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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대동마을(안성시 금광면 석하리)에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려고 내려온 홍성태(62세)씨.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이 마을로 귀촌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마을 이장이 되었을까.

귀촌 3년차부터 이장하라더니 급기야...

이사 온 지 3년 되던 어느 날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그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달라졌다. "이보시게, 우리 마을 이장 좀 봐"라고. 어르신들이 만날 때마다 그랬단다. 하지만 그는 이장을 맡지 않겠다며 고사했다.

홍성태이장은 지금 자신의 마늘 텃밭에서 풀이 나지 않도록 고랑 사이 사이에다가 짚을 덮어주는 중이다. 귀촌 7년차에 이장이 되었고, 이젠 귀촌 9년차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인상과 폼은 평생 농사만 지어온 농민인 듯 보인다.
▲ 홍성태이장 홍성태이장은 지금 자신의 마늘 텃밭에서 풀이 나지 않도록 고랑 사이 사이에다가 짚을 덮어주는 중이다. 귀촌 7년차에 이장이 되었고, 이젠 귀촌 9년차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인상과 폼은 평생 농사만 지어온 농민인 듯 보인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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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급기야 날을 잡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약주를 거나하게 드신 후, 성태씨 집으로 쳐들어오신 거다.

"오늘은 말여. 이장 본다고 약속할 때까지 우리는 안 돌아갈 텡게 알아서 혀."

그는 하는 수 없이 수락을 했고, 그 후에 마을회의에서 이장으로 선출되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그에게 마을 어르신들이 매달린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장 볼 사람이 성태씨 밖에 없다는 것. 직전 이장은 팔순 어르신인데, 30년 넘게 이장을 보셨단다.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이장을 그만두라고 못했는데, 고맙게도 성태씨가 이사를 온 것이다. 3년을 지켜본 마을어르신들은 성태씨라면 이장을 맡겨도 될 거라고 판단하신 게다.

이장에게 내린 특명 "마을회관을 지어라"

마을 어르신들이 성태씨를 졸라 이장을 맡긴 것은 "정체된 마을을 살려 달라"는 주문을 하고자 함이었다. 무슨 이야기냐고? 대한민국 어느 시골마을이라도 마을회관은 대부분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은 없다. 이 마을의 숙원사업이자 성태씨의 임기 동안 해결해야 될 큰 숙제가 바로 마을회관 건립이다.

농촌에서 마을회관은 매우 중요한 곳이다. 농민들의 일상이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마을사랑방, 마을회의장소, 농사정보교류, 농사업무장소, 마을경로당 등의 역할을 한다. 마을회관은 그 마을의 모든 일들이 돌아가는 중심지다.

"마을 이장 본 지 2년째인데, 마을회관 건립 기금 750만 원을 모아놨어요. 임기 중 남은 2년 동안 2천만 원 정도는 모아서 마을회관 건축부지라도 사놓게요. 건축부지라도 있으면, 정부에서 경로당으로 지어주니까요."

마을 회관은 마을 안쪽에 있어야 한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하려면 집근처에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그는 마을 안쪽에 땅을 가진 땅주인들에게 마을회관 건축부지로 싸게 팔라고 설득 중이다. "노력하니 잘 될 거 같다"며 그가 웃었다. 

헉, 농촌인데 농사지어 먹고사는 집이 두 집?

"우리 마을은 농촌인데도 농사가 직업인 집은 25가구 중 단 두 집이에유. 나머지 어르신들은 거의 텃밭 수준이죠."

헉, 농촌인데 농사지어 먹고 사는 집이 두 집? 그럼 어르신들은 뭐 해서 먹고 살까. 자신들이 농사지은 것을 안성 장에 노점으로 내다 팔기도 하고, 자녀들에게 용돈을 타 쓰는 사람도 있고,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마을엔 독거어르신만  6집이고, 생활보호대상자 가정은 5집이다. 거기다가 '차상위 가정'은 좀 더 있다. 이런 형편이니 그는 금광면사무소에 뻔질나게 간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마을에 심는 꽃이 배급 나와도 홍 이장이 제일 먼저 받으러 간다. 면사무소 직원들 사이에서도 소문났다. 면사무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장으로 말이다. 면사무소에서도 그런 그의 진심을 알고는 뭐라도 챙겨주려고 애쓴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도 그의 몫이다. 인근 식당 등에 있는 정원의 '잔디 관리'를 마을 어르신들을 고용하도록 부탁했고, 지금은 인력사무소 사람들이 아닌 마을어르신들이 일을 하고 있다. 용돈벌이라도 하게 하려는 그의 진심이 통했다.

안성시 금광면 석하리 대동마을의 전경이다. 이 마을엔 모두 25가구가 살지만,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은 단 2가구라고 홍성태 이장이 말했다. 나머지 어르신들은 모두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짓는단다. 농촌이지만, 농업이 직업인 가구가 단 두 가구라는 것은 우리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 대동마을 안성시 금광면 석하리 대동마을의 전경이다. 이 마을엔 모두 25가구가 살지만,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은 단 2가구라고 홍성태 이장이 말했다. 나머지 어르신들은 모두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짓는단다. 농촌이지만, 농업이 직업인 가구가 단 두 가구라는 것은 우리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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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은 자동으로 영농회장 겸직, 바쁘다 바빠

대한민국 시골에서 이장은 영농회장을 자동으로 겸직한다는 걸 이장 되면서 알았다는 홍 이장. 영농회장이라고 하니 높은 자리인가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마을 농사업무 잔심부름 담당자'란 말이다.

해마다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퇴비, 비료 등의 수요를 일일이 파악하여 면사무소나 농협 등에 신청하여, 그에 해당하는 수량을 받아내고, 각 집에 전달해주고, 수금하고 입금하는 것을 하는 업무다. 올해도 그가 힘쓴 결과 1062포의 퇴비를 마을로 끌어왔기에 마을 어르신들의 입이 귀에 걸렸단다.

이참에 이장 봉급이 얼마인지 물었다. 홍 이장은 "정부로부터 20만 원, 농협으로부터 8만 원, 도합 28만 원"이라고 일러줬다. 그 외에도 이장은 마을의 궂은 일은 물론 면사무소와 농협에서 요구하는 일은 모두 처리해야 한다. 오죽하면 요즘 시골에선 웬만하면 이장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봉사한다는 맘이 아니면 이장 못 본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좀 있다가 또 면사무소에 들러야 한다는 홍 이장. 왜? 한 어르신의 도장을 면사무소에 가져다 줘야 한다고 했다. 이장이 도장 심부름까지. 마을 어르신들이 왜 그토록 성태씨에게 이장을 봐 달라고 매달렸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오늘도 홍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을 섬기느라 하루 해가 짧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9일 홍성태 이장의 집 정원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이장, #농촌, #대동마을, #홍성태이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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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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