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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
▲ 봉선화 메인 포스터
ⓒ 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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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으로 화제가 되었던 <봉선화>가 오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시 막이 오른다. <봉선화>는 2013년 11월 서울시극단에 의해 초연되어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재공연 추진을 위해 결성된 '연극 봉선화와 동행하는 겨레운동'의 줄기찬 노력 끝에 다시 일반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 여인의 참담한 삶에 더해 그 아들과 손녀 세대의 이야기까지 담아내어 더욱 풍성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초연에 이어 윤정모 작가가 극본을 집필했고 김혜련과 구태환이 각각 예술감독과 연출을 맡았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수나는 재일교포 3세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논문을 쓰게 된다. 그녀는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세상에 새긴 상처가 어떻게 또 다른 아픔을 낳게 되었는지를 목격하는 동시에 자신과 가족들을 둘러싼 진실에도 조금씩 접근한다.

친구와 장터에 다녀오던 열넷의 소녀가 검은 머리의 어른들에게 납치되어 당했던 고통, 그리고 전쟁 중에 자행된 헤아릴 수 없는 폭력들. 수나가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다.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 치료하지 않은 채 그저 깊이 묻어버렸던 우리의 지난 역사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를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비통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당신들은 정말 책임이 없느냐고, 이들의 아픔이 오직 이들의 것일 뿐이냐고.

그리고 이 연극은 위안부 문제가 할머니 개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 모두가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답하고 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온전히 포용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들, 가족들마저 할머니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끔 만든 사회적 편견들. 극은 할머니의 회고와 수나의 추적이 마침내 맞물리는 순간에 이르러 관객 모두를 향하여 소리 높여 웅변한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일어나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라는 것을.

절규하는 소녀
▲ 봉선화 절규하는 소녀
ⓒ 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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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는 위안부들이 겪었던 고통과 절규, 그 비통한 순간들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한 점이 적잖이 인상적이었다. 무대 뒷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상징적인 몸짓과 소품을 사용해 표현한 아픔은 온전히 관객들에게 전달되어 어느 순간 왈칵 울어버리고 싶게끔 한다. 물론 위안부들이 당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상징적인 표현으로만 전달하는 건 충분치 않은 듯도 싶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제약 안에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현재는?

한·일 양국은 지난달 16일부터 외교부 국장급 간부를 대표로 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아직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양국의 입장차가 커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지는 못했으나 이달 중으로 도쿄에서 제2차 국장급 협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공식석상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국 정부 간의 협의가 진행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각에는 여전히 온도차가 있다. 일본 내각을 책임지는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달 17일 공개된 미국 시사잡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며 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앞서 올해 1월 일본 공영방송 NHK의 모미이 가쓰토 회장도 "위안부는 독일,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있었다", "네덜란드에 왜 지금도 매춘업소 쇼윈도가 있겠는가?"라며 위안부를 매춘여성과 동일시하는 발언을 해 문제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는) 끔찍한 인권침해다. 과거를 솔직하고 공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다. 이에 대해 윤병세 외무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자관계를 넘어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커다란 관심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방증한 계기"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난 30일에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12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언제나 그러했듯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참가자들이 주한일본대사관을 향해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지만 두터운 벽 너머로는 아무런 응답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7일에는 제1125차 수요시위가 열릴 것이다. 일본정부의 공식사과가 있을 때까지, 그로부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수요일의 시위는 계속 될 것이다.

추천할 만한 연극 <봉선화>

삶은 소설보다 비통하고 역사는 연극보다 참담했을 것이다. 역사가 오직 지나간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낯설게 일깨워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연극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번 연휴기간에는 가족들과 함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이 어떨까? 연극 <봉선화>는 5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2만~3만 원.


태그:#봉선화, #서울시극단,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강남구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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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적어봐야 알아듣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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