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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도 개에게 주인 이름을 적은 목걸이를 걸어줘야하는 개 규칙이 있었습니다.
 100년 전에도 개에게 주인 이름을 적은 목걸이를 걸어줘야하는 개 규칙이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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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무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상가입니다. 백화점이나 상가, 타운이나 재래시장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으니 이들을 저잣거리라고해서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요즘 상가와 100년 전 저잣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규모도, 기능도, 역할도, 풍경도 다 달라졌습니다. 오늘날 상가에서 볼 수 있는 대개의 풍경들은 물건을 사고파는 데만 여념이 없는 분주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100년 전쯤 저잣거리에서는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소문도 나누고 정도 나눴습니다. 

혼삿말도 오가고 안부도 전해졌습니다. 이웃동네서 들려오던 어떤 소문에 대한 진실도 전해 듣고, 뜬금없이 떠도는 소문이 보태지거나 각색되는 곳이 저잣거리였습니다. 오늘날,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서 알려지거나 SNS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루머나 가십거리 같은 소문도 예전에는 저잣거리에서 오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현재진행형으로 떠도는 소식은 온통이 세월호 사건일 겁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너무 묵직해져서 잠을 잘 수가 없을 만큼 슬픕니다. 살점이 부르르 떨릴 만큼 화도 납니다. 대한민국 어른들 모두는 졸지에 죄인이 되고 상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건이 슬프고 화난 목소리로 방방곡곡으로 퍼지듯이 100년 전에도 사람들 입과 저잣거리, 신문만평과 소문을 통해서 퍼지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100년 전 사람들이 주고받던 이야기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지은이 이승원/천년의 상상/2014. 4. 14/1만 7000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지은이 이승원/천년의 상상/2014. 4. 14/1만 7000원)
ⓒ 천년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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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은 100년 전쯤을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 거리며 전했을 지도 모를 소문들이자,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목소리를 엮은 내용입니다.

오늘날 눈높이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100년 전 눈높이로 보면 분명 깜짝 놀랄만한 일들도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문에 빠지지 않는 건 남녀 간에 얽힌 치정인가 봅니다.

100년 전 이야기들이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밖에 없는 일들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만고의 역적이자 민족의 반역자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은 이완용에게는 온갖 추문이 따라다녔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며느리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가장 압권이었다. 이 소문은 1909년 7월 25일자 <대한민보> 시사만평에도 등장한다.

시사만평에 적힌 한자의 음을 읽으면 이렇다. "임이완용 자부상피任爾頑傭 自斧傷皮." 이완용이 자신의 며느리와 간통을 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큰아들 이승구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떠돌았다.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62쪽-

100년 전에 벌어졌던 이런저런 일들을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됩니다. 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무속,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만들어 낸 성 스캔들은 물론 서민들 사이에서 귀엣말로나 전해질 법한 이야기들이 그때 당시의 만평이나 기사 등을 인용해 낱낱이 소개됩니다. 

통변(통역)이 곧 능력이던 시대도 있었고, 변호사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도 10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단발령도 그때 내려졌고, 공창제도도 있던 시대 이야기입니다

개 등록, 100년 전에도 있었다

요즘은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에서 3개월 이상 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이를 어겼다 적발되면 1차에서는 경고만 받지만 2차로 단속되면 20만원, 3차로 단속되면 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합니다.

찬성도 있었고 반대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개와 관련한 일들은 요즘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100년 전에도 있었나 봅니다. 요즘은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삽입과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되지만 100년 전에는 개주인 이름을 적은 개목걸이를 개가 착용하도록 했나봅니다.  

개를 소탕하고 단속하는 개 규칙과 개목걸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조선인이 기르던 개가 일본인 어린아이를 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입맛을 씁쓸하게 합니다. 

제1조 개를 기르는 주인은 자기의 성명을 기록한 가죽 또는 금속으로 만든 목걸이혹은 표패標牌를 축견의 머리에 착용해야 함.
제2조 전 조의 목걸이 또는 표패가 없는 개는 야견으로 인정하여 박살함.
제3조 축견이 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인정될 때에는 개를 기르는 주인이 즉시 박살하여야 함.
제4조 포효광조咆哮狂躁(으르렁거리며 미쳐 날뜀)하거나 혹은 사람과 가축을 물을 염려가 있는 축견은 개 주인이 견고한 입마개를 채우거나 혹은 단단한 쇠사슬로 묶어두는 것이 옳음.
제5조 제3조 및 제4조를 위반한 자는 5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관보>제4460호, 1909.6.30 -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209쪽-

요즘은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삽입과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중에서 선택하면 됩니다.
 요즘은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삽입과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중에서 선택하면 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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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대신으로 널리 알려진 박재순은 개가 자신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개 목걸이에 하인을 기입했고, 민씨 척족의 거물인 민영소는 '영소'라는 이름을 빼고 품계인 보국을 넣어 '민보국'으로 기재함으로 개가 하루아침에 임금의 친족이 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진기를 처음 본 100년 전 사람들은 아이들 눈을 빼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봉명중학교 학생들은 일본인 관광단 환영행사에 동원되는 것을 반대해 집단으로 자퇴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100년 전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읽을 수 있고 역사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서민들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듯한 내용이며 느낌입니다.

그럼에 비해 <저잣거리의 목소리들>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100년 전, 서민이었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사람들 북적거리는 저잣거리에서 주고받았을 지도 모르는 우리들 이야기기에 낯설지 않아 살갑고, 공감되는 게 많아 실감납니다.

덧붙이는 글 |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지은이 이승원/천년의 상상/2014. 4. 14/1만 7000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천년의상상(2014)


태그:#저잣거리의 목소리들, #이승원, #천녕의 상상, #이완용,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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