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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terroir'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풍토(風土)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지요.

영어로 '테루아'로 지칭하는 '테루아르'는 프랑스어 고유한 단어로 포도를 자라게 하는 그 지역의 토지와 기후의 상태를 포함한 총체적인 환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포도 재배는 알맞은 성질의 토양과 지형, 관개와 배수 등이 필수이고 일조량과 강수량, 바람의 정도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재배법도 포함됩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이 테루아르에 따라 만들어지는 와인의 맛이 다르므로 프랑스산 와인의 상표명은 포도품종이 아니라 포도가 자란 지역을 상표명으로 합니다. 보르도(Bordeaux) 지역에서는 포도원을 의미하는 '샤또(Château)'를,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는 "Domaine (Domain : 소유지, 영토)를 미국에서는 'Estate'라는 재배지를 사용합니다. 프랑스에서 이 테루아르를 중심으로 포도밭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풍토가 포도농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웅변일 것입니다.

포도농사에만 이 떼루아르가 중한 것은 아닙니다.

농사꾼인 저의 아버지도 이 떼루아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한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저보다 더 무거운 쌀자루를 함께 실려 저를 대처로 내보낸 것을 보면 말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람 농사법을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철이 들고 부터는 아버지의 결단에 동의하게 되었지요.

제 머리속에 자식이 어느 정도 자라고부터는 슬하에 두면 안된다는 생각이 그렇게 자리잡았나봅니다.

저의 아들딸들도 그 기준을 적용시켰습니다. 도시에서 난 녀석들이니 시골로 보냈었고, 한국에서 난 녀석들이니 한국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 지역의 사람과 삶이라는 떼루아르에 노출되기를 원했습니다.

#2

두 딸은 큰 방황 없이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모두 그 방향을 향해 의지를 꺾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막내 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성격이 유순하고 심성이 연한 반면 동물을 좋아하고 운동에 빠져 지냈습니다.

애초에 뜻을 두었던 수의사라는 목표도 동물실험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정 때문에 의지를 꺾고부터는 방황의 계속이었습니다. 

미국에서의 교환학생과 귀국 후 전국을 자전거로 순례하며 각 지역의 어른들을 직접 찾아뵈면서 말씀을 청해듣고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가야할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도, 가면 어떤 학문을 해야할지에 대한 것도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황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째 계속되었습니다. 그 배회의 시간에 미술을 접했고 그곳에서 숨겨진 재능과 욕구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집을 나가 홍대앞 쪽방에 방을 얻어 몇 개월을 지냈습니다. 포토폴리오를 만들어 영국의 대학에 보냈고 네 개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수업이 가능한 언어 능력을 확보하기위해 와신상담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입학허가를 받은 영국으로 가서 준비하면 좋을 테지만 그것은 저의 경제적 능력 밖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영대는 가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열외된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지난 8개월간 나도 영대와의 연락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고비를 넘어야하지요.
 영대는 가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열외된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지난 8개월간 나도 영대와의 연락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고비를 넘어야하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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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기지교(斷機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孟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지극한 교육열에 힘입어 유학을 떠났습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한 지 오래지 않아 엄마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쪼들리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아들을 공부시켜 인재를 만들고자했던 어머니의 소망이 무너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베를 짜고 있던 어머니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공부는 마쳤느냐?"
"아닙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즉시 칼을 들어 짜고 있던 베를 끊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 짜던 베는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맹자가 놀라 물었습니다.

"어머니, 무슨 영문인지요?"
"네가 공부를 그만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고생해서 짜던 베를 이렇게 자르는 것과 같다."

맹자는 그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의 이명권교수님과 함께 중국 중원의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흔적을 찾아 노(魯)나라의 수도였던 취푸(曲阜)를 방문하고 조우청(鄒城:맹자의 고향)으로 가서 멍미아오(孟廟:맹자 사당)와 멍푸(孟府:맹자 집안의 저택)를 방문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니 청나라 강희제가 세운 거대한 비각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짜고 있던 베를 잘랐다던 곳에도 '斷機之敎'의 비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의 이명권교수님과 함께 중국 중원의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흔적을 찾아 노(魯)나라의 수도였던 취푸(曲阜)를 방문하고 조우청(鄒城:맹자의 고향)으로 가서 멍미아오(孟廟:맹자 사당)와 멍푸(孟府:맹자 집안의 저택)를 방문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니 청나라 강희제가 세운 거대한 비각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짜고 있던 베를 잘랐다던 곳에도 '斷機之敎'의 비가 있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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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가 공부를 위해 한국을 떠나자마자 둘째딸 주리가 가족의 카톡방에서 영대를 제외시켰습니다.

둘째딸 주리는 영대가 한국을 떠나자 바로 영대가 포함되었던 우리가족의 카톡 채팅그룹을 버리고 영대가 제외된 새로운 방을 개설했습니다.
 둘째딸 주리는 영대가 한국을 떠나자 바로 영대가 포함되었던 우리가족의 카톡 채팅그룹을 버리고 영대가 제외된 새로운 방을 개설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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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가족에서 동생을 열외시키는 주리의 단호함에서 단기지교같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가족에서 열외 되었던 영대가 다시 우리의 가족방에 초대된 것은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주리가 다시 영대를 가족의 채팅방으로 초대한 것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받둔 올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이었습니다. 고립과 단절도 성장의 큰 자양분임을 확인합니다.
 주리가 다시 영대를 가족의 채팅방으로 초대한 것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받둔 올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이었습니다. 고립과 단절도 성장의 큰 자양분임을 확인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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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가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어무니 아부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행복하게 공부하는 제 또래 친구들도 없을거에요. 항상 감사히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가는 날도 얼마안남았는데 언릉 보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어무니아부지♥♥♥"

지난해 9월 14일에 떠난 영대가 8개월 만인 내일(5월 22일) 돌아옵니다. 

저도 단기지교의 마음으로 그리움을 참았습니다. 곧 다시 영국으로 떠날 아들이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한 식탁 식사가 그간의 외로움에 대한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리는 그 식탁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40℃가 넘는 DR콩고에서 그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트팅됩니다.



태그:#맹자, #단기지교, #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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