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세 번결혼하는 여자>의 태원(송창의 분)과 채린(손여은 분).

SBS <세 번결혼하는 여자>의 태원(송창의 분)과 채린(손여은 분). ⓒ sbs


마지막 2회를 남겨두고 있는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스토리에 반전이 일어났다. 결별로 끝을 낼 것 같았던 정태원(송창의 분)과 채린(손여은 분)의 관계가 급작스럽게 호전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고, 뜬금없다 할 수 있을 만큼 색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이었다.

한동안 채린은 정신병에 가까운 행동으로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끌어 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까지 해 온 캐릭터였다. 정태원의 딸 슬기(김지영 분)를 학대하고 구타하기에 이른 나쁜 계모로서 말이다. 이를 알게 된 정태원은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억지 결혼을 시킨 최여사(김용림 분)까지 이에 동의하는 뜻을 보여, 곧 채린과의 결별로 끝이 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정태원은 지난 23일 방송된 38회에서 채린과 나눴던 추억들을 되새기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들의 관계가 틀어진 데에는 비단 채린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시인한다. 그리고는 최여사에게 단호한 한 마디로 자신의 결심을 굳힌다. "저 사람과 헤어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채린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후, 그의 굳게 다문 입술에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결의로 가득했다.

채린은 정태원이 자신을 다시 받아주겠다는 말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그의 바지를 붙들고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까지 살린 거라면서 흐느껴 운다. 정태원의 결정은 그녀에게 목숨을 건져준 동아줄과 다름없었다. 채린은 몰라보게 달라져 간다. 슬기와의 사이가 더없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불안한 기색도, 오만한 표정도 찾아볼 수 없다. 이로서 그녀는 출근길에 정태원의 키스를 받는 행복한 아내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던 정태원의 마음을 돌이키게 만든 것은 채린의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그녀는 몇 십 년 동안이나 아버지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었다. 몇 백 억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맘먹은 청렴한 기업가로서의 아버지의 뒷면에는 자신의 딸을 모질게 구타하는 악마의 본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정태원은 그녀의 아픔을 보게 되고, 결국 그 아픔을 보듬어주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한 장면.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한 장면. ⓒ sbs


그런데 이 같은 급작스런 스토리 변화가 김수현 작가답지 않게 작위적이라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결혼관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처음과는 다르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급하게 마무리를 지으려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쓴 소리인데, 다른 한 편으로는 과연 이것이 조급한 마음으로 얼렁뚱땅 지은 어색하고 허무한 결말일까 하는 반문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구타를 당했다는 이유 때문에 계모가 딸을 구타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아마도 이것을 채린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변명거리로 삼고, 뜬금없이 등장한 채린의 과거가 이야기 흐름에 어색함을 안겨주어 당혹스런 결말이 도출된 것에 따른 비난이 일었던 것일 테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는 이미 처음부터 정태원과 채린의 재결합을 결말로 염두에 두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조급한 마음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결합을 위해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다소 억지스러운 구석이 엿보였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테지만.

이러한 추론이 가능한 것은 <세결여>의 핵심 주제에 용서라는 미덕이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임실댁(허진 분)은 쌀을 씻으며 "이해하려고 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는데, 왜들 이해를 하기 싫어서 안달인지…"라고 말한다. 정태원은 채린이 제 정신이 아니라는 정태희(김정난 분)의 말에 "아프면 낫게 해 줘야죠"라며 채린을 감싼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용서의 의미를 재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태원은 자신의 딸을 구타했던 채린을 용서했다. 그 결과로 그녀를 다시 아내로, 슬기의 새엄마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용서를 받은 채린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의 삶을 살아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교훈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결말에 도달한 것이다.

아직 오은수(이지아 분)와 김준구(하석진 분)의 관계는 명료하지 않은 가운데 불길한 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오은수는 김준구와의 재결합을 원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준구는 계속해서 오은수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고개를 숙인다. 이대로라면 이들의 관계는 정태원과 채린과는 다른 결말을 보여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세결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되새겨 볼 때, 오은수와 김준구, 그들 역시 용서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하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쩌면 38회에서 오은수가 흘렸던 눈물은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용서하는 게 옳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수도 있기에. 훈훈한 해피엔딩이 기획의도는 아닐 테다. <세결여>의 진짜 메시지는 사랑의 시작이 용서로 비롯됨을 전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세번결혼하는여자 송창의 손여은 이지아 하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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