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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의 원찰인 연기암 모습. 국내 최대의 문수보살상이 보인다
 화엄사의 원찰인 연기암 모습. 국내 최대의 문수보살상이 보인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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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4일, 연기암을 방문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지리산을 찾았다. 맑고 청명한 날씨에 신록이 우거진 산사로 가는 길은 황금연휴를 맞아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다른 때 같으면 활달하게 웃고 떠들던 일상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조용히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때문이다.

해발 560m 고지에 있는 연기암은 구례화엄사의 원찰(原刹)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사람은 인도스님 연기조사이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지리산에 들어와 화엄의 가르침을 널리 선양하였는데 맨 처음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이곳 연기암이었다. 그 후 화엄사를 창건하고 다시 연곡사, 대원사, 귀신사 등등 지리산 곳곳에 사찰을 열어 화엄사상을 널리 폈다.

화엄사상의 철학적 구조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이다.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등이 걸린  화엄사 대웅전 모습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등이 걸린 화엄사 대웅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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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입구의 매표소. 카드는 받지 않으니 현금만 내란다. 그래도 되는 건가?
 화엄사 입구의 매표소. 카드는 받지 않으니 현금만 내란다. 그래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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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화엄사 방문이 처음인 사람이 있어 화엄사부터 들른 후 연기암을 방문하기로 했다. 화엄사에는 석가탄신일이 2일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연등이 주렁주렁 걸렸다. 건강, 합격, 승진, 안녕 등을 기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곳이 하나있다. 세월호 침몰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노란리본에 글을 쓴 후 줄에 매달고 있었다.

대부분 기원문이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었지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의 글이 눈에 띄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빌었는지 물었다. 그 여학생은 '한 명이라도 돌아오길…'이라고 썼다.

안산에서 온 중학생(중1)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 앞에서 쓴 글. '한 명이라도 돌아오길---'이라고 쓴 리본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안산에서 온 중학생(중1)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 앞에서 쓴 글. '한 명이라도 돌아오길---'이라고 쓴 리본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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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살고 중학교 1학년이에요. 이번에 희생당한 언니 오빠들 중에는 제가 사는 집 주위 한 집 건너 한 집에 살고 있었어요"

더 이상 물어볼 염두가 없었다. 더 물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부모와 함께 총총히 사라져가는 학생의 뒷모습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깝기만 하다.    

국내 최대 문수보살 기도 성지 연기암

연기암으로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2km쯤 올라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연기암이 나온다. 또 하나의 방법은 주차장 위쪽의 평탄한 길을 따라 가는 방법으로 4㎞쯤 걸린다.

화엄사 뒷길은 지리산에 자라는 온갖 나무와 대나무들이 터널을 이뤄 가슴속까지 들어오는 시원한 자연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주차장을 따라 올라가는 평탄한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지만 먼지를 내며 지나가는 승용차를 보면 속상한다. 보행이 어려운 사람이 아니면 굳이 자동차를 타며 절에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나선 초행길이 하필이면 자동차길이라 속상했다. 내려올 땐 찻집 주인에게 물어 숲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고 내려왔다.

연기암에 올라서면 저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연기암에 올라서면 저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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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에서 화엄사 뒷길로 내려오는 숲길. 온갖 나무들과 대나무들에 흠뻑취한다
 연기암에서 화엄사 뒷길로 내려오는 숲길. 온갖 나무들과 대나무들에 흠뻑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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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은 임진왜란 때 불태워져 잿더미로 변해 400년 동안 칡넝쿨과 가시덤불로 파묻혀 있다가 1989년에 종원대사가 중창을 했다. 2008년에는 만해스님이 국내최대의 문수보살상(높이 13m)을 조성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써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잘난 체하며 서로를 불신하며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너 없는 나도 없다. 세계는 본래부터 한 몸 한생명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이다. 이 인드라망의 비유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두가 보석같이 참으로 귀한 존재이며 그 각각은 서로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유기체로 더불어 존재함을 상징하고 있다. 한 번쯤 연기암에 들어와 자신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연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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