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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소금 사막 위에 투명한 구 모형을 설치한 작업이다.
▲ Vanishing Traces, Bolivia, Salar desert, C-print, 볼리비아 소금 사막 위에 투명한 구 모형을 설치한 작업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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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월에 접어들었다. 성큼 다가온 봄을 예고하듯 하늘은 푸르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가 매섭다. 모처럼 맑아진 하늘과 가벼워진 마음 때문인지 이맘때쯤 많은 사람들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먹곤 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직접 여행할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세계 각국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Scarlett Hooft Graafland, 1973~)의 사진전을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한미사진미술관은 신진작가 지원의 일환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개인전을 2014년 첫 전시로 기획했다. 이번 전시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그녀가 한국에서 가지는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그녀는 2004년부터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사막, 중국 광시와 푸젠 지역,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 노르웨이 요툰헤이맨산지, 인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마다가스카르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일주하며 진행해 온 프로젝트를 41점의 사진에 담아 전시한다. 본 전시는 오는 4월 19일까지 개최된다.

오지의 아름다운 풍경에 사람의 흔적을 남기다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사막에서 토착민 여성을 모델로 하여 작업한 사진이다.
▲ Out of Continuum, Bolivia, Salar desert, C-print,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사막에서 토착민 여성을 모델로 하여 작업한 사진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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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중에서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만을 찾아 다니는 스칼렛은 "접근이 어려운 외딴 지역만이 가진 순수함이 매력적"이라고 고백한다. 오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청명한 풍광은 그녀에게 훌륭한 작업 재료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사진 속에 항상 자연을 배경으로 인위적으로 연출된 인물 혹은 설치품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자연 풍경에 인위적인 흔적을 남기는 작업은 거대한 자연을 느끼며 여행하는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섬세한 감수성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스칼렛이 2005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여행한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 사막에서 그녀는 유우니 사막의 토착 여성들의 험난한 삶에 주목해 그들을 위한 사진을 찍었다. <아웃 오브 컨티넘>(Out of Continuum)은 수면 위로 올라온 소금 더미 위에 구름을 형상화한 구 모형의 설치품을 들고 앉아 있는 토착민 여성을 찍은 작품이다.

볼리비아 사막의 신비한 하늘과 토착민 여성의 조합은 인위적이거나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토착민 여성은 자연의 부산물인 인간으로서 위대한 자연과 합일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운 조화는 우리가 자연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고리에 속해 있음을 상기시킨다.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 자연친화 메시지 띄우다

아이슬랜드의 쉼터(shelter) 지붕과 나체의 여자를 촬영한 사진으로, 스칼렛의 Roof 시리즈 중 하나이다.
▲ Brown, Iceland, C-print, 100ⅹ100cm, 2004 ⓒScarlett 아이슬랜드의 쉼터(shelter) 지붕과 나체의 여자를 촬영한 사진으로, 스칼렛의 Roof 시리즈 중 하나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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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에서 거북이 등 껍질을 멘 나체의 여자를 모델로 하여 작업한 사진이다.
▲ Turtle, Madagascar, C-print, 60ⅹ75cm, 2013 마다가스카르에서 거북이 등 껍질을 멘 나체의 여자를 모델로 하여 작업한 사진이다.
ⓒ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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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스랜드>(Brown, Iceland)와 <터틀>(Turtel)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나체 이미지는 인간의 흔적이 자연 속에 저항 없이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황량한 목초지에 세워진 집의 지붕 위에 걸쳐져 있는 벌거벗은 인간과 마다가스카르의 강가에서 거북이 등껍질을 메고 엎드린 벌거벗은 인간은 자연 앞에서 부서질 듯 위태로운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다. 스칼렛의 작업은 자연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가하는 파괴적인 흔적 남기기가 아니라, 광활한 자연 앞에 너무도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남긴 아주 작은 흔적의 여정이다.

스칼렛의 자연친화적인 메시지는 그녀의 작업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그녀는 보정이 불가능한 중형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기 때문에 촬영하는 순간 최대한 완벽한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그녀는 아날로그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아날로그 사진의 최종 결과물이 네거티브 필름에서 현상 인화된, 여전히 물성을 가지고 있는 사진인화지라는 점이 좋다. 나는 사진 이미지들에 수정을 가하지 않는다. 자연을 촬영할 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는 일이다."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장 입구
▲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 사진전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장 입구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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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은 인위적 수정을 가하지 않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촬영 날의 바람·빛·날씨·구름의 움직임 등을 체크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인내한다. 거대한 자연을 피사체로 삼아 작업하는 만큼 그녀는 언제나 녹록치 않은 현실과 한계를 몸으로 부딪혀가며 작업한다.

광활하고 위대한 자연이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한 컷을 선물할 때까지 기다린 끝에 결과물을 얻고, 그 결과물에 미약하고 겸손한 인간의 흔적을 남기는 그녀는 관람객들에게 곧 사라질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는 누구?
[작가 약력]
1973년 네덜란드 마른Maarn 출생
2002년 Parsons School of Design, 뉴욕 석사졸업
2000년 The Bezalel Academy of Arts and Design, 예루살렘 대학원 과정 졸업
1999년 Royal Academy of Fine Arts, 헤이그 졸업

[주요 개인전]

2013 《Suaves Horizontes》, 리마 현대미술관, 페루
2013 《Douze Douze Douze》, Vous Etes Ici갤러리,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2 《Domestic Marble》, Piet Hein Eek갤러리,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2011 《Soft Horizons》, Huis Marseille사진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09 《My White Night》, Michael Hoppen Contemporary갤러리, 런던, 영국
2008 《Igloolik series》, Vous Etes Ici갤러리,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07 《Soft Horizons》, Michael Hoppen Contemporary갤러리, 런던, 영국
2006 《The Day after Valentine》, Vous Etes Ici갤러리,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05 《Salt Works》, The Dutch Bank,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04 《Reykjavik Roofs》, SIM갤러리,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 AMC갤러리,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수상]
2012 Nomination Deutsche BorsePhotography Prize
1999 South Holland Art prize



태그:#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 #한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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