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포스터. ⓒ 상상필름


* 이 기사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인마 VS 미친여자

이 영화의 홍보문구다. 피도 눈물도 없는 내츄럴 본 사이코패스와 미친여자의 대결이라니!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그간의 예고편과 스틸에서 봤듯이 뭔가 굉장한 스릴러 한 편이 탄생할 듯했다.

영화의 처음 5분간은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잘 따라가는 듯해 보였다. 사람을 죽여 그 뼛가루로 도자기를 구워 내는 살인마 태수(이민기 분)와 시장에서 야채를 팔며 전교 1등 동생 은정(김보라 분)을 뒷바라지하는 약간은 모자라고 억척스러운 복순(김고은 분). 살인마 태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생을 빼앗긴 복순이 살인마를 쫓아 피튀기는 대결을 한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감독의 계산된 속임수였다. 수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스릴러인 줄 알고 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도 재미있는 설정에 매력적인 배우들로 인해 관람 전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의 긴장감과 몰입도도 뛰어나 '이거 올 상반기 제대로 된 스릴러 한 편 나오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으러 떠나야 한다.

그녀는 이제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으러 떠나야 한다. ⓒ 상상필름


그런데 점차 뭔가 이상하다. 왜 은정은 납치 혹은 강간, 살인을 당하지 않는 거지? 언제 태수와 복순이 조우하는 거지? 은정이 살해되는 시간이 영화 시작 이후 20분을 훌쩍 넘긴다. 즉 이 때부터 이미 이 영화는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빼앗긴 선량한 시민의 변모하는 과정과 추격과 복수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가족 코미디 영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애초에 스릴러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많은데 사실 이것은 모두 의도된 연출이리라.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정작 아빠와 딸의 부성애와 죄책감을 다룬 감성 스릴러 <공범>을 생각해 보라. 사실 <공범>은 주객이 전도된 패착을 범했지만 이 영화 <몬스터>는 애초에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만 한 게 목적이리라.

 냉혹한 살인마 태수 역의 이민기

냉혹한 살인마 태수 역의 이민기 ⓒ 상상필름


사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류의 스릴러 영화가 갖는 컨벤션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냉혹하고 강박적이면서 예술적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살인마-최근 개봉한 <더 파이브>에서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것을 모티브와 재료로 삼아 구체관절 인형을 만드는 싸이코(온주완)과 비슷하다-라든가 동생의 납치를 믿어주지 않는 경찰, 등장인물의 삶에 끼어들어 사건의 동기를 만들어주거나 액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직 폭력배, 혹은 동네 양아치들. 그리고 어떤 음모를 갖고 영화의 말미 반전을 담당하는 인물로 인해 진행되는 서브플롯 등, 어디서 몇 번씩 봤음직한 장르영화의 일반적인 관습은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딘가 좀 이상하다. 우리가 봐 왔던 영화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관객이 많으리라. 김고은이 맡은 복순이라는 캐릭터도 좀 애매하다. 영화의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를 봤을 땐 요즘 흔한 말로 '똘끼'가 있는 억센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여리고 순수한 여자다. 약간의 지적 장애가 있는 아름다운 처녀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감히 완전 무결점의 사이코와 대결을 한단 말인가? 겨우 시장통에서 철거반원의 머리를 무로 후려치거나 동생에게 침을 뱉는 정도의 폭력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이 처녀가!

 그녀에게 동생이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그녀에게 동생이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 상상필름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다

이 영화에는 3개의 가족이 나온다. 첫째가 바로 복순네 가족이다. 조실부모하고 할머니 손에 키워지다 지금은 자매만 남은 이들 가족은 홀쭉이와 뚱뚱이, 배트맨과 알프레도처럼 상충되면서도 상보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다. 단, 이 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둘 다 이쁘다는 것이다!

사실 동생은 약간 이기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니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기본 개념은 갖추고 있는 흔히 말하는 엄친딸이다.(물론 그녀에게 엄마는 없다) 이 가족은 한 사람의 사이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었다. 물론 동생의 서울대 진학 문제로 갈등을 예고하긴 했지만. 전교 1등을 하는 아름다운 동생-사실 이마저도 얼마나 비현실적인가-과 서로 의지하며 알콩달콩 사는 그녀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가정이라는 것이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정체 불명의 패밀리는 무엇인가?

이 정체 불명의 패밀리는 무엇인가? ⓒ 상상필름


둘째는 사이코 태수의 가족이다. 태수는 어렸을 적 주워 온 아이로 어려서부터 괴물의 본능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의절하다시피 가족들과 연을 끊고 살지만 자신에게 부탁을 위해 4년 만에 찾아온 형 익상을 위해 또 하나의 살인을 저지른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지만 가족애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해 자신을 어렸을 적부터 학대한 엄마에게조차 지극정성인 약간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사실 이 두 형제의 엄마(김부선 역)도 정상은 아니다. 게다가 삼촌이라는 작자(남경읍 역)도 그렇고, 죽은 익상의 아버지도 학대를 일삼는 괴물이었을 만큼 문제가 많은 가족이다. 그래도 가족 외식을 하며 조카의 선물이나 엄마의 용돈을 주는 태수의 모습을 보면 '연쇄 살인마에게도 가족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로구나'라는 보편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셋째는 나리 자매의 가족으로 언니가 익상 삼촌과 익상으로 인해 결국 태수에게 목숨을 빼앗기며 가장 먼저 해체가 되는 집단이다. 부모 없이 자매 둘이 어렵게 살아가지만 자매 간의 우애가 좋다는 점에서 복순의 가족과 유사성이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족의 해체가 결국 복순 가족의 해체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또 하나의 가족(복순-나리)이 탄생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내 진짜 혈육을 잃고, 다른 구성원(같은 사건의 피해자이자 나에게는 간접적인 가해자일 수도 있는)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영화 <괴물>의 그것과 비슷하다.

 복순 역을 맡은 김고은. 은교 이후 오랜만이다.

복순 역을 맡은 김고은. 은교 이후 오랜만이다. ⓒ 상상필름


즉, 이 영화의 주제는 연쇄살인마와 미친 여자의 대결이 아니라 가족의 해체와 결성이라는 인류애적 본성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가슴을 졸이고 손에 땀을 쥐기보다는 복순과 나리의 때묻지 않은 모습을 보며 아빠 웃음을 지을 수 있고,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깡패들의 엇박자 개그로 인해 크게 웃을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배성우가 맡은 탈북 청년이다. 믿거나 말거나 전 보위부 소속으로 맨손으로 사람의 뱃가죽을 뚫어 창자를 끄집어낸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라는데 사실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인다. 익상이 태수를 위협 또는 제거하기 위해 데려간 인물인데 여기서 의외의 반전이 나온다. 태수와의 결투 장면은 오싹하며 예상치 못한 드라마와 액션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아쉬운 점은 배성우는 너무 일찍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을 잘 살렸다면 정말 매력적이고 독특한 스릴러 액션 영화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형을 살려주고 자신의 안위에 가장 큰 걸림돌인 나리의 행방조차 그리 열심히 쫓지 않는 태수를 보면 참 이 인간 속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중요한 인물을 잡아놓고도 태연하게 엄마와 형과 함께 홍어와 막걸리를 먹자고 하다니...

 달려라 복순아! 저 맑고 깨끗한 얼굴을 보라.

달려라 복순아! 저 맑고 깨끗한 얼굴을 보라. ⓒ 상상필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살인마와 미친 여자의 대결구도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추적하는 복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태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린 아이의 배에 배게를 안게 하고 식칼로 찌르는 연습을 몇 번 하더니(<킥 애스>에서 빅 대디가 자신의 딸의 배에 총을 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비상금 몇 만원 챙겨서 서울로 떠난다. 그리곤 길을 잃고, 걷다가 지치고, 배가 고프다고 징징댄다. 더 웃긴 건 애초에 살인마 잡겠다고 독을 품고 나선 그녀가 나래의 손을 잡고 도망다니기 바쁘다는 것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따위는 없다. 위기에 빠지면 파출소에 가면 되고, 무서우면 울면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 동생을 살해하려던 태수와 잠시 맞닥뜨린 후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둘이 마주치는 장면은 한 장면도 없다. 애초에 이민기와 김고은의 심장 터질 듯한 추격전과 피 튀기는 싸움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 영화는 기존 장르 영화의 관습을 완전히 비틀어 버렸다. 물론 아마도 이것은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영화 관람 전 관객이 이 영화를 스릴러 영화로 착각하게 하고 극장에 온 관객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혈연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설파하려는 것이 바로 감독이 진짜 의도했던 게 아닐까?

김고은은 분명 매력적이고 이쁘다. 그런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동생과, 그리고 그녀의 삶에 들어온 나리(안서현 분)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복순이라는 캐릭터가 지체 장애자인지, 약간 현실감각이 없는 순박한 여자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바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김고은의 연기는 어딘가 붕 뜨게 마련이고 종종 요즘 말로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장면이 많다. 그래도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복순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동정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다.

게다가 나리는 또 어떤가? 이 영악하고 앙증맞은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는 관객이라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결혼적령기의 미혼 남녀라면 그와 같은 딸 하나 정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눈 앞에서 언니가 살해당하고 살인마에게 납치가 되었음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때론 그 나이 또래 어린아이답게 어리광도 부리는 나리 역을 연기한 안서현은 바로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 이정재의 딸로 나온 바로 그 아이다.

최근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한 그녀의 연기는 마치 옛날 할리우드에서 7살 때 최연소 오스카 상을 수상하며 천재 소녀 소리를 들었던 셜리 템플의 재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안서현이다. 울고 웃고 영화의 감초 역할을 넘어 극의 정서와 내러티브를 책임지는 이 영화의 기둥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설픈 사채업자 두목으로 등장한 박병은의 연기변신이 놀랍다. 심지어 대학 동기인 기자조차도 전혀 그가 <평행이론> <황해> <연애의 온도>의 그 박병은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충무로에서 코믹 조연으로 빼놓을 수가 없는 배성우는 그만의 스타일로 꽤 귀여운 캐릭터를 소화해 냈으며, 국민 아줌마 김부선은 두 아들의 엄마로 진짜 이 여자야말로 진정한 악의 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능청스럽게 본인의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황인호 감독은 <시실리 2km>의 작가이자 <오싹한 연애>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의 전작을 보면 이 영화 역시 기존 장르 영화의 문법을 살짝 비틀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어 내려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영화 전반에 사용된 롱 쇼트와 롱 테이크는 바로 이 영화를 스릴러가 아닌 코미디 영화로 보이게끔 하려는 감독의 의도이리라. 사실 이 영화를 혹평하겠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많이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많다. 대한민국 스릴러 영화 중에서 이렇게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시실리 2km>와 이 영화 <몬스터> 두 편뿐이리라.

 그의 몸에 있는 문신은 죽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의 몸에 있는 문신은 죽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까? ⓒ 상상필름


가슴 따뜻해지는 훈훈한 가족 코미디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김고은과 안서현의 청초한 모습에서 봄 내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영화는 3월 13일에 개봉한다. 화이트 데이를 맞아 연인과 함께, 혹은 온 가족이 단체 관람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화 관람 후 식사로는 짜장면을 권한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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