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포스터 ⓒ (주)코리아 스크린


어둠 속에서 주인공을 리시버나 휴대폰으로 협박하며 자신의 요구를 강요하는 범인. 그리고 정체도 모르는 그런 범인에 맞서 사건을 해결해 나아가는 주인공. 이런 설정은 스릴러 장르에서 드물지 않다.

비근한 예로 그 유명한 <폰 부스>(조엘 슈마허 감독)가 있을 것이고, 한국 영화 중에서도 생방송 중 리시버로 위협당하는 앵커의 이야기(<더 테러 라이브>)나 절대 바이크를 멈춰선 안 된다는 강요를 당하는 퀵 서비스맨의 고군분투를 담은 영화(<퀵>)가 있다.

 5년 만에 무대에 선 천재 연주가 톰 셀즈닉.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는 남자의 정체는?

5년 만에 무대에 선 천재 연주가 톰 셀즈닉.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는 남자의 정체는? ⓒ (주)코리아 스크린


5년 전, 전 세계에서 단 두 명만이 연주 가능하다는 전설의 곡 '라 신케트'를 연주하다가 치명적 실수를 한 후 무대 공포증이 생겨서 은퇴했던 천재 피아니스트 톰 셀즈닉(일라이자 우드 분). 인기 여배우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엠마의 격려와 그의 귀환을 격려해 주는 수많은 동료들의 환대 속에서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

그와 함께 '라 신케트'를 연주할 수 있었던 단 두 명의 연주자 중 한 명인 스승의 사망 후 그가 아끼던 그랜드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톰 셀즈닉. 그런데 정체불명의 괴한이 그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연주를 멈추지 말라는 괴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설의 '라 신케트'를 연주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고...

 일라이저 우드는 무대 공포증에 빠진 천재 연주가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일라이저 우드는 무대 공포증에 빠진 천재 연주가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 (주)코리아 스크린


<그랜드 피아노>는 폐쇄된 장소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벌어지는 일련의 음모와 사건들을 담고 있다. 뻔한 장르 영화의 관습에 '클래식'이라는 옷을 입혀 새롭게 탄생한 일명 '클래식 스릴러'다.

이 정체불명의 신조어는 요즘 유행하는 영화 홍보 문구 중 하나긴 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로 봐야 할지, 음악 영화로 봐야 할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모든 곡들은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클래식 넘버들이 아닌, 이 영화를 위해 따로 작곡되어진 곡들이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빅토르 레예스는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로 <베리드>나 <레드라이트> 같은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음악을 맡아 왔다. 이번 영화 <그랜드 피아노>를 위해 '완벽한 연주가 불가능한 곡'으로 불리며 플롯의 동기이자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전설의 곡 '라 신케트'를 비롯한 영화 속에서 일라이자 우드가 연주하는 모든 곡들은 그의 작품이다.

 제작진은 시나리오 상에 나타난 상황을 잘 표현하기 위해 직접 세트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제작진은 시나리오 상에 나타난 상황을 잘 표현하기 위해 직접 세트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 (주)코리아 스크린


영화 <타임 크라임>의 음악을 맡기도 하였고, <레드 라이트>에선 로버트 드 니로가 맡았던 사이먼 실버의 젊은 시절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던 유지니오 미라는 <The Birthday>, <아그노시아>에 이어 세 번째 장편 연출작 <그랜드 피아노>로 국내 관객을 찾는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기와 음악을 병행했던 그이기에 음악과 미장센에 대한 고집과 철학이 있어 보인다. 그런 그의 성향은 이번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캐스팅에 직접 참여해 그들의 외모와 말투까지 지도하였으며, 연주 장면을 위해 직접 세트를 제작해, 무대와 앞줄 관객석 및 박스석을 표현했다. 이런 꼼꼼한 연출 덕에 관객은 실제 연주회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스테디캠으로 톰 셀즈닉을 따라 연주회장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와 연주회장 뒤편 세트와 배우들로 인해 실제 연주회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런 장점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곤 하지만 지나치게 음악과 연주회장의 비중이 높은 나머지 인물과 플롯이 거기에 매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독특하면서도 약간은 지루하고 산만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프로도'가 돌아왔다. 일라이저 우드는 피아노 연주가로 완벽하게 연기 변신을 하였다. 전설의 곡 '라 신케트'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연주가 톰 셀즈닉.

'프로도'가 돌아왔다. 일라이저 우드는 피아노 연주가로 완벽하게 연기 변신을 하였다. 전설의 곡 '라 신케트'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연주가 톰 셀즈닉. ⓒ (주)코리아 스크린


일라이저 우드는 사실 <반지의 제왕> 이후로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옥스포드 살인사건>이나 <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 같은 저예산 스릴러 영화에서 간간히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이번 영화 <그랜드 피아노>도 전작들과 비슷한 느낌의 영화임을 부정할 순 없다.

작은 규모의 영화로,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로 런닝 타임을 온전히 채우기엔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기발한 소재이긴 하나 억지스러운 반전과 그랜드 피아노 속에 감춰져 있는 비밀은 오히려 영화의 일관성을 해치는 악수로 작용한다.

그래도 일라이저 우드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섬세한 신경의 예술가 역을 맡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 크고 깊은 눈망울과 독특한 음색은 언제나 그의 출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요소다. 실제로 이번 영화에서도 80% 이상의 연주 장면을 직접 소화해 냈다고 하니, 연기에 대한 열정과 메소드에 대한 집념은 박수쳐 줄 만하다.

 존 쿠삭은 영화 내내 거의 목소리뿐이지만 확실하게 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존 쿠삭은 영화 내내 거의 목소리뿐이지만 확실하게 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 (주)코리아 스크린


존 쿠삭은 사실 말이 필요없는 배우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관객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 그가 일라이저 우드와 공동 주연인 것은 맡지만 거의 대부분 목소리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그가 직접 등장해 일라이저 우드와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두 연기파 배우의 앙상블을 확인할 수 있다.

톰 셀즈닉의 아내 엠마 역을 맡은 케리 비쉬는 <아르고>와 <거친 녀석들; 거침없이 쏴라> 등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다. 국내 관객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매력적인 배우다.

 일라이저 우드와 존 쿠삭이라는 두 매력적인 배우의 앙상블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일라이저 우드와 존 쿠삭이라는 두 매력적인 배우의 앙상블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 ⓒ (주)코리아 스크린


그랜드 피아노를 소재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 전설의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암살범의 숨막히는 대결은 4월 17일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그랜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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