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여러 코스로 구성되어 어느 곳에서도 오를 수 있는데 동쪽이든 서쪽이든 다 출발하기만 하면 유적들은 만나 볼 수 있다.
탑곡에서 출발하여 해목령을 지나 남산신성을 거쳐 오는 도중, 방치된 숲들을 볼 수 있었는데, 산불 탓인 듯했다. 하지만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주변이 잘 정비되어 가고 있어 한편으로는 다행스런 일이다. 한참을 지나 전망대(금오정)을 올라 경치를 둘러보고 전망대 밑으로 내려가 큰늠비봉 절터를 찾았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석탑 부재들을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 정리해 두었다. 탑 지붕돌과 몸돌 그리고 석재가 그대로 남아 주변이 아주 큰 절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계속 내려가면 부흥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늠비봉 오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경주남산에서 만나는 석탑 중 규모가 큰편이고 전망도 아주 좋은 곳이다.
이 탑은 복원 후에 일부 남은 부재들을 주변에 두었는데 탑 지붕돌에 특이하게 우동(귀마루조식)이 나타난다. 마치 높은 산 자체를 수미단으로 삼은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오솔길로 접어들면 길 오른쪽에 넘어진 소탑이 방치돼 있었다. 흔히 사리석함으로 불렸던 석조 부도는 네모난 지붕을 덮은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근래 다시 석부재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작은 안내문이라도 있으면 답사객이나 탐방객들이 내용을 알 수 있어 좋을 듯하다.
늠비봉 석탑을 뒤로 하고 부흥사 밑으로 해서 갈림길을 접어들어 부흥골 마애여래좌상을 찾았다. 이 불상은 흔히 황금 불상으로도 불리나 이는 표현이 그렇지 잘못된 예이다. 찾아가는 이정표는 일부 있으나 현장에 문화재 안내 설명이 전혀 없는 비지정 문화재이다.
마애여래좌상은 선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바위면 전체가 누른빛으로 빛난다. 넓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얼굴이나 몸매가 안정감을 주며 선 표현은 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포석정으로 향하는 포석계곡을 걷는다. 한참을 걸으면 내려오는 길에 윤을곡 마애삼존불을 만나 볼 수 있다. 묘하게 생긴 'ㄱ'자형 바위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넓은 면에는 2구의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고, 좁은 면에는 한 구의 여래좌상 약사불이 새겨져 있다.
ㄱ자형 꺾어진 불상 왼쪽에 '太和乙卯九年(태화을묘9년)'이라는 명문이 있다. 태화 9년은 신라 42대 흥덕왕 10년(835)에 해당되는데, 태화 9년을 이 불상을 조성한 절대연도로 보고 있다. 떨어져 있는 불상은 약사여래좌상인데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짚어 무릎 위에 얹어놓고 있다.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부근에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남산은 역시 어디든 찾기만 하면 좋은 곳이어서인지 포석정으로 내려오는 길 걸음은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