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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외딴 곳에 서있는 마네킹이 낯설다. 마네킹은 소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 마네킹 도심의 외딴 곳에 서있는 마네킹이 낯설다. 마네킹은 소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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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시에서 사는가 물으면 당신은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직장, 교육, 의료시설 등등 살아가기 위한 제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도시를 혐오하면서도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들과 함께 도시인의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소비',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도시인의 삶이다. 덜 소비하면서 살아갈 용기만 있으면 탈도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이젠 저 시골조차도 소비문화가 똬리를 틀고 소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만들어 간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어촌은 농어촌대로 길을 잃어 버렸다. 인간의 존재성은 노동으로 인한 것임에도 이젠 생산과는 상관없는 노동에 길들여져서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성공의 잣대가 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탐욕이란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 바벨탑처럼 올라가는 제2롯데월드 신축공사장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진다.
▲ 제2롯데월드 공사장 인간에게 있어 탐욕이란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 바벨탑처럼 올라가는 제2롯데월드 신축공사장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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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끊임없이 재개발된다. 단 하루라도 개발되지 않는 날 없이, 분주하게 헐고 짓고를 반복한다. 재개발의 허상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삶의 터전이 황폐화된 이후이며, 재개발된 곳에는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만 살아갈 수 있다.

이전처럼 혹은 이전보다 덜 소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은 변두리로 쫓겨난다. 아니, 도심 속에 살고 싶다면 지하로 내려가거나 더 열악한 환경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비루하게 살지언정, 도시에 살아야 겠다는 마음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솟아날 구멍도 없는데 마치 그런 구멍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산다. 그런 로또같은 행운이 언젠가는 내게도 올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 둘, 아니 그보다는 좀 더 많은 이들은 그렇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삶은 더 퍽퍽해지거나 불안해지거나일 것이다.

철거중인 아현고가차도, 아현고가차도가 철거되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 종근당 빌딩 철거중인 아현고가차도, 아현고가차도가 철거되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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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아현고가차도가 철거되고 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곳에 서 있었으니 그들은 도시의 속살을 알까? 자신들처럼 낡아져서 더는 보수해서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탐욕의 도시, 소비의 도시를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만 사라지는 것이 억울하진 않을까?

꼬마들이 도심의 뒷골목에서 위험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오히려 나 잡아보란 듯이 약을 올린다. 약이 바짝 올라 "이놈들!"하지만, 영악해진 아이들은 더 재미있어라 한다. 부모도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 다보겠다는 눈치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이렇게 망가지나 보다. 소비하지 않으면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도시에서는 염치고 나발이고 그저 소비할 수 있는 힘만 잔뜩 키우면 만사형통인가 보다. 그것이 인간을 조롱하는 단어진지도 망각하고, 오로지 소비해 대고, 소비를 부추기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도시인들의 삶은 길 잃은 삶이다.

속내를 들여다 보이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늘 누군가 날 속속들이 지켜보고 있다.
▲ 추상 속내를 들여다 보이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늘 누군가 날 속속들이 지켜보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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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심의 빛깔에 망각된 인간, 자기의 속내까지도 전부다 소비를 위해 털려버린 세상, 모든 것이 넘쳐나지만 '메이드 인'은 없는 도심의 모든 것들의 뒤안길, 그곳도 그렇게 화려할까?

도심의 밤은 소비하는 이들로 흔들린다.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빛을 간직한 것 역시도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판이다.
▲ 추상 도심의 밤은 소비하는 이들로 흔들린다.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빛을 간직한 것 역시도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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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넘쳐나는 도시, 광고의 목적은 '소비하라!'이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하지만, '소비자는 졸'이거나 호갱님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소비하게 하되 헛되게 소비하도록 이끄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자신이 소유한 것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 주객의 전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자신에게 없어도 충분한 것들을 놓아 버리면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 돌아볼 여유를 도시는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하고, 다른 이가 소유한 것을 자신이 소유하지 않았으면 박탈감을느끼게 만든다. 그리하여, 분에 넘치는 것이라도, 빚을 내서라도 기어이 갖겠다는, 소비하겠다는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튼튼한 다리근육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자전거, 그들은 소비의 뒷골목에 버려져 있다.
▲ 짐자전거 튼튼한 다리근육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자전거, 그들은 소비의 뒷골목에 버려져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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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줄 알았다. 딸기의 제철이 5월이 아니라 한 겨울이라는 말이 농인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젠 제철에 나는 것은 도심에서는 팔지 않는다. 딸기고 수박이고 참외고, 심지어는 봄나물까지도 하우스에서 소비를 위해 자란 것들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계절을 잃어 버렸다.

오토바이와 소형트럭에 밀려버린 짐자전거, 하이브리도 자전거는 도처에 넘쳐나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역 주변에는 버려진 자전거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가운데 오로지 인간의 육체에 의해서, 먹고사는 방편으로 구슬땀을 흘리게 하던 짐자전거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퇴한 것이다. 과연 인간의 발전이라는 것이 인간의 미래를 보장이라도 해줄까? 도시는 갈수록 화려해 지고, 농어촌은 갈수록 낡아만 간다. 이런 현실의 암시하는 미래는 암울하지 않은가? 도시도 농촌도 모두 길을 잃었다.

작동이 되는 것인지, 더는 쓸모없는 것인지 모를 공구가 늦은 밤 닫힌 공구상 문에 걸려있다.
▲ 공구 작동이 되는 것인지, 더는 쓸모없는 것인지 모를 공구가 늦은 밤 닫힌 공구상 문에 걸려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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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고치고 싶다. 그러나 나도 병들어 있고, 간혹 정신이 돌아와 이렇게저렇게 살아야지 하다가 소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나서야 여기가 도시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무력함을 느낀다.

이젠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다. 소비와 일정한 담을 쌓고 생산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도 그 삶을 소비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삶을 고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미 용기있는 이들은 소비의 도시, 탐욕의 도시를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았다. 혹은 찾는 중이다. 그곳에서도 도심의 소비자처럼 살아가고자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겠지만, 도심에서 떠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그 길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다면 희망은 있다.

나는 지금 소비의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색깔을 잃어버린 흑백사진처럼, 혹은 중첩된 추상처럼 그렇게 혼란스럽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들은 마포구 상수동, 청계천 평화시장 근방, 충정로, 석촌호수 등에서 최근에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흑백사진, #추상, #소비도시,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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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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