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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있는 쪽으로 오라고 했어야 하는데..."

지난 2일 경기도 안산의 병원에서 만난 생존자 정기상(56)씨는 후회가 깊다고 했다. 사고 당시 정씨는 아내와 함께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 결혼 30주년 기념 제주도 여행이었다. 하지만 사고는 부부를 갈라놓았다. 남편은 뭍으로, 아내는 바다 속으로.

부부의 숙소는 3층 선수 부분의 여러 명이 쓰는 큰 바닥 방이었다. 그날 오전 세면을 마친 정씨는 혼자 매점에서 커피를 타서 왼쪽 갑판으로 나갔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아내는 방에 머물렀다. 잠시 바람을 쐰 후 다시 들어와 로비에 있는 긴 소파의 코너에 앉았다. 커피를 두모금이나 마셨을까. 갑자기 우당탕탕 하면서 몸이 배의 왼쪽으로 굴렀다.

정씨는 갑판 쪽 벽에 걸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로 옆이 문이었다. 한 남자는 바다로 떨어져나가기도 했고, 여학생 한명은 갑판 난간에 겨우 걸린 모습도 목격했다고 한다. 앉아있던 소파도 쭉 밀려내려와 출입문의 80%를 막을 정도로 배는 갑작스럽고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 벽을 의지해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정씨는 서 있었고, 학생 대여섯 명과 성인 남자 서너명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꼼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움직이면 위험하니 대기하라는 방송이 계속됐고, 앞쪽 방에서부터 구명조끼가 하나 둘씩 전달됐다. 하지만 숫자가 충분하지 않아 정씨는 입지 못했다.

그때 대각선 쪽에서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우측 복도 쪽이었다.

"(도면에서 위치를 찍으며) 집사람이 여기까지 나왔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벌벌 기어서 나온 것 같다. 그때 내가 잘못했어... (방송에서) 안전하다고 하니까, 안심만 시키고..."

- 어떻게 안심을 시켰는가.
"손으로 사인을 했다.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요렇게, 난 무사하다고, (양 손가락으로 엑스표를 그리며) 요렇게, 움직이지 말라고, 위험하니 들어가라고..."

남편의 무사함을 확인한 아내는 남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배가 점점 기울어 3층으로 물이 치고 들어오면서 정씨는 바다로 뛰어들었고, 해경 구명정에 구조됐다. 하지만 육지에서 아무리 찾아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고 열흘째인 4월 25일에야 그는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3층 선수 쪽을 수색하던 시기였다. 아내는 안전하다고 다시 들어간 그 방에 있었으리라.


태그:#세월호, #생존자,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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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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