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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 닮았다

10년 전 추석 오후였다. 친척들끼리 오랜 만에 만나 서로 어색했다. 서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서로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한 살 터울의 사촌동생이 넋 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너, 그 <올드보이> 누나 닮았다".
"윤진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당시 쌍꺼풀이 진하고, 코가 오뚝한 서구적 미인이 무척 예뻐 보였던 나는 동양적으로 생긴 심심한 내 얼굴은 언제나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무채색의 그녀와 나와 닮았다는 그 이야기는 되레 나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역시나, 난 안 예쁜 배우랑 닮았네'라는 생각도 들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어 내게 말을 걸었던 사촌동생은 되레 내 마음을 깨 버렸다. 사촌동생의 이야기로부터 최면에 걸려들었는지, 그 이후 영화를 봐도 그 많은 배우 중 윤진서만 보였고, 어느 예능 프로의 게스트 들 중에도 윤진서만 보였다.

작년 겨울 '윤진서와 닮았다'는 사연으로 참석한 그녀의 첫 번째 북 콘서트에서 그녀의 에세이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녀의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사촌동생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살다... 비브르 사비<Vivre savie>

윤진서 산문집 <브비르 사비> 책 표지
 윤진서 산문집 <브비르 사비> 책 표지
ⓒ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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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 백에 쏙 들어 갈 것 같은 이 아담한 책의 제목은 비브르 사비<Vivre savie>. 이는 불어로 한국말로 번역하면 '그녀의 삶을 살다'이다.

고다르의 영화 <비브르 사비>의 제목을 차용한 이 에세이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사진과 글로 표현했다.

책을 이리저리 살펴 보다가 책 표지 속 사진이 눈에 띈다. 아마도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어 창문 밖으로 펼쳐져 있는 바다와 섬을 찍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책 속에 아담한 크기의 사진이 함께 어울려 져 있어, 되레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다.

왜 하필 그 많은 사진 중 저 사진을 선택했을까? 그녀에게 이 사진은 어떠한 존재인 걸까.

연예인이 아닌, 자연인 윤진서

책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여행, 영화, 그리고 여자로서의 고민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는 그녀는 글이 예사롭지 않았다.

연예인 책이니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느 수필가 못지 않은 생각과 문체를 풀어놓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친한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듣는 마냥 친근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매우 솔직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그녀의 고백에 순간 책을 덮었다. 친구들 사이에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책 속에 털어놓은 그녀의 독백에 되려 내가 놀라버렸다. 그녀의 영화 속 연기에서도 그렇듯 그녀는 절대로 감정을 애써 꾸며내지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도 감추는 감정을 훌훌 털어 놓은 그녀의 글들을 보다 보면 되려 내가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자연인 이전에 배우인 그녀에게 혹여 잘못된 오해를 일으킬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솔직한 감정을 거짓없이 벗어둔 그녀는 되려 편해 보인다. 이제는 그녀는 배우라고 부르기 보단, 예술가라고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별탈 없이 삶이 흘러가길 희망했던 것 같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흔들흔들 거리는 인생을 너무나도 완벽한 존재가 되길 기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딪혀 보고 느끼는 것이 삶이라고 글에서 보여주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역마살을 띄고 이리저리 널뛰는 방랑자임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쭉 훑어 보다가, 책 속에 표지와 똑같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의 옆에 적혀있는 글귀 하나가 보인다.

'내 사랑을 받아 주어 고마워요'

문득 책이 '내 사랑을 받아주어 고마워요'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의 책에 나는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고마워요. 이야기를 들려줘서."

비브르 사비<Vivre savie>
그녀의 삶을 살다.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 윤진서 산문집

윤진서 지음, 그책(2013)


태그:#윤진서, #비브르 사비, #VIVRE SA VIE,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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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자 (Paleoclimatologist/Glac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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