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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에서는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을 발표했다. 현재 전체고용률(약 60%)에서 10%를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하에 주요하게 고려된 대상이 경력단절 여성이었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으로 시간제일자리가 크게 부각되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노동주체성을 위해서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취지 자체는 유의미하지만 경력단절의 원인 분석과 관련 정책으로 시간제일자리를 연결 짓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간의 분석대로 여성은 임신·출산·양육 때문에 경력단절이 되는 걸까? 혹시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시간제일자리로 여성이 단절된 경력을 잇거나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경력단절 경험을 가진 여성 20여명을 만나 경력단절이 되었던 이유와 이후 재취업 경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경력단절 여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기자 말

지난해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 등의 정책을 내놓은 박근혜 정부는 올해 2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과 '경력단절여성 등 경제활동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를 기반으로 여성가족부는 "일하는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 등 생애주기별로 직면할 수 있는 경력단절의 위험을 예방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예방하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정책이기는 하지만 이미 일어난 경력단절 이후 일의 지속을 잇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상당수의 재취업 여성들이 다시 경력단절 상황에 놓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완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새일센터를 통해 취업된 여성의 고용보험 취득 자료'에 의하면 재취업을 한 고용보험 가입 여성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6개월 내에 고용보험을 해지했다고도 한다. 이렇게 재취업 한 여성이 다시 경력단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뜨는 직업'으로 알고 자격증 땄는데, 현실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쉬움과 시원함이 뒤엉켜 있었다. 이대로 주저 앉는 것은 아닌지, 나 혼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쉬움과 시원함이 뒤엉켜 있었다. 이대로 주저 앉는 것은 아닌지, 나 혼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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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직업 상담이라는 게 뜨는 직업이라고 하면서 교사경력도 있으니까 잘 하실 것 같다고 권유를 받았어요. 그래서 직업 상담이라는 걸 처음 듣고 알아보니까 자격증 따면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경력 생기면 학교 취업상담실로 들어갈 수 있다니 핑크빛 희망을 갖기는 했어요. 그런데 처우가 깜짝 놀랄 정도로 형편없어요.

대부분 다 계약직이고 한 100만 원에서 많으면 150만 원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렵게 공부하고 자격증 딴 거에 비해서는 안 좋죠. 그래서인지 오래 하신 분들 못 뵌 것 같아요. 계약 끝나면 본인이 취업설계를 해야 되고. 고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계약 만료되면 다른 기관 모집공고 보고 지원하죠." (50대 초반, C)

직업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지인에게 '뜨는 직업'으로 처음 이 일에 대해 소개받았다. '핑크빛 희망'을 가졌지만 주변에 오랫동안 일하는 직업상담사를 본 적이 없고 학교 취업상담실에 들어간다 해도 불안정한 계약직이라고 한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계약이 만료되면 스스로 다른 기관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직업상담사 외에도 여성유망직종으로 부각되는 일자리들이 있다. '여성유망직종'을 키워드로 포털사이트에 검색한 결과 직업상담사처럼 '사'자가 붙은 직종들에 대한 소개 글이나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이 제정되었던 2008년에는 요양보호사가 각광을 받았고 지난 정부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겠다며 퍼플잡(유연근무제)을 내놓았던 이후 2011년에는 독서지도사와 미술치료사가 떴다. 보육시설에 대한 수요가 한창 높았던 2012년에는 보육교사와 사회복지사, 지난해에는 직업상담사, 청소년상담사, 노인상담사 등 상담사 직종이 '유망'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요양보호사의 경우 2008년 3만여 명이었는데 2011년에는 5만여 명으로 약 1.5배로 늘어났고 사회복지사는 2012년 한 해 8만 명 가까이 배출되었으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보유한 인원도 해마다 늘어 2012년 말 현재 56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를 포함하여 해당 직종에서 일하려고 하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 그러나 유망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위 유망직종에 종사하는 재취업 여성들은 대부분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루 일과는 오전에는 아침식사 수발하고 기저귀 케어 들어가고.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해두고 점심식사 수발할 시간이 다가오고. 2시 기저귀 케어 하고 쓰레기 버리고 3시 간식 챙겨드릴 시간. 그리고 5시 저녁식사 수발. 목욕은 1주일에 한 번 씩 하고요. 점심시간도 따로 없어요. 어르신들 식사시간 1시간 동안 식사수발 30분 정도 하고 정리하고 치우면 40분 정도 되는데 그때 짬을 내서 교대로 밥 먹어요.

그리고 잠깐 차 한 잔 마시는 것을 휴식시간으로 여기죠. 어르신들이 내 손을,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보람을 느끼죠. 근로계약서를 정식으로 작성하긴 했지만 계약서대로 지켜지지 않아요. 법으로 걸면 다 걸릴 텐데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죠." (50대 초반, R)

급여 적고 힘들고... 경력단절 여성 앞에 놓인 일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생겼고 많은 중년여성들이 관심을 가졌다. 시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R씨도 그 전에 하던 식당일이 너무 버거워 지인의 소개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애초 근로계약과 달리 법적으로 걸면 다 걸릴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개설할 수 있는 요양시설 설립 요건에 의해 개인 요양시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 요양보호사의 급여를 적게 주고 더 많은 일을 시키는 등 근로조건이 상당히 좋지 않다. 그리고 다른 요양시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현재 한국 요양보호 노동자의 현실이다.

"방학 때 다른 데를 알아보는 이유는 급여가 별로 많지가 않아서예요. 주 5일 근무에 세금 떼고 나면 130만 원정도. 거의 이게 무슨 개념이냐면 월급제보다는 시간제 개념으로. 시간에만 맞춰가지고. 방학 땐 월급이 없는 거예요. 임금 때문에 많이 그만두세요." (40대 초반, J)

지난해 한 지자체의 여성회관에서는 여성유망직종인 '단체급식 조리과정' 교육을 개설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J씨가 하고 있는 급식조리원이다. J씨는 방학 때 다른 일을 알아 볼 만큼 비전을 찾기 어려운 데다 '생계 때문에 일했으면 그만 뒀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450인 분의 배식을 위해 약 20㎏에 달하는 밥솥 및 철제 식판을 운반하거나 조리작업을 하다 근골격계 질환을 겪게 된 급식조리원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바 있는 만큼 급식조리는 '골병' 드는 일이기도 하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마치 좋은 일자리인 것처럼 그리고 어느 곳이나 취업할 수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이다.

지속가능한 일을 통해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2013년에는 직업상담사, 청소년상담사, 노인상담사 등 상담사 직종이 '유망'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2013년에는 직업상담사, 청소년상담사, 노인상담사 등 상담사 직종이 '유망'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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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력을 이어가고자 할 때 일에 대한 기대나 가능성만으로 재취업을 시도하기엔 여성 유망직종이 가진 함정은 깊다. 특히 왜 여성에게 그냥 일자리가 아닌 유망직종이 제시되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망직종 앞에 흔히 청년과 여성이 주 대상층으로 붙여지는 데 이러한 상황은 이들의 고용률이 낮다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다. 청년 실업의 대책으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의 노동조건 변화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기존 노동시장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기존 노동시장 안으로 유입시키기보다는 유망직종과 같은 또 다른 영역에 머물게 한다.

재취업 여성들의 일 경험을 비추어 알 수 있듯이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는 결국 또 다른 단절 이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 여성가족개발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재취업 한 경력단절 10명 중 3명은 이직이 아니라 아예 그만둔다고 한다. 저임금(13.9%), 일이 너무 힘들어서(12.7%), 열악한 근무환경(13.3%) 등 안정적이지 않은 노동조건 때문에 경력단절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어렵게 재취업을 하더라도 일자리의 질, 노동조건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일을 계속 이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야근을 안 하기 때문에 직장이 멀어도 다녀야겠다 싶어요. 휴가도 미리 얘기하면 굉장히 자유롭게 쓸 수 있고."(40대 중반, A)

"취업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래서 계속 자격증 따고. 그런데 지금 여기 정규직으로 일 하게 되면서 공부도 스톱, 자격증 따는 것도 스톱이에요."(40대 초반, Q)

노동조건과 관련해서 재취업 여성들의 요구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야근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눈치 보지 않고 있는 휴가 쓸 수 있는 회사, 급한 일이 생기면 잠깐 나갔다 들어와도 괜찮은 융통성이 발휘되는 일자리 그리고 계약 만료 때문에 항상 새 일자리, 새 자격증을 생각할 필요 없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했다.

이와 같은 요구들은 사실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노동조건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력단절 문제는 굳이 여성유망직종이나 여성을 주 대상으로 한 시간제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시간단축, 안정적인 노동조건 등 기본적으로 사회전반의 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실제 노동현실을 기반으로 경력단절 문제만이 아니라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여성노동의제가 발굴되어야 하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의 문제로서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태그:#경력단절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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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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