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건국지> 책표지
 <조선건국지> 책표지
ⓒ 책보세

관련사진보기

최근 중학생인 아이들과 고궁 나들이를 자주 하게 되면서 우리의 역사와 역사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는 고향 친구가 "정도전이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드라마도 하고, 책도 많이 나와?"라고 물어봤다.

이런 친구에게 "정도전? 글쎄? 고려 말 정치가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지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인물 아냐?" 이처럼 학교에서 배웠던 대략을 말해놓고 속으로 좀 부끄러워졌다.

친구 말대로 그간 책도 많이 나오고 드라마까지 방영되는 정도전. 그에 대해 내가 정도전에 대해 아는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도전. 그에 관한 대중문화 매체물들이 많은 것은 그를 주목할 이유가 분명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을 아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가 물어보기 전까지 나는 정도전에 관심이 없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잘 아는 역사인물도 관심사나 하고 있는 일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밖에. 정도전이 비교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이 적은 정치인이나 혁명가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백성을 내면서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잘 보살피고 편안하게 다스리라는 것이다. 군주가 도리를 잘하고 못 하느냐에 따라 민심은 따르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한다. 이는 하늘의 이치다"

즉위교서다. 당대의 문장가 정도전의 혼이 녹아 있는 명문이다. 야인생활 10여 년에 터득한 백성 사랑이 올올히 맺혀 있다. 교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발길에 차여 이리저리 구르는 돌멩이로 알았는데 임금의 보살핌을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란다.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어야 하는 미물로 생각했는데 임금에게 보호받기 위해 태어난 귀중한 생명이란다. 임금이 나라님인 줄만 알았는데 백성이 주인이란다. 하늘같은 임금을 내칠 수 있는 힘이 백성에게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조선건국지> 중에서)

여하간 이참에라도 정도전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생각해 여러 권의 책 앞에서 고민을 했다.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오마이뉴스> 이정근 시민기자의 <조선건국지>(책보세 펴냄)이었다.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저자 이정근 시민기자.
 저자 이정근 시민기자.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정도전 관련 책 중 이 책을 우선 선택한 이유는 저자의 소설 <소현세자> 덕분에 안중에도 없었던 소현세자에 대해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소설 <조선건국지>는 정도전이 팍팍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만나며 함주 군영의 이성계를 찾아가는 여정부터 시작돼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다음은 저자인 이정근 시민기자와의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 최근 정도전 관련 책이 많이 출간됐다. 정도전의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시대가 정도전을 불러냈다고 생각한다. 정도전은 순진한 정치가가 아니다. 혁명가다. '안되면 되게 하라' 지시하고 안 됐을 때, 그 책임을 나 몰라라 하는 위정자가 아니다. '안 되면 되게 한다'가 그의 철학이다. '백성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군주는 끌어내리고 민생을 외면한 기득권자들의 탐욕은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사상이다."

- 정도전이 활약했던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나.
"초강대국이 교체되던 시기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굴기하던 때다. 대륙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시대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강대국의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였다. 약소국의 비애다. 해양세가 쇠퇴하고 대륙세가 굴기하는 오늘날, 되새겨보고 참고해볼만한 시대적 배경이다."

- 조선 건국 혹은 조선 역사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인물 정도전이다. 아직도 정도전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언급해준다면?
"정도전은 근본적으로 고려의 신하다. 고려의 녹봉을 먹고 있는 관료로서 고려를 개혁하려 했으나 기득권자들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답은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고려를 뒤엎을 머리는 있었으나 힘이 없었다. 하여, 무장 이성계를 택해 고려를 패망시켰고 조선을 건국했다. 518년 조선왕조의 설계자다."

- 정도전 하면 생각나는 것이 '요동정벌론'이다. 정반대의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진심이었다' '가식이었다'라고 답이 갈린다. 나는 후자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정도전은 당대에 국제 감각이 가장 뛰어난 엘리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원나라가 쇠하고 명나라가 흥하는 국제정세를 모를 리 없다. 그는 또한 건국 초기, 궁궐 축성과 배치, 법과 제도를 명나라에서 벤치마킹했다. 명나라를 건국한 명 태조에게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이라는 국호를 바쳐 주원장으로 하여금 뽑아서 하사하게 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줄 아는 사대주의자였다. 그러한 그에게 명나라를 공격하자는 '요동정벌론'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구실이었다. 기득권자들의 힘을 빼는 사병혁파와 이성계를 명나라에 엮어두기 위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정도전은 의외로 배포가 큰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보완한 <경제문감>에서 '군주의 권한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재상을 선택 임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사람의 재상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힘이 넘쳐나는 이성계를 묶어두기 위한 최상의 방법으로 명나라를 택한 것이다. 때문에 '한고조(이성계)가 장자방(정도전)을 기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정도전)이 한고조(이성계)를 간택했다'라는 자만이 나온 것이다."

- 정도전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음에도 정도전이 주인공인 <조선건국지>를 쓴 이유는?
"정도전 전성시대다. 650년 전 인물 정도전이 살아서 돌아온 느낌이다. 정도전은 흥미 위주로 접근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진실과 진심, 있는 그대로의 정도전을 그려보고 싶었다. 정도전의 백성들이 주인인 나라, 그 꿈과 좌절을 통해 '국(國), 즉 국가나 정치는 민(民), 즉 국민에게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새삼 묻고,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사소설 집필 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사실"

저자인 이정근 시민기자.
 저자인 이정근 시민기자.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 누구나 들려주는 정도전이 아닌 작가님만의 정도전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 같다.
"정도전은 실패한 혁명가다.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한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그의 정치 이념 '민본사상'과 '재상정치'를 백성들에게 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고려를 패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것은 '백성이 주인인 나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 아닌 완전 실패한 정치가다. 실패의 원인을 모르면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분석해 공유하고 싶었다."

- 어느 정도는 허구임을 전제로 역사물(사극이나 책)을 보면서도, 이를 통해 만난 역사인물의 면면이 진실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간 역사 관련 책을 여러 권 썼는데,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팩트다. 하지만 팩트만 추구하면 딱딱해지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재미라는 양념으로 버무려 시청자나 독자들 앞에 내놓는 것이 사극과 역사 소설이다. 시청자나 독자들이 가공인물과 역사적 인물을 가려 볼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에는 허구는 넣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수많은 사료들을 면밀하게 검토, 있는 사실로 흥미롭게 풀어쓰고자 하지 흥미를 위해 가공을 넣지는 않는다. 음식으로 치면, '천연 양념으로 최대한 맛있게, 맛을 위해 인공 조미료는 첨가하지 않는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事實)이 사실(史實)로 기록되면 역사가 된다. 진실(眞實)이 왜곡되거나 실종될 수도 있다. 때문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역사적 기록물 행간에 숨어 있는 진실(眞實)을 찾아 미답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 길을 갈 것이다."

- 특히 이런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을 것 같다.
"정치가들이다. 가(家), 즉 개인적인 것이 목적이 아닌, 민(民), 즉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읽기를 기대한다. 부(富), 즉 재산을 일부가 독점하고 정치가 왜곡됐을 때 삶이 얼마만큼 피폐해지는가를 알아야 행동할 수 있다. 또한, 그 풀잎이 밟히지 않고 올곧게 자라기를 응원하는 활동가들도 꼭 읽기를 기대한다."

- 몇 년 전, 기자님의 작품이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때가 생각난다. 당시 고정 팬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볼 수 없어서 아쉽다. 근황이 궁금하다.
"올해 하반기 모 지상파 방송을 통해 방영될 예정인 사극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작품 중 하나다. 사극을 통해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기회를 빌어 여러 통로를 통해 안부를 궁금해 하고 염려해준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시민기자들께 고마움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조선 건국지>(이정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4-04-07 | 11,000원



조선 건국지 - 혁명의 설계자 정도전의 꿈과 좌절

이정근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4)


태그:#정도전, #조선건국, #소현세자, #이방원전, #이정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