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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들어 생각하면 누구나 한 시절 꽃다운 때 있었음에 막연한 슬픔을 가슴에 보듬게 되나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미련이겠다. 더러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바쁘게만 살았던 사람이라도 또 다른 길이 있었는데 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때 왜 지금과 같은 결과가 될 거란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싶기도 하겠다.

살며 가장 아름답던 시절이 무엇이거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시작할 때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검던 머리털 희어지고 손마디 저리고 오금이 시린 늙음이 찾아 온 때다. 그래서 그 푸르고 싱싱한 젊은 날을 일러 꽃다운 청춘이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게 세월이고 찰나의 순간에 지나 온 것 마냥 아득하게 여겨지건만 그 곱고 푸르던 시절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긴 누구나 같은 모양이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허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 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 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은
월백설백 천지백 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 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오 
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에 일배주만도 못 허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세월 어쩔거나.
늘어진 계수 나무 끝끝어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허는 놈과 부모 불효허는 놈과
형제 화목 못 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 덜 먹게 하여가며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우리의 소리중 한 장르인 단가(短歌) 중 '사철가'다. 표준어로 고쳐 옮기면 원형의 맛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소리다. 하기야 소석과 같은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화체는 평소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니 우리의 소리가 지닌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부르는 그대로 옮기는 게 맞다.

봄은 이미 왔고 여름이 곧 올 것이다. 하지만 높은 산을 오르면 여전히 봄은 한창이거나 시작이다. 사람의 인생이 이처럼 이미 끝난 봄이라 생각했다가도 또 다른 곳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동안 산엘 오르며 만났던 다양한 식물들의 생태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에 대해 예를 들고 이 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장하게 피는 꽃들에 대해 넘어간다.

등선대 등선대를 오르면 대청봉을 비롯해 점봉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바로 앞엔 칠형제봉이 도열해 서고, 한계령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들어온다.
▲ 등선대 등선대를 오르면 대청봉을 비롯해 점봉산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바로 앞엔 칠형제봉이 도열해 서고, 한계령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들어온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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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몇 월의 꽃으로 생각할까?

"진달래는 몇 월에 피지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부분 4월을 이야기 했다. 분명히 진달래는 3월 중순을 넘기면 피기 시작해서 4월 중순이면 전국 어느 지역이나 들녘 야산에서는 모두 꽃을 피우고 이내 진다. 3월 중순에 진달래가 피는 걸 만났던 지역에서 살던 이들은 4월도 오히려 늦은 시기라 말했다.

그러나 바다라야 불과 직선거리 50여리도 채 안 되고, 남한에서 세 번째 높은 대청봉(1708m)도 20리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차이에도 한 달 전 보았던 진달래를 이제야 중간 정도인 해발 1000m 높이에서 본다. 그리고 다시 근 한 달 뒤에야 산정에서 만난다. 철쭉은 그보다 늦어 6월 중순에야 만개한다. 오색리 마을 자체가 두 달에 거쳐 같은 무리의 꽃들을 얼마간의 수고만 하면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지닌 것이다.

차이라면 같은 진달래도 높은 지대로 올라가면 온통 나뭇잎에 솜털을 붙이고 핀다. 이름도 '털진달래'라고 한다. 그리고 아주 키를 낮게 낮추어 자란다. 수 십 년 자란 나무라야 밑동은 한 아귀에 다 잡지도 못하게 크지만 키는 불과 6~70cm 남짓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눈잣나무, 눈향나무는 아예 옆으로만 자란다. 진달래과의 진달래나 철쭉도 그보다는 덜 하지만 위로 보다는 옆으로 더 많이 퍼진다. 그 이유는 바람에 덜 시달리는 걸 피하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본능이겠다.

대게의 식물들이 산의 높이를 달리하면 줄기나 잎에 솜털을 가득 지닌다. 물이 적은 지대에서 보다 원활하게 수분을 공급받기 위해 발달한 유전적 특성이겠다. 지표면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물이 극히 적은 조건에서 공기 속에 떠 있는 수분을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줄기와 잎에 잔털을 붙였다면 맞을 것이다. 지대가 높을수록 밤엔 더 많은 수분이 공기 속에 있다.

이런 환경을 살려 오색1리 마을에 들꽃과 산나물을 주요 마을사업으로 도입하기를 요구한다. 다른 고장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이곳에 맞게 이곳만의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사업이라야 실패도 적고 희소성도 높은 법이다.

먹을 수 있는 꽃

인터넷에 앵초를 검색하면 토종인 앵초나 큰앵초 외에도 몇 종의 앵초속 꽃들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설앵초는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으나 백두산엔 자생한다고 한다. 그 외 다른 앵초속은 모두 외래종이다.

프리뮬라란 식용으로 이용하는 꽃도 외래종 앵초다. 이 꽃은 허브농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꽃의 색상도 다양하다. 이른 봄 꽃으로 장식한 요리를 만난다면 대체로 이 프리뮬라라고 보면 맞다. 물론 비올라(Viola tricolor)가 학명인 삼색제비꽃도 봄에 식용으로 사용한다.

'비올라'에 대해서는 이런 사건이 하나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음식을 담은 그릇마다 삼색제비꽃이 장식으로 올려있었다. 그 꽃을 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릇 한쪽으로 치우며 한 연주자가 말했다.

"불편하게 왜 이런 꽃을 음식에 담는지 모르겠어요. 식당에 가면 파슬리도 많이 얹어주는데 불필요한 거 아닌가요?"

요리를 직접 하지 않는 경우나 관심이 없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삼색제비꽃이나 파슬리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이란 걸 모를 수 있다. 먹을 수도 없는 걸 장식이나 하자고 꽃을 따고 잎을 잘라 올리니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식물에겐 미안도 했겠다. 그에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일러준다는 게 그만 표현을 좀 달리했다.

"파슬리는 요리의 재료로도 쓰이고 먹을 수 있는 식물입니다. 물론 이 비올라도 먹을 수 있고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비올라를 먹을 수 있다고 했으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이 연주자 한 마디 했다.

"저는 비올라보다 작은 바이올린도 아직 못 먹었습니다. 비싸기도 하지만 이가 영 시원치 않아서 말입니다."

농담으로 받아들여서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모두 기분 좋게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연주자를 통해 그가 한 말은 비올라를 먹는다는 말에 감정이 상해서 한 대답이란 걸 알게 되었다. 활대로 켜는 서양악기도 몇 가지 되는데 형태가 같으나 크기가 다른 바이올린족의 악기가 세 가지다. 바이올린이 가장 작고, 그 다음이 비올라며 마지막이 첼로다.

"그 사람 왜 그렇게 건방지지? 아니 내가 한 말에 비올라는 먹어도 된다니, 그럼 바이올린은?"

좋게 해석해서 이런 표현이지 아마도 그 당시 연주자는 이보다 더 심각하게 마음 상했던 모양이다. 동석했던 이가 한참을 달래다 확인을 해보니 삼색제비꽃을 비올라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도 비올라가 아니라 팬지로만 알고 있었다며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더니 다시 한 번 오겠다네요"라며 웃던 기억이 난다.

큰앵초 앵초과의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큰 꽃이다. 설악산과 점봉산엔 앵초는 없고 큰앵초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 큰앵초 앵초과의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큰 꽃이다. 설악산과 점봉산엔 앵초는 없고 큰앵초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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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는 먹을 수 있다. 꽃뿐만 아니라 잎도 먹는다. 앵초(큰앵초나 설앵초가 아닌)를 보면 배추잎을 닮았다. 그래서였는지 경기도에서 '배추나물'이라고 하는 걸 확인했다. 아주머니들이 봄이면 앵초를 채취해 나물로 먹었다고 한다. 물론 꽃은 보기도 아까워 아직 맛은 보지 못했으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모질게 바람 휘몰아쳐도 온 산에 들불처럼 피어나는 꽃들을 막을 수는 없다. 점봉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대청봉을 향해 꽃들이 피어나는 시기다. 골짜기마다 함성처럼 꽃이 피어난단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 동시 기재됩니다.



#큰앵초#비올라#프리뮬라#점봉산#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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