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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한 사람만 남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난 11일 한 매체가 보도한,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아버지의 말이다. 그들은 아직 바닷속에 갇힌 가족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 사건이 세상으로부터 잊힐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다행히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흘렀음에도, 국민들은 '세월호 사고'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각지의 합동 분향소에는 여전히 조문객이 줄을 잇고, 눈에 띄는 곳 어디에나 노란 리본이 나부낀다.

국민들은 이런 어이없는 사고의 위험이 여전히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지난 10일 SBS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88.9%에 달하는 응답자가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서는 선장과 선원, 해운사와 함께 정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동시에 취임 후 고공행진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20%p 가까이 떨어졌고, 여당 지지율도 30%대로 하락했다. 세월호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과 관리체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다.

이는 언론이 세월호 사고에서 아직 눈을 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직 사고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금은 사고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 보도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포함한 방송사들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시청자의 시선을 다른 사건으로 돌리는 데 더 힘을 쏟는 듯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언론노조가 연대한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이 12일 발표한 11차 보고서에는 이 같은 행태가 잘 드러나 있다.

'시선 돌리기' 나선 KBS·MBC, 공영방송 맞나


지난 7일, KBS는 저녁 뉴스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검찰수사 소식을 4꼭지나 보도했다. 한 시간짜리 뉴스에서 한 주제에 4꼭지나 할당한 것이다. 같은 날 다른 방송사들은 채 전 총장의 소식에 모두 1~2 꼭지를 할애했고, 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TV조선조차 3꼭지를 보도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눈에 띄는 일이다. KBS는 이 뉴스를 8번~11번 꼭지에서 다뤘는데, 5·6·7번 꼭지로 보도한 TV조선을 제외하면 가장 앞부분에 배치한 것이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지난해 10월 2일 KBS노조가 발표한 성명 중 "KBS노조가 파업을 잠정 중단한 바로 그날 사측은 점점 더 궁지로 몰리고 있는 박근혜 정권을 호위하기 위해 'TV조선 베끼기'도 모자라 이를 톱으로 두 꼭지씩이나 보도하는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다"는 부분을 인용하며 "KBS는 채동욱 기사와 관련해 앞서 내홍을 겪은 바 있어 이 같은 보도행태를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다음 날인 8일, KBS와 MBC는 나란히 '무인기' 소식을 톱 보도로 배치했다. 보도량도 4꼭지로 두 방송사가 같았다. SBS가 2건(8~9번째), JTBC가 1건(23번째), 채널A가 2건(17~18)인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TV조선은 무인기 관련 소식을 톱 보도로 3꼭지 보도함으로써 KBS·MBC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9일에도 KBS와 MBC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경제대책 관련 소식들을 톱 보도로 내보냈다. 타 방송사들이 관련 뉴스를 대개 10번째 꼭지에 전후해 보도한 것과는 역시 대조적이다. JTBC는 이와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보고서에서 "이 같은 이슈들이 뉴스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으면서도, "시신 수습이나 사고원인 파악, 구조과정의 문제점 등 주요 사안이 많은 현실에서 KBS와 MBC가 유난히 세월호 참사를 제쳐두고 다른 주제를 부각하는 것은 세월호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적 물타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제 살리기' 강조한 보수언론들, 정말 '웃프다'

5월 7일자 문화일보 12면 기사
 5월 7일자 문화일보 1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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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수 성향의 일부 일간지들은 정부의 '경제 살리기'를 통한 출구전략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로 세월호 사고로 인해 위축된 소비심리와 그 때문에 손해를 보는 분야를 부각시키는 식이었는데, 가장 적극적인 것은 <문화일보>였다.

사고 열흘째인 4월 25일자 사설에서 처음 '세월호 참사, 경제충격도 고심할 때다'라는 주장을 했던 <문화일보>는 5월 7일 <개그프로 결방에 개그맨 생계 걱정>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틀 후인 9일에는 <단체관광 취소 따른 손실만 276억>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가 회복세를 이던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경제 지표로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이대로 가다간 3년 만의 경기 회복 불씨 꺼진다>(조선), <세월호 쇼크, 경기 회복 불씨 꺼뜨려선 안 돼>(중앙) 등의 기사를 통해 소비 위축 현상을 강조했다. 보고서에서는 <문화일보>의 보도 중 "(세월호 참사로) 웃겨야 사는 이들이 웃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이런 기사가 난다는 것 자체가 요즘 말로 '웃프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유족을 '조급증'으로, 정부 비판하는 이는 '종북세력'으로...

지난 7일 MBC <뉴스데스크>는 박상후 전국부장의 <[함께 생각해봅시다] 슬픔과 분노 넘어서야>에서 유가족의 조급증이 잠수부의 죽음을 불렀다는 식의 보도를 해 공분을 샀다. 이 보도에서 박상후 부장은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실제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해수부 장관과 해경청장 등을 불러 작업이 더디다고 압박했다"라고 발언했다.

또 동일본 대지진 때 평정심을 유지했다는 일본인의 사례와 쓰촨 대지진 때 애국심을 발휘했다는 중국의 사례를 든 후 "세월호의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쳤다"며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과 비교했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MBC 기자 121명이 박 부장의 리포트와 세월호 관련 MBC 보도가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성명을 내놓았다고 밝히며 위의 리포트를 '최악의 보도'라고 평했다.

유족이나 정부의 대처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선동' 혹은 '몰상식'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MBC만이 아니었다. TV조선과 채널A 등 종편 방송들은 세월호와 관련되어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반정부 선동'이라고 단언했다.

TV조선은 6일자 뉴스의 <간식상에 '대통령 비난 글'>에서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해 대통령 하야 공세로까지 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고, 채널A는 같은 날의 <국민 슬픔에 편승한 '반정부 선동'> 보도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려는 정략"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원색적 비난 퍼부은 종편 시사토크프로그램들

5월 7일자 TV조선 <신통방통> 화면캡처
 5월 7일자 TV조선 <신통방통>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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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의 시사토크프로그램에서는 보다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 6일 방송에서는 한 패널이 "일부 대한민국의 반정부 세력이 대통령 비난에 힘을 싣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TV조선의 <신통방통>에서는 한 출연자가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단체를 언급하며 "대표가 과거 민노당 대의원, 통진당 의원"이라고 밝힌 뒤 이 단체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공정보도감시단은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두고 "세월호 대형 참사가 '인재'임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는 것"이라고 평하며 "이들 매체(종편, 보수 언론)는 이런 흐름을 '반정부 선동', 또는 '정치적 이용'으로 묶어내며 '가만히 있으라'고 외친다"고 비판했다. 또 보수 언론의 주장을 두고 '또 다른 선동'이라 꼬집기도 했다.

이날 보고서는 이외에도 언론의 과도한 '박원순 때리기'와 '김황식 봐주기' 식 보도 행태를 비교해 지적했다.

■ 공정선거보도감시단 11차 보고서 기사 전문보기
1) MBC 박상후 전국부장을 용서할 수가 없다
2) 청와대 출입기자도 '기레기'를 자처하는가?
3) 박원순은 '때리고'…김황식은 '봐주고'
4) KBS, '세월호 물타기' 총대 맸나…채동욱 4꼭지-무인기 4꼭지

- <문화><조선><중앙>의 '웃픈' 경제살리기 출구전략 '옹호'
5) '표현의 자유'조차 '선동'으로 몰고가는 언론들
- [종편/방송 뉴스] '국민적 분노'를 '반정부 선동'으로 해석해
- [종편 시사]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대응 비난하면 '종북세력'
- [신문] '정부 비판'을 '정치 선동'으로 호도하는 <조선><동아><문화>

덧붙이는 글 | 유정아 기자는 민언련 회원입니다.



태그:#공정선거보도감시단, #지방선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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