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간중독>의 김대우 감독.

영화 <인간중독>의 김대우 감독. ⓒ 호호호비치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무채색 면 티셔츠를 입은 채 우수에 젖은 눈빛을 지닌 한 남자. 베트남 전쟁으로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가 생애 처음 사랑의 대상을 맞이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김대우 감독의 신작 <인간중독>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대도 아닌 정확히 1969년이다. <조선남녀상열지사-스캔들> <음란서생> <방자전>를 통해 전격 사극 멜로를 선보인 그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왔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사극'과 '시대극'이라는 표현에 김대우 감독은 "특정 시대의 역사를 다뤘던 적은 없기에 사극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영화도 멜로 시점극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시대든, 근현대든 김대우 감독은 그 시대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욕망에 천착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우 감독에게 시대적 배경보다 우선 순위는 캐릭터였다. <인간중독>에서는 두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송승헌이 사랑에 눈 뜬 김진평 역을 맡았고, 신예 임지연이 사랑의 대상 종가흔 역을 맡았다.

송승헌-임지연 의외의 캐스팅? "겸손함과 분위기에 끌렸다"

 영화 <인간중독>의 한 장면.

영화 <인간중독>의 한 장면. ⓒ NEW


"두 배우 캐스팅에 대해 우려도 많이 했었죠. 요즘 세대 분들은 많이 모르시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을 두고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떠올렸어요. 송승헌의 외모에서 그 느낌이 나더라고요. 승헌씨의 첫 느낌이 여성성을 가진 남자더라고요. 영화에서 김진평은 양보할 줄 알고, 조용히 혼자 시간을 가질 줄 아는 인물인데 승헌씨라면 제가 추구하는 남성성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거죠.

사실 송승헌씨가 연기파로 인정받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와 함께 목숨을 다해 해 보겠다 생각한 거죠. 제가 현장에서 컵 하나 집는 것까지 시범을 보이는데 승헌씨가 그걸 진지하게 또 열심히 받았아요. 함께 출연한 조여정씨야 저와 <방자전>을 했으니 잘 알잖아요. 승헌씨를 보며 감독님의 몸놀림과 비슷하다고 노력을 진짜 많이 했다고 말하더군요.

임지연씨는 승헌씨에 비교하면 작은 사람일 수 있어요. 다만 이미 만들어진 배우가 아니었기에 표현하는 면에서 오히려 수월했죠. 물론 연기에서의 어색함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잘 따라줬어요."

배우 이야기로만 오랜 시간 할애할 기세였다. 그만큼 회심의 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경력이 비교적 짧은 송승헌과 <인간중독>이 데뷔작이 된 임지연을 두고 김대우 감독은 맛있게 보이는 케이크에 비유했다. 맛있는 빵이 송승헌이라면 임지연을 그 빵을 둘러싼 향기로운 크림이었다. 김대우 감독은 "<인간중독>이 두 배우가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베트남 전쟁 소재? "꿈틀거리는 사회 분위기를 위한 것"

 영화 <인간중독> 의 한 장면.

영화 <인간중독> 의 한 장면. ⓒ NEW


그렇다면 1969년이라는 시대 배경과 군인 관사라는 공간 배경은 그저 설정에 그칠 뿐인가. 김대우 감독은 "평화롭고 조용한 시대보다는 일렁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좋아한다"며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라는 말을 언급했다.

"클래식하다는 말은 좀 버겁고, 약간 낡고 템포도 느린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왈츠 음악과 빗속에서 일렁이는 사람들을 담고 싶었던 거 같아요. 또 관사라는 공간은 폐쇄적이잖아요. 폐쇄성이 주는 터부(taboo)가 좋더라고요. 뭔가 시대성과 사회적인 걸 작품에 담으면 물론 그럴싸해 보이는데 제가 그걸 불편해해요. 욕망이면 욕망이지, 그걸 사회적으로 감싸는 것에 두려움이 있죠.

그렇다고 역사를 아예 안 보는 건 아닙니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베트남의 관계도 나름 알고 있어요. 다만 제가 관심 있는 건 정글 안에서 판초우의를 입고 밤을 새며 비를 맞으면 어떤 기분일까 같은 거죠. 제가 좀 통사에 약해요. 더 나아가 역사 속에서 무어라고 정의되는 것들을 잘 안 믿고 고민하는 거 같아요. 그 시대를 산 사람은 현재에 없잖아요. 그저 그 안에서 살던 개인들을 하나하나 보이는 게 제 역할이죠."

다시 말하면 시점만 빌리는 방식이다. <음란서생>이든 <방자전>이든 그곳에는 인간 욕구와 본성만 존재한다. 그렇다고 성애에 대한 작품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김대우 감독은 "이야기 배경에 성애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욕망과 쾌락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추구할 때의 기쁨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 말했다. 

'작가 출신' 김대우 감독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영화 <인간중독>의 배우 송승헌과 김대우 감독.

영화 <인간중독>의 배우 송승헌과 김대우 감독. ⓒ 호호호비치


스물 하나의 나이에 영화를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나고 있다. 사실 그는 감독 이전에 작가였다. <정사> <송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의 작품을 썼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감독의 직함으로 대중 앞에 섰다. 

"한국 영화 풍토가 작가에 대한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무관심이 있잖아요. '생모에 대한 설움'(영화 작업에 일조하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죠. 성격적으로 투덜거리는 걸 싫어하는데 언제부턴가 마음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더라고요. 성격상 감독이 맞지는 않지만, 영화라는 DNA가 제 것이라고 증명하고 싶었어요."

백지 상태에서 부딪히며 감독의 자리를 배워갔단다. 자신의 감독 데뷔작인 <음란서생>을 들며 김대우 감독은 "연기는 한석규에게, 촬영은 촬영 감독, 미술은 미술 감독, 현장 진행은 조감독에게 배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설움도 있었지만 그저 학생처럼 현장에 앉아 있던 날 배우가 존중해주고 스태프들이 존중해줘서 고마웠다"던 그에게 치열하게 영화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에요. 예쁜 여자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나? 이 말 하면 제 아내가 뭐라 하겠네요(웃음). 지금은 덕이 좀 더 쌓여서 스태프들과 식구들을 위해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속내는 아무래도 여자려나(웃음)."

감독이기 전에 김대우의 본질은 작가였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차지하는 작가의 위치에 대해 그는 "3일 밤을 새서라도 할 말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어진 지면과 시간 탓을 돌리며 그는 <인간중독>에 빗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어느 이국땅의 이름 모를 모텔에서 제가 죽었다고 가정을 해봐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TV에도 나오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죽은 저를 뒤지면 아무 것도 없겠지만 펜 하나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펜을 열어보면 '내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 거예요.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갈 때도 늘 직업란에 전 작가라고 적어요. 작가가 되고 난 이후 전 한 번도 작가가 아닌 적이 없습니다. 시스템에 대해 그 어떤 비판을 하기 전에 제 정체성은 작가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인간중독 김대우 송승헌 임지연 베트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