잘 버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선수는 6월 21~22일 수원에서 펼쳐지는 한국-체코전부터 경기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환호하는 '한선수 세터'(가운데)

환호하는 '한선수 세터'(가운데) ⓒ 대한배구협회


한선수는 현역 군인 신분이다. 지난해 11월 현역으로 입대한 뒤 육군본부 소속 부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고 있다.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 선수들은 언제든지 국가대표팀에 차출할 수 있지만, 일반 군인으로 복무 중인 선수를 국가대표팀에 합류시킨 경우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박 감독과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3월 초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를 통해서 국방부 측에 한선수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4월 14일에는 육군본부 측에 한선수의 국가대표팀 강화훈련 응소와 국제대회 파견 승인 요청서를 보내기도 했다. 박 감독과 대한배구협회는 올해 월드리그·세계선수권대회·인천 아시안게임 등 중요한 국제대회가 많고, 한국 남자배구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선수의 대표팀 합류가 절실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물론 규정(부대관리훈령) 상으로는 현역 군인도 국가대표팀에 차출이 가능하다. 다만 전례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육군본부와 한선수 소속 사단과 부대는 2개월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한선수를 국가대표팀에 보내주기로 결단을 내리고, 18일 저녁 진천 선수촌에 합류시켰다. 배구 종목의 특성상 세터는 야전사령관이나 다름없는 핵심 포지션이고, 한선수가 국가대표 주전 세터라는 점, 올해 중요한 국제대회가 많아 국위선양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라이트 주선 선수 확정, 가장 큰 고민"

박기원 감독과 대한배구협회는 23일 월드리그 네델란드·체코 원정 경기에 나설 12명의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레프트에 전광인(한국전력·24세·194cm), 곽승석(대한항공·27세·190cm), 송명근(러시앤캐시·22세·195cm), 라이트에 김정환(우리카드·27세·196cm), 박철우(삼성화재·30세·199cm), 센터에 하현용(LIG·33세·197cm), 최민호(현대캐피탈·27세·195cm), 박상하(국군체육부대·29세·197cm), 세터에 한선수(국방부·30세·189cm), 이민규(러시앤캐시·23세·194cm), 리베로에 이강주(삼성화재·32세·185cm), 부용찬(LIG·26세·175cm)이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컨디션이나 기량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이트 포지션에 대해선 고민이 많았다. 김정환, 서재덕, 김요한은 소속 팀에서 레프트로 뛰었고, 박철우는 라이트로 뛰었지만 외국인 선수 레오에게 집중되면서 공격 빈도가 적었다. 박 감독은 "라이트 선수들의 속도가 조금 떨어져 있다"며 "월드리그 등 대표팀 경기를 통해서 다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 한 선수들도 수시로 불러서 점검할 예정이다. 박 감독은 "문성민, 서재덕 등 다른 선수들도 대표팀 후보군 명단에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들어와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월드리그는 일정이 너무 빡빡하기 때문에 12명 가지고는 운영을 할 수가 없다. 중간에 보충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성민 선수는 현재 재활 중이다. 7월 달 정도에 대표팀 합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체코 주공격수, LIG 감독 시절 영입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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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


박 감독은 월드리그에서 상대할 팀들에 대해서도 최근 동영상 등을 구해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체코는 유럽의 떠오르는 신흥 강호다. 지난 1월 세계선수권대회 유럽지역 예선에서 세계랭킹 6위 불가리아를 3-2로 꺾기도 했다. 주전 라이트 공격수인 Jan STOKR(206cm·러시아 Dinamo Krasnodar)와 중앙 센터진의 블로킹·속공이 주 경계 대상이다.

박 감독은 "Jan STOKR는 이탈리아에서도 오래 뛴 선수다. 나이는 들었지만 체구도 좋고 잘하는 선수다. 내가 LIG 감독으로 있을 때 외국인 선수로 영입을 검토했었던 선수"라고 말했다.

네델란드와 포르투갈은 작년 월드리그에서도 맞붙었던 팀이다. 네델란드는 유럽 최장신 팀으로 센터 KOOISTRA(209·폴란드 Czarni Radom)의 블로킹·속공이 특징이다. KLAPWIJK(200·이탈리아 CMC Ravenna), RAUWERDINK(200·이탈리아 Cuneo), KOOY(202·폴란드 Kedzierzyn-Kozle)의 공격 3각 편대도 위력적이다. 작년 월드리그에서 한국 팀에게 2전 전승을 거둘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포르투갈은 최근 LUCAS GASPAR(200·포르투갈 Benfica)와 FERREIRA(203·이탈리아 Trentino)의 좌우 쌍포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성민 선수와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시절 함께 뛰었던 노장 센터 JOSE(194·포르투갈 Azores)도 아직 건재하다.  

'인천 AG 금메달' V리그 흥행 직결, 대표팀 적극 지원 필요

박 감독은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다. 유럽 선수들은 공격 결정력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가급적 실수를 줄이고 빠르고 정교한 배구로 뚫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와 인천 아시안게임은 2014~2015 V리그 개막(10.18)을 코앞에 두고 열린다. 특히 아시안게임의 성적은 V리그 흥행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금메달을 딴다면 한국배구연맹(KOVO)이 가장 큰 수혜자이다. 그만큼 국가대표팀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배구 관계자와 언론 그리고 팬들의 관심과 성원이 뒷받침될 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면서 좋은 성적도 나온다.

한편 이번 월드리그는 스포츠 전문채널인 SBS Sports가 국내 주관 방송사다. SBS Sports는 31일 밤 10시(한국시간) 네델란드-한국 1차전부터 위성 생중계한다. 한국 팀이 출전하는 전 경기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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