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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에 새 둥지를 마련한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가 쉬는 날을 이용해 찾아온 손녀들과 함께 집앞 마당을 거닐고 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에 새 둥지를 마련한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가 쉬는 날을 이용해 찾아온 손녀들과 함께 집앞 마당을 거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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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을 조금만 떨면 찬거리가 널려 있어요. 종류도 수십 가지에요. 약초도 많고. 바구니 옆에 끼고 호미 하나 들고 나가면 반찬 준비 끝이죠. 그것도 전부 지리산이 키워준 보양식으로."

지난달 27일 냉이와 쑥부쟁이, 시금치를 캐서 다듬고 있던 김은심(60·전남 구례군 산동면) 씨의 말이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3년 전 서울을 떠나 노오란 산수유꽃 피는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인심 좋고 다정하고. 음식도 맛있고. 날씨도 따뜻하고. 전라도가 정말 좋아요. 여기 와서 살면서 욕심이 없어졌어요. 욕심 부릴 일도 없구요. 그러니 마음이 편하죠. 정신적인 여유도 생기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다 시원합니다."

김씨의 남편 김태제(63)씨의 말이다.

김은심 씨가 텃밭에서 캐온 시금치. 김씨 부부는 귀촌 이후 시장이나 마트 갈 일이 없어졌다고. 반찬거리가 주변에 널려 있어서다.
 김은심 씨가 텃밭에서 캐온 시금치. 김씨 부부는 귀촌 이후 시장이나 마트 갈 일이 없어졌다고. 반찬거리가 주변에 널려 있어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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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심 씨가 내온 감과 밤 말랭이. 지난 가을 밭에서 따서 잘라 말려놓은 것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내주는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다.
 김은심 씨가 내온 감과 밤 말랭이. 지난 가을 밭에서 따서 잘라 말려놓은 것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내주는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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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는 왕십리와 답십리에서 태어나 50년 넘게 서울에서만 살았다. 남편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오랫동안 경영자로 살았다. 돈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벌었다. 부인도 틈틈이 여행과 낚시를 즐기며 여유를 갖고 생활했다.

지리산 자락을 찾은 건 우연이었다. 지인이 사놓았던 땅을 소개받고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거처를 마련해 놓고 가끔 찾아와 쉬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을 하나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가건물의 디자인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마음이 갈수록 더 비쌌다.

"욕심이 생겼어요. 가건물 값에다 돈을 조금 더 보태면 반듯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겠더라고요. 남편을 설득했죠. 건물을 짓자고."

부인의 말이다.

김은심 씨가 큰 손녀와 함께 집앞 마당을 걷고 있다. 남편 김태제 씨가 손수 설계한 통나무집이다. 마당에 연못도 파 놓았다.
 김은심 씨가 큰 손녀와 함께 집앞 마당을 걷고 있다. 남편 김태제 씨가 손수 설계한 통나무집이다. 마당에 연못도 파 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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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집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이곳으로 내려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흐뭇했다. 통나무를 뼈대로 세운 근사한 집 한 채가 지어졌다.

김씨 부부는 이때부터 쉬는 날이면 매번 이곳으로 내려왔다. 하룻밤 묵으며 자연생활을 즐겼다. 평소 좋아하던 여행과 산행도 실컷 했다. 취미로 삼은 낚시도 맘껏 했다. 4년 동안 그렇게 지냈다. 행복했다.

"지리산에 집을 지었다는 얘기를 들은 친인척들이 내려왔어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몇 명씩 놀러오구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지내는데 집이 좁더라구요. 그래서 한 채를 더 지었죠."

남편의 말이다. 그렇게 지어진 게 지금의 집이다. 기존의 통나무집과 연결시켜 한 채를 더 지었다. 통나무집 두 동이 나란이 들어선 이유다. 나중에 지은 집의 건축 설계도 그가 직접 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에 눌러앉은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 날마다 자연을 벗삼아 친구처럼 살고 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에 눌러앉은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 날마다 자연을 벗삼아 친구처럼 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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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심 씨가 손녀들과 함께 그네를 타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손녀들도 산골생활에 만족하며 즐겁게 지낸다는 게 김 씨의 얘기다.
 김은심 씨가 손녀들과 함께 그네를 타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손녀들도 산골생활에 만족하며 즐겁게 지낸다는 게 김 씨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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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놓고 보니 욕심이 나더라구요. 주말과 휴일만 내려와서 지내기가 아까웠죠. 짐을 싸가지고 내려와서 살고 싶었어요. 남편한테 말했죠. 서울생활 정리하고 내려가자고.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어요."

부인 김은심씨의 말이다.

이렇게 해서 태 자리였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게 3년 전이었다. 앞마당에 잔디를 깔고 텃밭도 가꾸었다. 텃밭엔 콩을 심고 배추와 상추 등 여러 가지 채소의 씨앗을 뿌렸다. 뿌린 씨앗이 흙을 뚫고 올라오고, 그것이 위로 쑥쑥 커가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기 내려와서 저의 적성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삽이나 호미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요. 밭에서 일하며 채소를 가꾸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손으로 벌레도 잡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삽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지금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다.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가 죽검을 맞대고 있다. 김씨 부부는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온 이후 저녁마다 도장에 나가 검도를 배우고 익히고 있다.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가 죽검을 맞대고 있다. 김씨 부부는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온 이후 저녁마다 도장에 나가 검도를 배우고 익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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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삼아 검도를 함께 하고 있는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 이들은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늘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취미 삼아 검도를 함께 하고 있는 김태제·김은심 씨 부부. 이들은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늘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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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는 할머니들한테 나물 무치는 법을 배우는 것도 흥미를 더해준다. 주변에 널린 감이나 밤을 주워 깎아서 말려 주전부리로 만들어 먹는 것도 산골생활의 재미다. 손자 손녀들이 가끔 찾아와 마당에서 뛰노는 걸 보는 것도 행복이다.

"처음에 긴장을 하긴 했는데요. 못 느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존중하고 또 이해하고 사는데요. 그런 것 없어요. 모든 게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다른 사람도 열어요."

"텃세는 없었냐"는 물음에 대한 남편의 대답이다. 김씨 부부는 요즘 코스를 나눠 지리산 둘레길 걷는 재미를 만끽하고 산다. 날마다 취미로 검도도 함께 배우고 즐기며 오랜 친구처럼 살고 있다. 검도로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도 했다.

"이런 삶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요. 욕심이 없으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구요. 왜 진즉 이런 생활을 몰랐을까 싶어요. 요즘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김씨 부부의 말에서 귀촌 이후의 행복이 진하게 묻어난다. 어머니 품처럼 넓은 지리산도 평소보다 더 넉넉하게 다가온다.

김태제·김은심 씨의 집.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
 김태제·김은심 씨의 집.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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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촌, #김은심, #김태제, #구례,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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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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