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심우장(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심우장(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일제강점기, 이 땅을 떠날 때까지 11년동안 자취를 남긴 마지막 거처였다. 심우장은 집도 절도 없던 한용운에게 작은 암자와도 같은 작은 도량이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111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서울 명수학교 앞에서 내리니 심우장으로 오르는 가파른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마치 산사(山寺)를 오르는 백팔계단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산유곡 같은 만해 사상의 한줄기 오솔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을 엿볼 수 있는 친절하고도 엄격한, 살아있는 원전이다. 조선총독부가 싫어 심우장을 북쪽으로 향하게 지은 만해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면서 등지고 살았던 것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심우장은 소를 찾는다는 불교적 의미를 지닌 집이지만 일제에 끝까지 저항했던 만해사상의 금자탑인 셈이다. 만해의 북향은 정향이며, '만해 풍수'일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답사·1권>)에서

몇 년 전 우연히 심우장(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에 간 적이 있다. 모 작가와 함께 갔었다. 삼우장에 다녀온 후 몇몇 사람에게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며 적극적으로 가길 권했다. 누구나 가보고 기억해야할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밤, 그 심우장에 다시 가게 되었다.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답사 1·2권>(창비 펴냄)란 책 덕분이다.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 답사> 책표지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 답사> 책표지
ⓒ 창비

관련사진보기

누구든 심우장에 가보길 원하는 이유는 내가 심우장에 가기 전에 했던 만해 한용운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달라졌다는 표현보다 예전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 같다.

한용운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그간 이런저런 책을 통해 알게 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뿐.

우리 독립운동사와 문학사, 불교사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마음 깊이까진 와 닿지 않았다. 뭐랄까. 꼭 알아야만 하는 역사인물에 불과했다고 할까. 박제되어 있는 그런 인물로 말이다.

그러나 심우장에 다녀온 후 만해 한용운에 대한 생각들이 심우장의 모습과 엉켜 한동안 시시때때로 떠오르곤 했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인물이지만 삼우장의 모습과 그가 마치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연상되곤 했다.

나도 모르게 한용운의 가슴에 맺히고 맺혀 응어리졌을 망국의 한과 분노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하면서 말이다. 뭐랄까. 머리로만 생각하던 인물이 가슴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이런 점에서 문학 답사(기자 주: 문학 기행. 이하 책에서 쓰는 용어인 문학 답사로)는 한 작가의 삶과 그 작가가 남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마흔 명이나 되는 토박이 현장 교사들이, 우리나라 마흔 개 지역의 대표작을 찾아 자기 지역의 문학 답사를 기획하고, 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거친 다음 누구라도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가르칠 때 답답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교사만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작품 이해의 열사가 되는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아이들의 작은 반응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답사를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그 반응들을 정리해 보았더니 학생들에게 기발하고 새로운 심상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문학작품을 살아있는 그 어떤 것으로 느끼게 하고 하루를 그것과 더불어 호흡하게 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소풍처럼 떠나서 보물찾기 놀이하듯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답사>) '머리말'에서)

이 책에는 전국 40개 지역과 인근 지역들을 아우르는 현장 답사기가 있다. 현장 교사들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랐거나 살았던 여러 문인의 삶과 그 지역에서 탄생한 여러 작품들을 아울러 들려준다. 이러니 한 꼭지의 글에서 여러 지역, 여러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덕분에 답사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곳과 어지간한 작가들은 거의 다루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전국의 현직 국어 선생님들과 학생들 568명이 떠난 문학 답사, 그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다.

내 경우, 선생님과 함께 했던 추억들은 각별하다. 둘째 아이가 올해 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를 맞이했던 지난 몇 년, 아이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돌아보면 시대가 바뀌었어도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존재는 여전히 각별해 보였다. 그래서 책 속 이들의 발걸음이 값져 보인다.

아마도 문학 답사 길에 동참했던 학생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갔던 길이나 그 길을 통해 만났던 것들은 좀 더 각별하게 스며들었으리라. 몇 년 전 내가 심우장을 답사한 후 느꼈던 것처럼, 그 길에서 만난 작가의 삶과 작품이 훨씬 가깝고 깊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을 이끌고 답사 길에 오른 선생님들은 그 지역 토박이들이다. 그 누구보다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나 사연들까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미 가봤던 곳들과 나고 자란 내 고향 답사에 대한 글을 읽으며 느낀 것들을 참고해 보건데, 토박이의 장점을 그만큼 많이 녹여낸 것 같다. 이 점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우장의 방
 심우장의 방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계절 변화를 잘 활용한 함리적인 공간으로도 알려진 심우장의 부엌 일부. 밥상이 놓여지는 부엌에 딸린 작은 마루에서 본 모습이다.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계절 변화를 잘 활용한 함리적인 공간으로도 알려진 심우장의 부엌 일부. 밥상이 놓여지는 부엌에 딸린 작은 마루에서 본 모습이다.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심우장에 걸린 한용운의 친필 '마저절위'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고사성어. 쉬지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다. 외에도 심우장에 친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심우장에 걸린 한용운의 친필 '마저절위'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고사성어. 쉬지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다. 외에도 심우장에 친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몇 년 전 심우장에 다녀온 후 느낌이 좋아서 다른 문학 답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답사 이후에 다시 가지 않았다. 이유는 대부분의 문학 기행 프로그램들이 뻔했기 때문이다. 거치는 곳들을 그대로 가는데다가, 많이 알려진 내용들을 그대로 다시 들려주는 그야말로 틀에 박힌, 그래서 알맹이가 없는 그런 문학 답사였다.

물론 모든 문학 답사들이 내가 실망한 그런 답사는 아닐 것이다. 나름 실속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답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하간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느낀 것은, 이제까지 관심같고 있던 그간의 문학 답사 책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국어 선생님들이라 문학적 지식과 감수성이 풍부한데다, 토박이 선생님들이라 그간 다른 책에서 접하지 못했던 곳들도 많이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모든 글 끝에 차편은 어떤 것이 좋은지, 반드시 가야할 장소는 어디이며, 꼭 보고 와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디를 먼저 가고,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면 좋은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에 무엇이 좋은지 등 답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토박이 OOO 선생님의 귀띔'과 '추천 답사 코스 약도'까지 덧붙임으로 실용성을 더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욕심이 앞서곤 했다. 글을 통해 만나는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녹여졌을 그 지역의 그 곳'마다 가고 싶은 그런 욕심 말이다.

틀에 박힌 문학 답사나 누구나 가는 여행이 싫은, 나만의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음에도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 답사 1·2권>(국어 교사 20명) | 창비 | 2014-03-21| 12,000원



[세트]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문학 답사 세트 - 전2권

국어 교사 20명 지음, 창비(2014)


태그:#심우장, #한용운, #마저절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문학답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