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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당>건물이 곧 헐린다. 예산군이 추진하는 주차장 부지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75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정오당>도 끝내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가.

"옆 건물에 세를 얻었어요. 다음달에 이사합니다."

올해 73세의 박문수 사장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이 업종이 사양길이 된지 오래지만, 지금까지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있으니까요."

선친이 22세 때부터 운영하던 <정오당>을 이어받은 건 그의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였다.

목조 2층 주택이 소실된 뒤, 1968년 새로 지은 <정오당> 건물. 외벽에 돌을 붙이고 입체감을 살린 이 독특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주차장이 조성될 예정이다.
 목조 2층 주택이 소실된 뒤, 1968년 새로 지은 <정오당> 건물. 외벽에 돌을 붙이고 입체감을 살린 이 독특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주차장이 조성될 예정이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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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 정면 가운데에 서 있는 괘종시계의 바늘이 12시 5분을 가리킨 채 멈췄다. “6·25때 피난민이 서울서 손구루마에 끌고 온걸 아버님이 사셨다고 해요. 왜정때 일본사람이 가져온 것이라니 100년도 더 된 거죠. 지금도 태엽만 감아주면 잘 가요” 그 앞에 기름을 발라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기고 목에 머플러를 두른 노신사가 <정오당>의 2대 사장 박문수씨다. 일이 많지 않아도 작업용 팔토시를 끼고 있는 모습에서 50년 세월 이 곳을 지켜온 시간들이 읽힌다.
 가게 안 정면 가운데에 서 있는 괘종시계의 바늘이 12시 5분을 가리킨 채 멈췄다. “6·25때 피난민이 서울서 손구루마에 끌고 온걸 아버님이 사셨다고 해요. 왜정때 일본사람이 가져온 것이라니 100년도 더 된 거죠. 지금도 태엽만 감아주면 잘 가요” 그 앞에 기름을 발라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기고 목에 머플러를 두른 노신사가 <정오당>의 2대 사장 박문수씨다. 일이 많지 않아도 작업용 팔토시를 끼고 있는 모습에서 50년 세월 이 곳을 지켜온 시간들이 읽힌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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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농 졸업하고 나가 직장생활하는데, 아버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당시만 해도 금은방 경기가 참 좋았어요. 여기서 아이들 네 명 대학 학비까지 다 댔으니."

지금이야 시계줄을 바꾸거나 이런 저런 잔고장을 고치는 일이 대부분이고, 드물게 돌반지나 은수저 같은 기념선물을 찾는 손님 정도지만, 금은방이 결혼준비 필수코스였던 시절이 있었다.

"예물을 적게 하는 사람들도 두세트는 했어요. 금은 기본이고, 진주와 루비같은 보석세트, 많이 하면 다이아까지 했죠."

돌잔치 선물도 금반지, 퇴직선물도 금열쇠, 친목계원들끼리도 금 닷돈, 열돈씩 돌아가며 타던 때였다.

"통일벼 나오기 시작하면서 진짜 좋았어요. 벼수확이 느니 농촌경기가 잘 돌아갔죠. 농촌에서 나오는 손님들은 일찍 장을 보고 들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아침 6시 전에 문을 열어서 사람이 많으면 밤 12시 넘어 문을 닫기도 했어요. 새벽 4시에도 열었다고 하면 믿겠어요?"

금 다루는 기술자를 두고 운영할 정도의 호황은 80년대부터 조금씩 기울더니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완전히 죽어버렸다. 한돈에 5만 원하던 금값이 15만 원까지 오르자 찾는 이가 크게 줄었다. 그리고 30만 원 가까운 시세를 기록하는 현재, 금은 더 이상 서민들의 것이 아니다.

그 사이 결혼예물도 돌선물도 문화 자체가 바뀌어 버리고, 손목시계 대신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는 세상이 됐다.

정오의 기운을 담은 가게

그런데 그는 왜 일흔이 넘은 나이에 세를 얻어서까지 이전개업을 하려는 걸까?

"아버지 밑에서 배운 기술 써먹으며 여러 사람 상대하는 게 재밌어요. 부속이나 도구가 없어 고치기 어려운 거 빼고는 안가는 시계 가게 만들어 놓는 것도 보람있고…. 특히 '부모님이 쓰시던 거니 꼭 고쳐달라'는 것 같은 사연 있는 물건을 고쳐준 뒤의 뿌듯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죠."

가게 안 물건들은 모두 세월이 스며 낡았으나, 어찌나 정갈한지 주인내외의 근면함을 느낄 수 있다.
 가게 안 물건들은 모두 세월이 스며 낡았으나, 어찌나 정갈한지 주인내외의 근면함을 느낄 수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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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시계방으로 출발한 <정오당>은 하루 중 활동이 가장 왕성한 낮 12시를 뜻하는 '정오'의 기운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그 덕분인지 <정오당> 뿐만 아니라, 이 거리 일대가 가장 잘나가던 때가 꽤 오래 계속됐다.

"전에는 이 골목을 예산 명동거리라고 불렀어요. 읍내장과 차부(버스터미널)를 옮기기 전에는 다들 이 길로 다녔으니까. 옷집도 많고, 본정통(임성로)보다 더 번화했죠."

한 눈에 확 띄지 않지만, 외벽에 돌을 붙이고 창틀 돌출을 살려 볼 수록 멋스럽고 정감가는 현재 <정오당>건물은 40여년(1968년에 건축)전에 건축됐다.

"원래는 고풍스런 2층짜리 목조건물이었는데, 2층에 세들었던 사진관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다 타버렸어요. 지금은 지은지 오래돼 낡았지만, 당시만 해도 돌 붙여서 지은 건물은 왕실다방(현 천일함석)이랑 딱 두채 뿐이었죠."

존재 자체로 소중한 공간

많은 사연과 긴 역사를 간직한 건물과의 이별, 어떤 마음일까?

"읍내상권이 침체됐다고, 건물 헐어 주차장 만든다고, 불만불평을 하면 뭘해요? 세상이 변해가니 시류 쫓아가며 사회에 순응해서 살아야죠."

그의 표정이 말처럼 평온하다.

가게 안 정면 벽에 붓글씨로 써 붙여놓은 문구에 담긴 마음을 알겠다.

'신오복(新五福)-건강하고 처가 있어야 되고, 재산이 있어야 되고, 소일거리가 있어야 되며, 친한 벗이 있어야 된다'

<정오당>은 이제 누군가의 일터, 혹은 수입처라기 보다 존재 자체로 예산상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주인인 박문수(73), 윤선구(67) 부부에게는 일상의 터전으로, 주민들에게는 추억 나눔터로.

<정오당>에서는 유행이 지나 조금은 촌스럽지만 정겨운 디자인의 시계들을 아직도 팔고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빼면 무엇하나 새것이 없는 가게 안 집기들도 볼거리다. 1대 사장 때부터 쓰던 나무작업대, 도구들, 모서리가 닳고 칠이 벗겨진 고동색 나무책상과 오래된 의자….

연중 무휴인 <정오당>은 아침 8시부터 해질때까지 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오당, #금은방,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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