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문제가 전 국민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즘, <오마이뉴스>와 한국의료협동조합은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우리동네 주치의' 의료협동조합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을 함께 짚어 봅니다. [편집자말]
'농민이 주인이 되는 병원을 만들자'는 것이 의료협동조합 최초의 화두였다. 1980년대 말,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되기 이전, 병원 문턱은 높고 가난하고 얼굴이 새까만 농민들은 병원에 가면 천대받기 일쑤였다.

그 시절 연세대 의대 기독학생회 주말 진료팀은 어려운 농업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과 힘을 받았다. 경기도 안성군(안성시가 되기 이전) 고삼면 가유리 청년회원들 역시 지역으로 자신들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서울에 있는 의대생들이 약을 마련해서 2주에 한 번씩 고삼면 가유리에서 진료를 하고 나면 어느 집에선가 저녁을 해서 먹였고, 이어서 청년회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함께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장작으로 따뜻하게 불을 지핀 구들방에서 자고 아침에 다시 서울로 오곤 했다.

병원에 가면 천대받기 일쑤인 농민들

의사들은 약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뿐 아니라 소모임이나 건강실천단에 들어가도록 독려한다.
 의사들은 약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뿐 아니라 소모임이나 건강실천단에 들어가도록 독려한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그 과정에서 깊은 정도 들고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농민들은 당당하게 병원에 가고 싶었다. 병이 다 진행된 다음에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기에 진단을 받아서 살기 위해 병원에 가고 싶었다. 말로만이 아니라 농민이 병원의 주인이 되는 구조, 시스템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를 공부하다가 알게 된 것이 '의료생활 협동조합'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년간 진행되고 있었다. 의료협동조합은 병원의 주인을 바꾸기 위한, 건강의 주체를 세우기 위한 운동이었다. 고삼면 가유리 청년회는 안성군 농민회를 결성하였고, 의대 학생들은 한의대, 간호대를 포함한 의료인들을 모았다.

1994년에 드디어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이 출범되었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20년간 건강은 공동체의 몫이라고 그토록 떠들었건만 신자유주의 물결은 밀려왔고 요즘은 의료민영화까지 가속되고 있다. 의료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었던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나 조합원들 내부에 생겨난 주인의식,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 의료체계를 바라보는 안목, 함께 해서 행복했던, 함께 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경험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의료협동조합이 존재함으로 인해 지역사회에 민주적인, 생태적인, 복지를 위한 단체의 결성과 활동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건강의 지표로 여기는 영아사망률, 기대여명(특정 시점에서 앞으로 더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 등이 좋아졌을까? 그런 통계를 낸 적은 없다. 조합원이 정말 건강해졌을까? 모르겠다. 지역사회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자신없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바뀌고 협동과 공동체의 가치가 확산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치료의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 처음 병원에 와 "제가 뭘 아나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셔야지요" 하던 환자들이 이제는 내용을 숙지하고 본인이 선택을 한다. 아이들도 본인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안다. 진료 책상 위의 물건들을 함부로 만지는 부작용은 있다.

2분 진료? 여기선 그런 거 없습니다

혈압, 당뇨,고지혈증, 비만을 개선해 보고자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4주간 실천활동에 들어갔습니다.
 혈압, 당뇨,고지혈증, 비만을 개선해 보고자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4주간 실천활동에 들어갔습니다.
ⓒ 안성의료생협

관련사진보기


매년 보건학교가 열린다. 성인들을 위한 것도 있고 어린이 건강학교도 있고 갱년기 학교도 있다.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와서 듣고 배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 본인들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한다. 실무자들은 행정적인 일들만 보조를 해주면 된다.

의료협동조합에서는 서로를 신뢰한다. 의사로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건 환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일 게다. 주변의 의사들은 돈도 안 되고 그 복잡한 일을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나 의료협동조합은 의사가 가장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조합원들이 주는 신뢰 때문이다. 신뢰의 근거는 투명성이다. 의료협동조합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조합원과 상의한다. 의원에 새로운 기계를 도입할 때도 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건지, 그것이 갖는 시장성은 어떠한지도 함께 논의한다. 또한 의사와 조합원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의사는 그 조합원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약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의료협동조합에 와서 받았던 느낌을 이야기 한다.

"만성질환자들의 태도에 놀랐어요. 대개는 의사가 약을 먹으라니까 약 받아가기 바쁜데 이곳 환자들은 본인의 혈당이나 혈압 수치에 무척 관심이 많고 심지어는 좋아져서 약을 끊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의사들은 약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뿐 아니라 소모임이나 건강실천단에 들어가도록 독려한다. 소모임에는 함께 걷는 모임, 체조 모임, 산행모임 등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모임들이 있다. 건강실천단에서는 현미채식 등의 식이요법을 7주간 함께 하며 함께 모여 운동도 하고 강의도 들으며 체험담도 함께 나눈다.

재미나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

시내에 있는 주민들과 건강반 활동을 하고 소변체크와 혈압재기를 배우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내에 있는 주민들과 건강반 활동을 하고 소변체크와 혈압재기를 배우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안성의료생협

관련사진보기


둘러보면 재능은 있으나 '상품성'은 없는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 많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조합원은 함께 영화를 보며 해설을 해주는 소모임을 한다. 성악가였으나 은퇴를 한 조합원은 노래를 지도한다. 회사를 다니다가 은퇴한 조합원은 대기실에서 환자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한다.

건축일을 하는 조합원들은 집의 구조가 환자들의 건강을 방해하는 경우에(휠체어를 타는데 문지방이 높다든지, 비가 샌다든지, 너무 춥다든지, 곰팡이가 핀다든지) 경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찾아가서 '사랑의 집고치기'를 한다.

조합원들은 아파서만 병원에 오는 게 아니라 본인의 건강을 지키러 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러 온다. 재미나서 온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함께 해서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에 온다. 삶을 나누러 온다. 건강한 노후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서 온다. 그야말로 조합원이, 환자가 주인이다.

처음 자리를 잡았던 건물에서 어느 정도 경영상태에 오르는 것 같으니까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엄청 올려버려 이사를 가게 된 적이 있다. 이사 당일, 우리는 이삿짐센터를 부르지 않았다. 트럭을 가진 조합원들이 본인의 트럭을 가지고 오고 30여 명이 움직이며 짐을 옮기는 광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의약분업 시기, 병원들이 파업을 할 때도 조합원들이 반대하여 파업을 하지 않았다. 의료민영화로 인한 파업 시기에는 조합원들이 동의해서 파업을 하였다. 의료협동조합에서는 매달 운영을 위한 회의를 하며 각 단위 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가지고 이사회를 한다. 매달 7, 8개의 위원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며 10여 개의 소모임이 진행된다. 매달 1, 2회의 건강교육이나 보건학교, 건강실천단 등이 열린다.

협동하니 더 좋더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

지난 2월, 3동조합원 사랑방에서 중장기 비전 수립 컨설팅 결과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지난 2월, 3동조합원 사랑방에서 중장기 비전 수립 컨설팅 결과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 안성의료생협

관련사진보기


이 모든 과정들이 건강지표를 얼마나 상승시켰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합 활동을 해본 조합원들은 의료민영화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피폐화시킬지 잘 안다. 우리가 여태까지 해오던 방식과 얼마나 반대로 가는 건지 잘 안다. 미국에 가서 그곳의 의료시스템을 보고 온 조합원들은 미국에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한다.

안성의료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안성천 살리기 시민모임이 생겨났고 생활재를 나누던 소모임은 생협으로 독립했다. 안성시 사회복지연합회도 의료협동조합이 주도하여 만들어졌고 지역의 연대활동을 주도하는 단체들도 생겨났다.

우리는 안성시 전체가 건강해지고 생태적으로 건강하며 경쟁이 아닌 상생, 협동으로 삶의 자리가 이루어지게 되는 꿈을 꾼다. 서로 물어뜯고 나만 살려고 하고 끊임 없이 경쟁을 하라 하는 이 사회에서 '협동하니 좋더라'라는 경험이 확산되는 것만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성실 원장은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생협 의원입니다.



태그:#의료협동조합
댓글1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