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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된 네명의 네이비씰 대원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된 네명의 네이비씰 대원들
ⓒ 론 서바이버 공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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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중인 네이비씰 대원들의 '레드윙 작전'을 영화화한 <론 서바이버>는 지난 1월 미국에서 개봉돼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달 초 개봉해 10여일 동안 부진한 관객 몰이로 고전하고 있다. 

<론 서바이버>를 어렵게 시간을 맞춰 12일 감상을 했다. 흥행이 시원찮은 탓인지 상영관 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레드윙 작전'이 지난 2005년 6월 28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된 실제 사건이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을 뿐이다. 허구적인 영웅을 그리는 미국식 전쟁영화에 식상한 탓일 것이다. '레드윙 작전'은 미 해군 20명을 살해한 탈레반 부사령관 '아마드 샤'를 사살하기 위한 네이비씰 대원들의 작전명이다.

영화를 보니 전미 박스오피스 1위가 이해가 됐다. 사랑하는 아들, 연인, 형제를 실제 전사자가 속출하는 전장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미국 소시민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만한 영웅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영웅들은 람보식 영웅이 아닌 전쟁 속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들일 뿐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끊임없이 네이비씰의 자부심을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내뱉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외면하고픈 자기 최면일 뿐이었다. 결국 가족들을 생각하고 연인을 그리워하며 무차별적인 총탄 세례에 살이 터져 나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었다.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보다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된 네 명의 네이비씰 대원들이 작전도 시작하기 전 맞닥뜨린 양치기 가족들을 살려뒀어야 하는가이다. 적진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잠복해 있던 네이비씰 대원들은 산으로 올라온 양치기 가족에게 정체가 발각된다. 노인과 청소년, 어린이로 이뤄진 3명의 양치기 가족이다.

탈레반으로부터 맹추격을 받고 있는 네이비씰 대원들
 탈레반으로부터 맹추격을 받고 있는 네이비씰 대원들
ⓒ 론 서바이버 공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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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생사를 두고 네이비씰 대원들은 격한 토론을 벌인다. 본부와의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결국 팀장의 결단으로 이들을 살려 산에서 내려 보낸다. 살려 줄 경우 이들의 신고로 자신들은 곧 탈레반으로부터 추격당할 것을 알았다. 하지만 민간인인 이들을 결국 죽이지는 못한다. 결국 양치기 가족의 신고로 이들은 수백 명의 탈레반으로부터 맹추격을 받으며 영화는 전개된다.  

1968년 1월19일 대한민국으로 장면을 바꿔본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는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북한 무장공비들이 영화 10도의 칼바람이 부는 경기도 파주군 삼봉산에 모여 있다. 청와대 습격이란 '거사'를 앞둔 이들이 삼봉산에서 우연히 우희제(30), 경제(23), 철제(21), 성제(20) 등 나무꾼 4형제를 맞닥뜨린 것이다.

이들을 사로잡은 공비들은 이 나무꾼 형제들을 살려둘 것인가 죽일 것인가를 두고 격한 토론을 벌인다. 이들 역시 '론 서바이버' 상황처럼 상부와 무전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결국 절대다수가 가난하고 불쌍한 인민인 이들 4형제를 살려두자는 데 표를 던지고 이들을 풀어준다. 공비들은 결국 이들 형제의 신고로 청와대 앞을 막아선 군경에 의해 사살되거나 자폭으로 생을 마감한다.

미국인들이 들으면 발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쟁영웅들을 적대국 무장공비들과 비교하다니.

이들을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투에 내몰린 최정예 군인들 역시 인간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2005년의 미국 네이비씰이나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모두 애꿎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인간들이었을 뿐이다. 전쟁이란 거대하고 무자비한 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생명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살인기계로 길러진 최정예 병사들이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김신조의 1.21 사태 이후 북한은 그해 1968년 11월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 북한 특수부대원 120여 명을 침투시킨다. 그들은 나무꾼 4형제를 살려준 대가에 대한 학습효과로 남한 민간인들을 만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죽였다. '반공소년' 이승복의 죽음도 이때 발생한다. 미국 역시 2년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총기 난사로 어린이 9명을 포함해 민간인 1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분쟁지역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례가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전쟁이라는 무자비함 속에 인간의 정이나 품위가 비집고 생존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결국 전쟁이란 시스템을 어떻게 허물 수 있느냐가 인류에게 과제로 남게 된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쟁이란 거대한 시스템 역시 허물어질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론 서바이버>는 '우리 편'인 미국이 '나쁜 편'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교도들과 싸우는 영화가 아닌 점이 다행이다. 물론 네이비씰의 일당백의 무시무시한 전투력과 영화 후반 탈레반을 바퀴벌레 박멸하듯 아파치 헬기로 몰살하는 장면이 썩 사실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미국의 탈레반에 대한 절대적 반감을 고려한다면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불편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유일한 네이비씰 생존자(론 서바이버)인 마크스 러트렐을 구해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부족이란 점도 인상적이다. 이들 부족들이 마크스 러트렐을 구해준 이유는 '적에게 쫓기는 사람이 내 영역 안에 들어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이슬람의 '파슈툰왈리'라는 전통 율법 때문이다.

전쟁 영화를 통해 전쟁의 광기를 가라앉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은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육신의 고귀함과 가족의 사랑과 평화, 그리고 인간의 품위가 사라진 상황이 영화의 전투 씬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되기도 한다.  

너무 심각하게 영화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 인간에 대한 여러 생각을 들게하는 영화가 '기대하지 않았던' '론 서바이버'였다. 탈레반에 쫓겨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긴박감과 총알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현장감, 죽음을 코앞에 둔 전우들 간의 우정, 거기에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스토리에 대한 신뢰감 등이 후한 평점을 줄만했다. 영화가 곧 막을 내릴 것 같은데 늦기 전에 영화관으로 발길을 재촉해도 후회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태그:#론서바이버, #전쟁, #영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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