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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구에도 봄은 온다. 그러나 그 봄은 쓸쓸하다.
▲ 재개발지구 재개발지구에도 봄은 온다. 그러나 그 봄은 쓸쓸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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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지만 누구나 그 공평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공짜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더 좋은 공기, 물, 바람, 햇살을 누리며 살아간다.

공평하게 내리쬐는 봄볕을 골고루 쬘 수 없는 곳, 어쩌면 일년 365일 그늘의 자리를 벗어나 보지 못한 곳이 있다. 재개발지구의 골목길이 그곳이다. 아주 조금, 그만큼으로도 그저 감사해야 한다.

도시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곳에서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 재개발지구 도시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곳에서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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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째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이미 재개발 광풍을 타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이들은 다 떠나고, 재개발된들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너무 열악하다. 그 열악한 그늘들을 어서 거둬버리고, 차라리 번듯한 아파트 단지라도 들어서면 덜 슬플까? 지금 저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이 살 수 없는 아파트라면, 차라리 지금 저 열악함의 현장이 차라리 더 나은 것일까?

십자가의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두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일에는 관심없고, 어서 아파트 단지나 들어오고, 종교부지나 받아서 건물을 크게 올리면 대형교회가 되는 꿈만 꾸고, 그 꿈이 이뤄지리라 기도하는 것은 아닌지.

난 그들이 이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연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아주 가끔씩 적선을 했을 지언정.

햇살 한 줌 좁은 골목길 담벼락으로 들어오지만 그 봄빛이 이곳의 쓸쓸함을 더해 준다.
▲ 재개발지구 햇살 한 줌 좁은 골목길 담벼락으로 들어오지만 그 봄빛이 이곳의 쓸쓸함을 더해 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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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개발론자들이 등장을 했다. 중지된 용산은 물론이고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곳은 모조리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정비가 아니고 개발이란다.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토건세력들이 다시 반란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우고, 거기에 혹해서 지지하고, 그 결과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져도 여전히 지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의 우둔함을 탓하는 일도 이제는 힘겹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여기서 절망하면 아예 희망의 싹이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봄날 좁은 골목길을 파고든 봄 햇살이 고맙다. 폐허가 된 재개발지구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도 고맙고, 아직도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캐한 이산화탄소의 냄새도, 지난밤 활활 불타올랐을 하얀 연탄재도 다 고맙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재개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니, 더는 물러설 곳도 없는 이들에게 자본과 결탁한 권력은 무자비한 폭력과 회유를 통해서 그들을 내몰 것이다. 그리고, 그 내몰림 당하는 이들의 지지로 그들의 권좌를 지켜갈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가 있다. 결국에는 그들의 삶이 증거가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확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이들이 거기에 또 여기저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봄 햇살 만큼이나 따스한 사랑 가득할 것이요, 그들이 품은 꿈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태그:#재개발지구, #지방선거, #선거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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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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