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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집니다.'

한국신문협회가 제58회 신문의 날(4월 7일)을 맞아 채택한 표어다. 협회는 "빠름만 강조하는 모바일 시대에도 신문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지만 당면한 신문의 위기가 표어에 고스란히 함축돼 있다.

매서운 속도를 앞세워 미디어 환경을 날로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더 이상의 속보경쟁은 지양하고 탐사보도 등을 통한 콘텐츠의 질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신문업계 스스로 인정하고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신문의 날을 맞아 각 신문사들의 각오는 비장하다. 사설과 칼럼 등에서 신문의 필요성을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어두운 구석도 엿보인다. 뉴스 이용자들이 신문을 외면하는 현상이 갈수록 증가하는데다 언론시장에서 점점 영향력과 신뢰도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날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앞서 지난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신문의 날 기념행사에서 송필호 신문협회장은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신문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지켜주는 신문이 얼마나 될까? 각 신문사들마다 사회적 공기로서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고 사실과 불편부당, 진실 등을 사시에서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신문이 많지 않아 보인다.      

<조중동> 과점 보수신문 독주...보수-진보, 서울-지방 양극화 고착

2014년 4월 7일자 <조선> <중앙> <동아>
 2014년 4월 7일자 <조선> <중앙> <동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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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이 지난 10년 사이 '반토막'으로 줄어든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지난해 10월 21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자료를 받아 공개한 '2012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신문 열독률은 82.1%에서 40.9%로 급감했다. 가구별 신문 구독률도 2002년 52.9%에서 2012년 24.7%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런 가운데 신문시장의 독과점 현상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3대 보수신문사들이 전체 신문시장을 오랜 기간 석권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2일 ABC협회가 공개한 2012년 인증부수(유료부수 기준)에서도 <조선일보>는 132만부로 1위, <중앙일보>는 92만부로 2위, <동아일보>는 75만부로 3위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진보신문인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각각 21만부, 18만부에 그쳤으며,  조사 대상인 89곳의 지역일간지 가운데는 <부산일보>가 11만부로 지역 1위를 기록하며 어렵게 두 자릿수를 유지했지만, 1만부가 채 안 되는 지역일간지가 수두룩하다. 신문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보수와 진보,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동시에 편향된 의제설정 난무, 콘텐츠의 질적 하락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위기상황에 내몰린 신문업계 전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984년부터 실시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1986년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99.6%가 신문을 이용한다고 답했지만, 25년 뒤인 2011년에는 이용률이 44.8%로 뚝 떨어졌다. 속보경쟁에서 방송과 인터넷에 밀린 데다 뉴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신문들이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 이는 점은 층일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언론재단이 20대의 미디어 이용률을 분석한 결과, 1996년에는 91.7%가 신문을 이용했으나, 15년이 지난 2011년에는 31.7%만 신문을 본다고 응답했다. 30대 역시 1996년 94.6%에서 2011년 43.1%로 급속히 감소했다. 20~30대는 대신 PC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본다고 응답했다. 신문은 이제 TV에 이어 인터넷에 설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무려 3천만 명이 넘는 스마트폰 이용자들까지 가세한다면 신문의 위기는 더욱 불 보듯 하기만 하다.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 기업에 매각, 남 일 아니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경영난 끝에 온라인쇼핑몰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에게 매각된 것은 신문산업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일깨워 준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보도로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는 <뉴욕 타임스> 등과 함께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여론을 주도해 왔던 신문사였다. 그런 신문사가 인터넷 기업에 매각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의 종이신문 업계에 경종을 울려준 일대 사건이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이 강조했던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는 말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 같은 현상은 신문시장이 난립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다. 특히 서울에서 발행되는 과점 보수신문들의 독주체제에 밀려 갈수록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역신문업계는 초비상이다.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지역신문 육성을 위해 201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할 테지만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지역신문발전기금은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0년 230억 원 가량 확보한 여유자금이 바닥이 난 상태에서 올해 계획된 사업이 끝나면 잔고는 불과 20억 원만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기금의 규모가 작고 안정성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수혜가 일부 신문사에 쏠리는 점도 문제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매년 100개사 내외의 우선 지원대상 신문사를 선정, 지원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의 자생력 확보라는 근본적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신문업계는 한시법을 일반법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종합편성채널(종편)에 온갖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조중동> 등 서울의 과점 보수신문들에게만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신문사들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정부의 언론진흥정책은 이처럼 현실과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독과점 신문사들에게 정부는 방송의 날개를 달아주어 거대 공룡화 시켜줌으로써 신문시장은 물론 언론의 황폐화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아이러니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족벌·재벌 보수신문사들의 오보와 왜곡된 보도는 신문의 신뢰도를 더욱 하락시키고 있다. 이들 보수신문들은 종편을 앞세워 친정부·친여 성향의 의제설정에 노골적으로 치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둔갑시키는 오보를 일삼거나, 선정적 기사와 제목 등의 자사 누리집 어뷰징 기사 남발, 종북몰이 등 이념적 성향이 짙은 기사 확대, 선거과정에서 편향적·불균형 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보수신문들 오보·왜곡 도 넘어

2012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
 2012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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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문업계 1위임을 자랑하는 <조선일보>의 오보 레이스는 가히 신문업계를 대표할만 하다. <조선>은 2012년 9월 1일 1면 머리기사에 '전남 나주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사진'이라며 애꿎은 시민의 사진을 싣는 오보특종(?)을 냈다. <조선>은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범인 OOO의 얼굴'이라며 한 남성의 사진을 실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한국 신문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웃고 있는 사진 속 남성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실은 해당 기사는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고OO(왼쪽). 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의 이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 있던 것이다"라는 설명까지 당당하게 붙였지만 '과열된 특종 경쟁이 낳은 참사', '허위사실 날조가 부른 인격 살인'이라는 오명을 <조선>에 가져다주었다.

그해 <조선>은 오보의 악몽에 시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7월 19일자 1면 기사에 내보낸 태풍 사진이 3년 전 사진으로 밝혀지며 물의를 빚었고, 또 같은해 1월 17일 1면 "김정남, '천안함 북의 필요로 이뤄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오보로 확인됐다. <조선>이 기사의 출처로 밝힌 일본 매체 편집위원이 <조선>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러한 오보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받아쓰며 더 흥분했다는 사실이다. <동아>는 다음날인 1월 18일 ''천안함 북 소행' 김정남도 인정했는데...'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내 종북좌파 세력은 북한 권력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김정남의 이런 폭로를 듣고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계속 주장할 것인가"라고 꾸짖었다.

<중앙일보>의 잇따른 사진오보도 신문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2008년 7월 온 나라가 광우병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중앙일보>는 '오보행진'을 계속했다. <중앙일보>는 7월 30일 광우병과 관련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내용과 검찰이 <PD수첩>에 해명을 요구한 내용을 비교분석한 표 위에 '올해 1월말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공개한 다우너(주저앉은) 소 동영상'이라는 설명을 달아 사진을 실었으나, 국내 축산농가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확인됐다. 이에 앞서 그해 7월 5일에는 자사 기자와 인턴기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한 뒤 이를 촬영한 사진을 실었다가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중앙>은 지난해 11월 21일에도 일본에 있는 신라시대 유물 금동관이 한국에 왔다고 잘못 보도했다. 이후 문제가 불거지자 "양산유물전시관이 일본에 반출된 문화재 부부총 금동관을 특별 전시용으로 빌려오지 못하고 국내에서 만든 복제품을 대신 전시 중인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면서 슬며시 오보 책임에서 한 발 빼려 했다.

종이신문 살아남기 위한 길, 진실 깊이 파헤쳐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NS가 날로 확대되면서 하루에 한 번 배달되는 신문으로서는 속도경쟁에서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오보와 왜곡·편향보도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이 지난해 5월 미국 국가안전국(NSA)이 2007년부터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민간인의 이메일과 페이스북, 통화 내역을 무차별적으로 감청·해킹했다는 내용의 특종보도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미국 정부에서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고 협조했다는 사실도 파헤친 이 기사는 비록 미디어의 속도가 빨라졌지만, 신문은 깊다는 점을 증명해 보인 모범사례다.

아무리 정파적·편향적으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진실을 거짓으로, 불편부당을 불의로 바꿀 순 없다. 아무리 미디어가 빠르게 진화하고 거대 언론의 영향력이 강해도 진실은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메커니즘의 기본이며, 진실 밝히기의 노력 없이는 도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는 것은 국가가 아니다. 소위 애국이란 것도 아니다. 그건 바로 진실이다."

살아 있는 비판적 시선과 냉철한 균형 감각으로 잠자는 진실과 정의를 깨워 일으켜 세우는데 한평생을 바친 고 리영희 선생이 남긴 말은 오늘, 신문의 날 더욱 의미 있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진실 없는 보도는 홍보에 불과하다. 이제 신문들이 독자로부터 신뢰받고 살아남을 길은 한 가지. 신문의 날 표어가 웅변해 주듯 진실을 더욱 깊이 파헤쳐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태그:#신문의 날, #종이신문,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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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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