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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추모글만 올리라고요?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소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온 최승원(21)씨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거나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등의 정치적인 글은 올리지 말라'는 거센 항의에 따라 12일부터 업로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최씨는 이번 참사 피해학교인 안산 단원고 출신이다. 2011년 '단원고등학교'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 그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부터 사고 관련 소식을 본격 게시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이용자 11만여 명은 이 페이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소식을 구독 중이다.

최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세월호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하자'는 뜻에서 페이지를 계속 운영해왔지만, 단원고에도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는 얘기를 듣고 페이지 업로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베 등 항의 전화로 운영 중단... '정부비판=선동'? 이해 안 돼"

'단원고등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단원고등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 '단원고등학교' 페북 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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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부 사람들이 연이어 학교로 전화해 '개인이 학교 이름으로 정치적인 페이지를 운영해도 되는 거냐'고 항의했다고 한다"며 "소식을 듣고 확인해보니 정말 일간베스트(아래 일베) 커뮤니티에 '항의 전화를 걸자'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베의 한 게시물에는 단원고 전화번호와 함께 항의 질문 예시 등이 댓글로 달려 있다.

최씨는 "세월호 참사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나도 반대하지만, 사고 관련 정부 비판을 무조건 '선동'이라고 몰고 가는 게 맞나 싶다"며 "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힘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씨가 페이지 운영 중단을 공지하며 올린 글이다.

[페이지 업로드 종료를 공지하며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안녕하세요. 단원고등학교 6기 졸업생이자 단원고등학교 페이지를 운영했던 최승원입니다. 페이지 운영을 이 글을 끝으로 마무리하겠다고 공지해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4월 16일부터 페이지는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진도 현장에서, 안산 분향소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힘들고 아픈 소식들을 나누며 함께 울고 분노했습니다. 피해자 분들의 울분과 답답함, 여야를 막론하고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행언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페이지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간간히 유족 분들과 2학년 생존자 학생들의 격려도 받으면서, 같이 말하고 행동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하자" "힘이 되어주자"는 책임감으로 계속 운영 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베 등 페이지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단체로 항의전화를 거는 일이 있었고, 사고 수습에 바쁜 선생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 운영 지속 의지를 단념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지에 일어난 일은 제가 책임지고 수습하고자 제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지만 단 한 사람도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로부터 "공식페이지가 아님을 밝히면 될 것 같다"라는 입장을 받았고, 저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악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부류들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에 대해 정치적이지 말라 합니다. 선동하지 말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그런 것들은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저는 오히려 정치적이지 않고, 선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야 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런 태도는 전에 겪었던 수많은 참사들처럼 가만히 있다가 서서히 잊어가며 또 다른 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적이지 말라' 하는 '반정치 선동'에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페이지를 보시는 여러분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감정에 솔직해지세요. 논리와 주장이 있다면 과감히 말하세요. 민주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나아가는 사회입니다. "선동하지 말라" 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히려 '반정치' '비정치'를 선동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악의적 선동이야 말로 비도덕적이며, 민주사회의 지속을 막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등의 대형 참사를 겪어왔음에도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세월호라는 어이없는 참사를 우리는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에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뭔가를 바꾼다고는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믿고 가만히 있다가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정치적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들이 바꾸고 싶은 것을 누군가 할 것이라고 위임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믿지 마세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세월호 사건은 지극히 정치적인 비극이었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방향도 당연히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자본은 이윤에 눈이 멀었고, 정부는 이를 방조하였습니다. 유지관리 메뉴얼도 없이 낡은 배를 가져와 무리한 증축개조를 하고 화물결박을 유기하고, 불법적인 해상교신을 해도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오히려 규제완화 추진으로 이를 권장해왔습니다.

그리하여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습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있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완전구조실패로 인한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재난당국은 너무나 부패했고, 무능했습니다.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끝없이 붕괴하며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신적인 능력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못 살릴 사람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 사람은 살리는 '기본'만 해주기를 바라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처참히 배신당했습니다.

재난당국은 컨트롤타워의 중구난방으로 자신들끼리 충돌하기 바빴고, 구조현장과 동떨어진 브리핑으로 피해가족들에게 불신만 안겨주었습니다. 구조당국도 사고초기대응부터 보고와 피해자들에 대한 자세까지 모든 것에 실패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으라는 것일까요. 그들의 무능을 비판하면 안 됩니까?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시스템을 질타하고 그 총괄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편향적인 것입니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것이 과격한 정치적 주장입니까?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과 더러운 행동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게 그렇게 선동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기어이 정치적이고자 합니다. 할 말은 하겠다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겠습니다. 저는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제 후배님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이 잊히지 않도록 하고, 우리가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안전한 사회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 예의이고 고인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물만 흘리면 언젠가는 잊게 됩니다. 분노를 잊고 눈물만 흘리며 잊어버리는 것은 눈물 자국이 지워진 뒤에는 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내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에게 같은 상처를 새기고 그것을 흉터로 만들어 끝까지 간직해야만 영원히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희생자를 추모한다면, 잊지 말고, 같이 새긴 그 흉터를 보며 끝없이 생각해주세요.

"또다시 이와 같은 흉터를 새기지 않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나름대로의 생각을 거쳤으면, 행동해주세요. 친구들을 모아 밤새 토론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볼 수도 있고, 그 곳에서 멋진 행동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봉사활동도 좋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봉사뿐만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힘든 일을 당했거나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에게 봉사하면서 세상을 곱씹어볼 수 있겠지요.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입니다. 이도 저도 미적지근하면 시민사회나 정당에 뛰어드는 것도 좋습니다. 잘 조직되어 있는 곳에서 진정 사회를 내 손으로 바꾸기 위한 행동들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서 저는 감히 여러분을 선동하고자 합니다. 반정치를 선동하는 세력들에 맞서서,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만 봐야하는 세상을 용납하지 말자고, 제발 같이 살아남아 달라고.

끝으로,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는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 정혜신씨의 인터뷰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Q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치유적 해법이 있을까요.

A :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과 구조를 샅샅이 밝혀내는 일에 나서는 것입니다. 해경, 청와대, 안전행정부, 국회의원, 협회,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언론사와 언론인들, 일베 등 이 참사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나치를 척결하듯 집요하게 끝까지요. 꼭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떼죽음으로 몬 이 끔찍하고 추악한 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집단살인에 가담한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는 세상에서 생존자와 유족들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런 독소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치유의 본질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1 대 1 심리상담을 1천 시간 하는 것보다 1만 배는 더 치유적인 일입니다. 그거 외면하고 심리치유 센터를 짓고 심리치유 사업비 1천억원을 들인들 아무 의미가 없어요.

Q : 충분히 알아들었지만 과격한 정치적 주장처럼 듣는 사람도 있겠어요.

A : 그렇지 않은 거 잘 아시잖아요. 유가족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달라졌다면 '고맙다. 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네 동생이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산다' 이런 맘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아이를 편안하게 놓아줄 수 있어요. 마음의 이치이고 치유의 근본 법칙입니다."

이제까지 페이지 구독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태그:#세월호, #단원고,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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